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4년 9월 12일 금요일 오후 3시 35분

日공명당 의원, 「공명당은 집단자위권 변경 용납하지 않아」

 

 

일본의 두 의원

<日공명당 히구치·이시카와 의원(좌우 앞쪽)>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냉각되고 나서 이미 2년 가까이 된다. 내년 국교 재개 50주년을 앞두고 오늘날의 모습은 너무 상궤를 벗어나 비정상적이다.

이런 시기에 한국 측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고자 공명당(公明党) 청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5명이 내한했다. 공명당은 이전부터 한일 양국의 우호를 중시하고,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문제, 차별문제 등을 해결하기위해 국정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는 정당이다. 자민당과는 연립 정권을 구성해 여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에 본지는 공명당 청년위원회위원장인 이시카와 히로타카(石川博崇) 의원과 부위원장 히구치 나오야(樋口尚也) 의원을 지난달 30일, 서울 시내 호텔에서 만나 간담회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지 홍성곤 고문과 두 의원 사이에 1시간 40분간 진행된 대담 인터뷰는, 격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한일, 일한간의 많은 현안 문제를 토론형식을 섞어 이루어졌다. 대담은 핵심문제를 피하지 않고 대담하고 열정적으로 전개돼, 양국관계의 현상을 타개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는 내용이었다.

이시카와 의원은 “공명당은 자민당의 집단적자위권의 헌법해석 변경에 의한 행사 시도를 여당 협의를 통해 막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한국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 준 두 의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기사분량 관계로 기사는 2회로 나누어 게재한다.

 

박승민 편집장 (park83@sisareport.com)

 

 <日공명당 이시카와 의원(왼쪽), 본지 홍성곤 고문(가운데), 그리고 히구치 의원(오른쪽)이 인터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다음은 대담 1문 1답

 

홍성곤 고문(洪性坤, 이하 홍) : 너무 딱딱한 분위기에서가 아닌 격의 없이, 간담회라고 할까 대담 형식으로 해주시고, 어쨌든 툭 터놓고 프리 토킹으로 해주었으면 합니다.

이시카와 히로타카 의원(石川博崇, 이하 이시카와) : 다양한 조각을 조합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호적인 나라가 될 수 있을지, 우리도 꼭 그 한 조각이 되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한 경위

 

: 우선, 이번 방한하게 된 경위와 목적에 대해 설명해 주겠습니까?

이시카와 : 원래 공명당(公明党)은 한일·일한 우호에 전력을 다해 종래부터 임해오고 있으며, 당연히 일본 국내에도 재일한국인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러한 분들의 지방참정권의 문제라든가 이런 것의 법안을 내거나, 혹은 차별의 대상 또는 다양한 생활상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대처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히구치 상(의원)으로부터 언급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참정권문제나 사할린의 이산가족 상봉문제에 대해서도 선배(의원)들께서 대대로 계속 씨름하고 있는 정당입니다. 평소부터 역시 한일우호를 확실히 진행해 가야한다고 발신(홍보)하고 있는 우리 당으로서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일한관계를 어쨌든 진전시키기 위하여 돌파구가 되어 가고 싶다는 것이 그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의 다양한 역사의 반성에 입각해, 다시는 전쟁하지 않는 그런 결의 서약, 이러한 것을 ‘평화의 당’임을 내거는 우리 당으로서 지금 일본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인식이 있는 가운데, 집권 여당 공명당이 이정도로 평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동아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이만큼 열심히 생각하고 있다는, 이런 점을 대외적으로 호소하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젊은 의원으로 향후 일한관계를 제대로 쌓아갈, 그런 핵심 멤버로 방문해 일한간의 예를 들어 한국의 국회의원 분들 중에서도 선배의원 분들은 (일본 의원들과) 정말 밀접하게 다양한 연계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젊은 의원들 간의 연계는 사실 선배들에 비해서는 별로 없습니다. 역시 일한관계를 길게 쌓아갈 수 있는 젊은 리더들과의 인간관계 관계도 구축해 가고자 하며, 미래지향적인 일한관계를 꼭 만들어 가고 싶다는 것이 방한의 목적입니다.

