기사 작성일 : 2014년 7월 08일 화요일 오후 4시 22분

정문섭의 중국 이야기⑰ 중국 소수민족(1/2) – 한족과 55개 소수민족

 

“앞서 중국의 인구와 행정구획을 말씀하시면서 소수민족을 많이 거론하셨는데 궁금한 게 많습니다. 우선 소수민족의 인구비중이 궁금하군요.”

“비록 55개 소수민족이라 하니 숫자는 많아 보이나 201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소수민족 인구는 1억 1379만 명입니다. 총 인구 13억 4000만명 중 8.49%에 불과합니다. 1982년 당시 8.04%에 비하면 그 비중은 조금씩 늘어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100만 명 이상인 민족이 18개, 100만에서 10만까지 15개. 10만 이하에서 1만까지 15개, 1만 이하가 7개이고 확정되지 않은 인구가 약 73만 명이라고 합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은 장(壯)족이라고 들었는데 몇 명이나 됩니까?”

“1693만 명입니다. 그 다음으로 회(回)족 1059, 만주(滿洲)족 1038, 위구르족 1007, 묘(苗)족 943, 이족 871, 토가(土家)족 835, 티베트족 628, 몽골(蒙古)족 598 순으로 나옵니다. 가장 적은 타타르족은 3,556명에 불과합니다. 전체 소수민족 중 자치구역 밖에서 한족과 어울려 사는 이들은 약 3000만 명에 달합니다. 우리의 옛 동포인 조선족은 183만명으로 15번째로 많은 인구를 갖고 있습니다.”

“한족은 중국 동부 황허와 창장 중하류 주위에 많이 살 것이고 변방에는 아무래도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소수민족들은 주로 내몽고 등 5개 자치구, 30개의 자치주와 120개의 자치현 지역에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자치지역은 전 영토의 64%에 이르고, 소수민족 인구 중 78% 정도가 이 자치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이들은 주로 변방 지역의 고원, 산맥, 초원, 삼림지대 등 환경이 열악한 곳에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지하자원은 풍부하지만 경제개발은 낙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육지 국경선이 양 22,000km인데 이 중 19,000km에 소수민족이 국경에 걸쳐 있고 국경선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135개 현급 행정구역 가운데 107개가 소수민족 자치구역에 속합니다. 또한 국경선에 거주하고 있는 2200만명의 인구 가운데 반수 이상이 소수민족입니다. 그리고 위구르족, 장족, 티베트족, 묘족, 따이족 등 34개 민족이 국경선 외부에 같은 민족이 거주하는 과계(跨界)민족이며, 특히 조선족, 몽골족, 러시아족, 카자흐족, 키르키즈족, 타지크족 등은 같은 동족이 인접국가의 주류 민족으로서 독자적으로 나라를 운영하고 있어 이들 소수민족들은 중국의 국가통합이나 안보 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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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이 하루아침에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역사를 보자면 앞서 말한 중화사상이 태동하였던 고대국가로부터 시작되었겠군요. 소수민족은 동이족 등 사이(四夷 : 東夷, 西戎, 南蠻, 北狄)에서 갈라져 나왔겠군요.”

“중국 최초의 전설상의 왕조인 하(夏)왕조 이래 중국은 한족과 사이(四夷)는 중원대륙의 주도권을 놓고 쟁패를 벌이면서 평화공존과 긴장 및 갈등의 역사를 가졌었습니다. 당나라 때에는 융족 등 북방 민족이 원나라와 청나라 때에는 각각 몽골족과 만주족이 오랜 기간 중원을 지배하여 한족과는 문화적 동질감이 많은 소수민족도 있습니다. 반면, 티베트족이나 위구르족 같은 몇몇 민족은 한족 문화와는 다른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갖고 있어 한족과는 적지 않은 이질감을 갖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한족들은 아시다시피 신화전설시대부터 오랜 기간 주변민족에 대하여는 늘 오랑캐라 하며 경멸과 멸시의 대상으로 삼아 왔고, 주변민족들은 늘 지배하려고만 하는 한족들에 대항하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침탈당하는 일이 많아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중국이 주변민족에 대한 관심을 갖고 또 중화민족이라는 이름으로 55개 소수민족을 확정하였나요. 그리고 초기에는 소수민족에 대하여 어떤 정책을 폈나요?”

“21세기에 이르러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등을 통해 특히 몽골족과 조선족 등 일부 소수민족의 활약이 매우 컸습니다. 또한 소수민족을 배척할 경우 소수민족들이 독립을 외치게 된다면 명·청조 이래 지배하여온 지금의 거대한 영토가 여러 나라로 쪼개질 것이 불 보듯 뻔하였으므로 마침내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정책을 펴게 되었습니다. 건국 초기 중국 정부는 안정적으로 국가적 통일과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우선 중국 헌법전문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전국 각 민족으로 이뤄진 통일적 다민족 국가다….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를 반대 한다…. 또한 지방민족주의도 반대하여야 한다. 국가는 전력을 경주해 전국 제 민족의 공동 번영을 촉진하여야 한다.’ 라는 내용을 포함하여 소수민족에 대한 정치적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치주라는 행정구역이 바로 소수민족을 위한 자치제도이군요.”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헌법상의 정치적 방향을 실천하기 위해 우선 민족구역자치제도를 시행하여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 등 3단계의 행정구역을 두었습니다. 또한 1953년부터 민족등기에 나섭니다. 처음에는 400여 민족이 등기를 하였는데 언어·지역·경제·문화의 공유 여부인 과학적 특징과 민족 단위로 존재하려는 민족 의지 등 두 가지 기준에 입각해 민족 식별작업을 펼쳤습니다. 1단계로 1954년에 38개를 확정짓고 1964년에 53개, 1982년에 최종적으로 한족을 포함하여 56개 민족을 확정짓습니다. 그리고 소수민족 지역 안정화 사업과 소수민족 간부배양 등의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동원 체제이었던 1958-1965년 시기 소수민족에 대한 그간의 우대정책이 부인되거나 혼란을 겪으면서 소수민족들이 수난을 당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맞게 됩니다. 특히 문화대혁명시기에는 소수민족지역의 문화적 전통과 종교 신앙을 무시하고, 유서 깊은 문화유적과 종교시설 등을 파괴하였으며, 종교 활동과 민족예술 공연까지도 제약하였습니다.”

 

필자 정문섭 배너(최종)_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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