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4년 7월 31일 목요일 오후 2시 21분

고정식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21) 줏대가 있어야 한다

 
왜 여성들은 기를 쓰고 명품 핸드백을 사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 이웃에 사는 비슷한 연배의 여자가 바로 그 명품 핸드백을 사서 갖고 다니기 때문이다. 또는  (2) 이웃에 사는 비슷한 연배의 여자가 아직 그 명품 핸드백을 사지 못했기 때문이다.

좀 싱겁게 보이는 우스갯소리다. 사고 싶은 물건은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결국 사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말로 풀이할 수도 있고, 명품이라면 기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지를 말해준다고 해석해도 되겠다.

흔히 쓰는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자기 스스로가 아니라 친구들의 판단과 행동만 따르다 보면 당초에 생각지도 않았던 엉뚱한 일도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쉽사리 동조하는 행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는 종교든, 사상이든, 이념이든, 심지어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남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관해 지나치게 예민하다. 큰 사건이나 사회 문제를 거론할 때에도 문제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가 아니라 ‘(선진) 외국인이 보면 어떻겠느냐’, ‘외국인에게 창피하다’는 말을 꽤 자주 한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 내 언동이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 우리의 여러 관행이나 문화가 외국인에게 어떻게 투영될지 따져보는 일이 그 자체로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때에 따라 이런 일은 남을 위한 배려로 나타나기도 하고, 한 개인의 자존감을 유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다. 일을 처리할 때 적절성, 시의성(時宜性), 합당성을 따지지 않고 단지 남의 시선에 그럴 듯하게 보이는 기준을 절대시하면 희극 아닌 희극이 연출된다. 본질은 간데 온데 없고 부차적인 요소가 마치 주인인 양 행세하게 된다.키에르케고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진리는 주체성이다.”라고 갈파했다. 이 명제는 심오하고 섬세한 그의 실존주의 사상을 압축한 표현이어서 그 의미를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단순화하면, 인간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주체적으로, 즉 오로지 스스로의 사고와 결단에 바탕을 두어 자기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 개인이 모두 자기다운 삶, 주체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군자(君子)는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기는 하되 한통속처럼 되지 않는(和而不同) 반면, 소인(小人)은 한통속이 되기는 하되 화합을 이루지는 못한다(同而不和).”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줏대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행태에 대해 개개인 스스로를 몰각(沒却)함을 비판한 것이다.

줏대(주체성)가 없을 때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 줏대가 없으면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점이다. 남의 장단에 맞춰 눈치껏 춤추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과연 신명나게 춤추고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남이 내 관점을 우습게 여기지는 않는가, 내 정치적 시각이나 종교적 믿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드는가, 내 옷이나 행동은 유행이나 최근 경향(이른바 트렌드)과 잘 맞는가 등등을 항상 걱정하며 사는 불안스러운 삶이 행복할 까닭이 없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의 유통, 표현의 자유 존중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정보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그 양도 엄청나지만, 질적으로도 극심한 편차를 보인다. 유익한 정보도 있지만 허황되고 유해한 정보 또한 적지 않다. 한심하게도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별 가치도 없는, 때로는 백해무익한 정보를 최첨단 기기로 확산, 증폭시키는 일을 마치 중대 과업인 양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분야의 지식은 물론 정견(政見)이나 이념, 믿음, 취향과 사소한 기호(嗜好)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그때그때 정보에 관해 판단을 내리고 수용하거나 거부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판단의 궁극적 주체가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건전한 상식에 맞는지, 논리적으로 오류는 없는지, 사실이나 보편적 규범과 일치하는지를 나 자신의 이성에 비추어 깐깐히 점검해봐야 한다. 인간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자명(自明)하고도 엄숙한 명제를 이런 일로부터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어수선한 세상에서 우리가 행복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필자 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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