: 일본 측에서 (먼저) 액션을 취한 것입니까?

이시카와 : 원래 계기는 주일 한국대사를 얼마 전까지 하신 이병기(李丙琪) 전 대사와 우리 공명당의 청년위원회가 교류를 하고 있어서, 이병기 대사로부터 “이 시기에 꼭 공명당의 청년위원회 여러분들께서 한국을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얘기(제안)를 들은 것이 계기입니다. 작년 연말 정도였습니다. 통상(정기) 국회가 계속 되어서 국회의 회기 중에는 어려웠습니다만, 그 이후 새누리당으로 부터도 초대장을 받았고, 또한 외교부도 여러 어렌지(일정)를 해 주었습니다. 이병기 대사는 이미 퇴임하셔서 지금 국가정보원장이 되셨다고 합니다만, 그 길을 열어 주신 것이 이병기 (전) 대사입니다.

 

△한일관계 경색의 원인

 

일본의 역사 인식이라는 것은, 일본이 침략에 대해 ‘악(惡)’으로 보는지, ‘선(善)’으로 보는지의 문제. 과거 일본 정권은, ‘악’이었다고 분명히 말해 (홍)

 

: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왜 이렇게 갑자기 (한일)관계가 냉랭해졌는지, 좀 불가사의해서(이해할 수 없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는 점도 있는데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것을 무엇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의 국회의원 입장으로서는.

히구치 나오야 의원(樋口尚也, 이하 히구치) : 지금의 경색관계는 말씀하신 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만, 역시 그… 아베 총리는 저희들에게 잘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시간을) 주십니다. 저도 얼마 전 6월 10일 밤에 두 시간 반 정도 (아베 총리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하나하나 신중히 열심히 하시는 분이기는 합니다. 정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균형 감각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로부터 잘 듣는 말은 중국과의 문제, 귀 한국과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돼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정치가 잘 돼가고 있지 않는다는(정치를 잘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여러분들이 말씀하시는데, 저희들도 그 인식(생각)은 물론 가지고 있습니다.

: 정치가 잘 되어가지 않는다?

히구치 : 예.

: 요컨대 이런 장소이니까 더 단도직입적으로 정치의 어디가 … (나쁜가요)?

이시카와 : 생각하건대, 최근에 갑자기 나빠졌다기보다는 역시 지금까지의 경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일관계에서 말하자면, 역시 일본도 정권 교체가 있었습니다. 그 전부터 불균형 국회(편집자 주: 국회가 다수당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되지 못하며 꼬이는)가 계속되고 있어 일본의 국정이 매우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었다. 결정해야 할 일들이 좀처럼 정해지지 않았다는 비판을 국민으로부터도 받으며, 매년 총리가 바뀌는 또는 각료(장관)도 계속 교체되는 것이 6년간 이어져 왔습니다. 전 정권 민주당 정권에서는 특히 후텐마기지(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최소한 현외이설(道 밖로 이전)이라는 사정이 있었고, 미일관계가 삐걱거렸고 또한 이웃나라 러시아는 대통령이 북방영토를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이명박)대통령도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명), 한국 명 독도에 상륙하셨다. 센카쿠열도 주변에는 해상보안청 선박과 중국 선박이 충돌했다. 그런 일이 잇따라 발생해 (주변국과) 매우 차가워졌다. 거기에서 어떻게 든 탈피하자는 우리의 생각은 있습니다만,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현실적인 인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 이것을 매우 단적으로 말하자면요, 한국 국민들이 받아들이기로는(인식하기로는), 1차 아베정권 시절에는 출범 직후에 (아베총리가)중국에 가서, 중국과의 관계를 한 단계(수준) 높게 구축했다. 그 후에 한국에 와서, 대단히 동아시아 중시의 입장을 취하셨죠. 그래서 매우 우호적 무드가 높아졌지요. (이시카와 :그랬었죠) 그런데 같은 아베 씨가 이번 제 2차 정권에 앉자마자, 여러분 아시다시피 국회 질의에서 (이제까지의) 역사인식을 크게 바꾸었다. 역사 인식이라는 것은 더 파고들어서 말하면, 한국에 대해서는 36년간의 식민지 지배, 중국에 대해서는 청일전쟁부터 시작된 침략전쟁, 이런 일련의 사안을 ‘악(惡)’이라고 보는지, ‘선(善)’이라고 보는지, 그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전후 일본의 정권도 그렇지만, 이것은 ‘악’이었다고 분명히 말했었지요. 그래서 “죄송하다”고 말했던 것이고, 또한 ‘악’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즉 ‘침략’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도쿄 재판’을 수락한 것이었죠. 그 결과 국제사회에 복귀가 가능했던 경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시카와 : 저는 (일본이) 그 자세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아니, 아니요. 요컨대 왜 이번 한일 간의 관계가 냉랭해졌는지의 원인은 아베 씨가 제 2차 집권 직후의 여러 가지 언동,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한국 국민이 가장 문제시하고 있는 것은 “침략이라는 정의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런 발언을 한 것이지요. 그것은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식민지 지배가 ‘악’인가, ‘선’인가 대해서 말한다면, (일본이) ‘선’이라는 인식으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석되지요. 이것이 ‘악’이라고 인식(생각)했다면 이 같은 발언은 절대 나오지 않았겠죠. 그래서 한국국민은 “이것은 이상한 사람이 나왔다”라는 것이지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거기에 있습니다. 역사인식, 더 따져 말하자면 식민지 지배, 그것이 옳았다고 생각하는지 어떤지, 그 인식이 아무래도 한국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시카와 : 역시 그것은 어쩌면 오해를 주는 면도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여러 가지 언동이 단편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위험도 있으므로, 국회 질의에서도 이를 검증하고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念)도 앞으로도 유지해 간다는 것이 우리 당의 기본 자세이고, 저는 그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을 꼭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노력은 물론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일반적인 한국 국민이 받아들이기로는, 요컨대 일본의 총리가, 역대 정권이 이어온 역사 인식이라는 것을 이번에 아베 씨가 뒤집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같은 아베 씨가 1차 정부 때는 그렇지 않았었다고, 그래서 이 아베 씨가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아무래도 지금의 모습이 진짜(진심)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사람은 매우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왜 위험한가? 라고 말하는가 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베총리가) 역사 인식에서 (한국의)식민지 지배나, 중일전쟁을, 그것은 나쁘지 않았다 라는 입장에 서면, 이것은 (이제까지의 한일관계가)전부 무너져 내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는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입장, 이것은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어디까지나 중국이나 한국은 과거의 역사에서 피해자의 입장이에요. 피해자의 심정이라는 것을 역시 일본이 잘 생각해서 하지 않으면… (두 의원 “정말 말씀하시는 대로 입니다”) 그것을 무시했다고 할까, 도외시하고 말이죠, 때때로 (과거사에 대해)말을 바꾼다. 이것은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에요.

이시카와 : 그래서 불신을 풀어 가고 싶고, 완전히 엉클어진 지금의 실을 푸는 것은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만, 그러나 역시 이것을 하나하나 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도 역할을 저도 공명당도 떠맡아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 특히 ‘아베 컬러’라는 형태로 일본의 정치를 잘 말합니다만, 일본은 연립 정권이라는 것을 꼭 한국의 국민들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기를 바라고 싶고, 확실히 인원수로는 자민당이 공명당의 8배의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립 정권이라는 것은, 여당은 대등한 입장에서 두개의 각 정당이 양해(합의)하지 않는 한 법률에 대해서도 예산에 대해서도 결정되지 않으므로 이 자민당과 공명당의 양당이 각각 특색을 살려, 지금 일본 정치를 움직이며, 국가 안전보장 법정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공명당의 존재에 의해, 당초 예상했던 것과 같은 소위 타국방위를 포함한 집단적자위권의 확대해석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된 것이에요. 역시 안정 세력으로서 공명당이 있고, 일본의 정치가 여당의 연립 정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중국 분들도 한국 분들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좀처럼 우리의 발신(홍보) 부족도 있고 해서요.

: 일부의 사람들은 상당히 공명당에 기대를 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앞으로도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전후 70년 지났습니다만, 한일 관계에 대해 말하면, 항상 같은 문제를 가지고,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고, 이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고이즈미(小泉) 정권 때 말이죠, 2002년 월드컵축구를 공동개최 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양국의 ‘우호의 날’을 정했어요. 지금도 그 우호의 날은 아마 남아 있다고 생각 합니다만, 그 해에 한국은 국민들이 일어나 준비를 했어요. 저도 다양한 채널을 사용하여 예를 들어, 도쿄해양대학(東京海洋大學)의 니혼마루(日本丸, 연습선)를 그 날에 맞추어 한국에 기항시키려고, 그것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허사가 돼버렸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고이즈미 씨의 야스쿠니 참배였다. 그것이 망쳤다. 정치인의 역할은 선린우호의 기초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국민이 그것을 만들고 정치가 부수는 패턴이 되고 있다. “뭐하는 거야!” 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죠. 이번 아베 씨의 언동이 역사인식을 의심케 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좀처럼 화가 안 풀리지만, 그러는 중에 또 야스쿠니 문제가 나오고, 그리고 다케시마 (독도)문제가 나온다. 난 항상 한일문제는 3종 세트라고 말하는 데요, 이 3종 세트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말로만 미래지향적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해도 말이죠, 이 문제가 있는 한, 목에 걸린 (잔)뼈와 같은 것이지요. 반드시 이것을 반복하는 겁니다.

이시카와 : 반복할 염려는 항상 있습니다. 어떤 이웃나라 관계에서도 역사적인 마이너스 관계(좋지않은 관계) 속에서 쌓여 온 것은 있습니다만, 그것을 서로가 극복하려는 의지와, 그리고 목표를 공유하고 행동하는 가운데에서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그런 문제,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소는 존재하고 그것은 어떤 관계에서도 있습니다.

 

△역사 인식

 

아베 총리도 (역사인식에서) 역대 정권의 자세를 계승해 나갈 책임이 있다는 생각 (이시카와) 
소카대학(創価大學) 창립자 이케다(池田)선생님은 “귀국 (한국)은 문화 대은(大恩)의 나라이고, 물론 침략전쟁은 잘못되었고, 앞으로 은혜를 갚아나가지 않으면 안 되며, 폐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통절히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히구치)
공명당이 추진해 조선시대의 의전 문서를 한국에 반환하기도(이시카와)

: 예를 들면 역사인식문제, 몇 번이나 말합니다만 파고들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옳았는지 어땠는지, 이 인식의 문제, 이것을 일본이 그건 어디까지나 좋은 일 해줬다고, “‘선(善’)의 입장에 서면 절대로 개선은 없어요.

이시카와 : 그런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지금의 정권도 제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 적어도 공 명당은 지켜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아베 총리도 확고히 역대 정권의 자세를 계승해 나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모처럼 여러분 이렇게 한국에 오셔서 여러 분야 분들의 의견을 들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일본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아베 씨의 태도를 보면, 아무래도 일본은 옳은 일을 해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 대해 의식할(느낄) 겁니다. 아시다시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상은 14년간 계속 되었어요. 왜 14년 동안 마라톤 협상을 했느냐하면 그 문제였어요. 한국은 “그건 어디까지나 나빴다”는 것을 일본이 인정하고, 협상문서에 명확하게 사죄해 달라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일본 측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는 한국을 위해 인프라를 만들어 주었고, 도로를 만들고 철도를 깔고 학교를 만들었다고 했죠.” (거기에 대해) 한국은, “그것은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것이었다고.” 이 논의를 14년간 했던 것입니다. 14년 후 박정희 군사정권이, 그런 것은 괜찮으니까 어쨌든 빨리 돈을 달라고 해서, 이렇게 체결한 것이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건 타협의 산물이지, 기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그래서 협정의 제목이 경제 협력과 청구권 문제예요. 그래서 식민지 지배가 어떻다든지 배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잖아요? ‘배상’이라는 단어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아요.

그것이 개운치 않게(떨떠름하게) 한국국민의 (머리)속에 남아있었지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계속해서 잘 하자고 하는데, 거기에 저런 (아베총리) 발언이 나왔어요. 그래서 저의 말로 하자면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운 것이 아베 정치다”라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역시 공명당도 열심히 해 주시기를 바라며, 궁극적으로 ‘역사인식’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공명당은 타국을 침략하거나 무력으로 약탈하거나 이런 것은 잘못됐다고, 여당 안에서 분명히 주장하는 세력이 되지 않으면… (히구치 : 전적으로 말씀대로입니다) 저는 그러한 생각을 공명당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구치 : 물론 그렇습니다. 저도 소카대학(創価大學)출신으로, 창가교육이라는 것을 받습니다만, 우리는 창립자 이케다(池田)선생님으로부터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몇 번이고 “귀국 (한국)은 문화 대은(大恩)의 나라이고, 물론 침략전쟁은 잘못되었고, 앞으로 은혜를 갚아나가지 않으면 안 되며, 폐를 끼친 것에 대해서는 통절히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몸에 스밀 정도로(뼈저리게)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창가교육에서는 문화 대은의 나라, 귀국에서 여러 가지 가르쳐 주었다는 것을 계속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공명당이 현재 실제로 여당 안에서 있기 때문에 신뢰해 주세요. 자민당 내에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계시니까, 그 사람들과 확실히 연계(제휴)를 해서, 그런 의미에서의 정권의 브레이크 역할이 우리 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것은 우리 정당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고…(알고 있습니다).

: 저 같은 사람도 어느 정도 일본 정계사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함으로, 역시 한국으로서는 공명당과 계속 교류를 도모하고, 공명당과 우의적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하고 있어요. 그런 가운데 이번에 여러분이 오셔서 매우 감격하고 있어요. 그런 만큼 향후 여당 안에서 하나의 역할을 다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시카와 : 선배님들이 계속 일관되게 한일우호를 공명당의 기본 방침으로 임해오고, 또 돌아가셨습니다만, 후유 시바 데츠죠(冬柴鉄三) 선생님 등도 그렇고, 쿠사카와 쇼조(草川昭三) 선생님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전념해 오신 그 분들의 역사와 실적을 우리는 계승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년과 재작년 참의원선거, 중의원선거가 있었습니다만, 그 두 국정 선거(총선)에서 우리 공명당은 젊은 의원이 많이 탄생했​​고, 이제 공명당은 세대교체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공명당은 원래 정년제가 있어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양보하는 것이 당의 방침인데, 올해 공명당이 창당해 바로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며, 지금 중의원(하원격) 참의원(상원격) 합계 51 명인 국회의원 중에 약 3분의 1인 14명이 신인 청년의원이라는 것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청년위원회의 대표 5 명이 이번에 방문했습니다. 그동안 선배님들이 쌓아 온 신뢰이었거나 또는 기대이었거나 그것에 대답(부응)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더욱더 이 한국의 미디어(언론매체)를 공명당도 활용하셔서, 공명당의 창당정신이 어떤 것인지, 일찍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총리)씨의 시대에 일중 국교회복(국교정상화)의 중개 역할을 한 것이 공명당이었지요. 가쿠에이 씨는 공명당의 숨은 힘을 빌려 대사업을 이룬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좀 더 한국의 언론에 알려 공명당이야말로 동아시아 중시, 평화의 당이라고… (어필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시카와 : 얼마 전까지 공명당은 야당이었습니다만, 야당이라도 일한관계를 추진해 나가야한다는 자세를 가지고, 조선시대의 의전의 문서를 반환하기로, 바로 야당이었던 공명당이 추진을 해서 실현했습니다. 재작년입니까, 공명당의 야마구치(山口) 대표가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의뢰를 받아 당시 야당인 공명당이 땀을 흘려 실현 시켰습니다. 큰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어쨌든 지금은 정보의 시대이니까, 아무리 본인이 생각하고 있어도 발신(홍보)하지 않으면 모르지요. 우리 “월간 차세대 리더”도 그런 가교역할을 일부 목표로 하고 있어요. 한국의 젊은 리더와 일본의 젊은 리더, 그들이 정말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오늘과 같은 형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교류를 깊게 하고 우정을 심화시키는 그러한 시대에 들어가 있어요. 과거 세대는 이제 안 됩니다.

 

△야스쿠니 문제

 

 야스쿠니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거리낌 없이 참배할 수 있는, 장소를 야스쿠니 이외의 장소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공명당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시카와)
내셔널리즘이 너무 강하게 나오면서 지지율도 좀 떨어졌지요. (아베 정권의) 불(不)지지율이 올라갔잖아요. 여론 조사에서는 아베 씨가 40%대,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우선순위를 잘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 (히구치)

 

: 다른 하나는 3종 세트의 두 번째, 야스쿠니(靖国神社)의 문제가 있지요. 이것은 크게 말하면, 역사인식의 일부입니다. 그 야스쿠니를 무슨 일이 있어도 참배를 하고 싶어 한다. 자민당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는 국민의 대부분은 왜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이 나쁜 거냐고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진 영령을 진혼하는 것이 왜 나쁜 거냐고 한다. 그것은 속임수 논리인 거죠. 그런 것을 나쁘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아요. 중국도 한국도. 단지 거기에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게 문제인거죠. 그 핵심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나는 그걸 억지로 자민당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과 우익의 주장이 너무 심하면 매우 위험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반미사상에 이르기 때문이죠. 야스쿠니를 참배한다는 것은 A급 전범을 기리는 의미로 통하기 때문에 도쿄 재판을 부정하는 생각이지요. 도쿄 재판은 일단 연합군이 한 일입니다만, 그건 아시다시피 미국이 한 것입니다. 반미로 연결돼 버린다. 그러면 지금 한미일 협의나 미일협의 라든지 여러 가지 해오고 있습니다만, 이 야스쿠니 문제가 미국의 국민감정을 나쁘게 할우려가 있어요. 여러분 야스쿠니신사 유슈칸 (遊就館) 가봤습니까? 그것은 모조리 미국이 적이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야스쿠니 문제는 중국과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매우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어요.

이시카와 : 일본의 나라 안에서 전체적으로 그러한 민족주의적인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고, 특히 젊은 세대에서요.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매우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당시의 일을 일본이 정말 나빴었느냐 라고, 그런 것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것은 자민당 안에도, 예를 들면 헌법에 대해서도 자주헌법을 만들어야한다든가.

그러한 생각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매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야스쿠니문제에 대해서는 공명당은 종교적 중립으로, 누구나 거리낌 없이 참배할 수 있고,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분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장소를 야스쿠니 이외(의 장소)에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이것은 공명당의 일관된 주장입니다만.

: 그래서 그렇게 하면 해결되는 것이지죠. 왜 야스쿠니에 매달리는지, 그것은 여러 번 말합니다만, 잘못하면 반미감정에 이르게 돼, 미국과의 이반을 초래할 큰 요소가 될 수 있어요. 여기에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귀가 아플지도 모릅니다만.

이시카와 : 아니요. 그 취지는 우리 자신도 가지고 있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당연히 미일동맹, 그리고 한미동맹, 이것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기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흔들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한미일이 확고히 연계해서 북한의 핵개발이나 미사일, 납치(문제)에 대해서도 대처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가운데, 지금 말씀하신 것과 같은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일한(日韓)이 제대로 연계를 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도 한일이 확고하게 연계해 가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난해 워싱턴에 가서 국방부 사람들과 회담했습니다만, 모두 공통적으로 말했습니다.

 

△증오 연설(Hate Speech)

 

: 또 하나는 증오연설 문제입니다. 이번에 (한국) 오셔서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반한 데모)세력은 많지는 않지만 항상 있지요. 독일에서 말하자면, 네오 나치와 같은, 또는 미국에서는 KKK단 백인 우월주의 결사 같은, 매우 곤란한 존재들입니다만, 그러나 일단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존재 자체는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그게 확 밖으로 나와 행진을 하게 된 것은 아베 정권이 되고나서 부터에요. 이전에는 저런 행동은 없었습니다. 어쩐지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그들도(반한 데모단체도) 서로 통하는 것이 있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여 활개치며 행진하게 되지 않았을까 라고(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아베정권이 여러 가지 형태로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에요.

히구치 : 그렇지요. 내셔널리즘이 너무 강하게 나오면서 지지율도 좀 떨어졌지요. (아베 정권의) 불(不)지지율이 올라갔잖아요. 여론 조사에서는 아베 씨가 40%대,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우선순위를 잘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당)의 대표도 항상 아베 상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만 강해지면 (지지율이) 점점 떨어집니다. 바로 안전보장이라는 것은 한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그것을 먼저 하지 않고 내셔널리즘에 매달려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아베총리에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동아시아에서 ‘유사시’라는 것은 중국과 미국이 대결한다는 거죠. 전초전은 한국의 바다에서이거나 한국의 육지에서이다 (홍)
안전보장이라는 것은 한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 (히구치) 
다른 나라 방위를 목적으로 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는 이번에는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낸 것은 역시 여당 협의에서 공명당이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시카와)

 

: 또 하나 큰 문제는 집단적 자위권의 문제예요. 이것은 한국 국민의 대부분은 공명당이 어디선가 그것을 찌부러뜨려 줄 것으로 생각했지요. 전후 70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헌법 해석, 헌법이라고 하는 것은 궁극적인 법률이잖아요. 궁극적인 법률을 절차를 밟지 않고 해석 변경만으로 바꿔 버린다. 그런 것을 일본이 하기까지 됐는지… 모두 놀라고 있어요.

이시카와 : 바꾸게 하지 않았습니다. 공명당이. 이번에는 지켜 냈습니다. (국민들이) 좀처럼 이해하시지 못합니다. 오해가 많습니다. 완전 오해입니다. (헌법해석 변경을 못하게 공명당이)억눌렀다 라는 느낌입니다 (히구치).

: 그것은 앞으로 국회 심의에 들어가겠지요. 심의에 들어갈 때 공명당이 어디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한국의 우려는 만약 지금 그대로 집단적 자위권이 인정되면 지금 동아시아에서 ‘유사시’라는 경우는 중국과 미국이 대결한다는 거죠. 어디에서 대결하는가. 전초전은 한국의 주변에서 발생하지요. 한국의 바다에서이거나 한국의 육지에서이거나. 그리고 이 집단적자위권이 인정되면 일본은 미국을 엄호(지원)하는 구실로 한국에 상륙하는 것이에요.

이시카와 : 한국은 주권 국가니까요. 주권 국가의 요청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 아니요. 지금의 그것으로는 미국이 요청했을 경우, 혹은 미군이 위기에 처했을 경우는 일본이 출동하게 되어 있어요.

이시카와 : 매우 오해하고 있는 것은 이번 각료회의(국무회의) 결정은 좀 전 잠깐 말했습니다만, 다른 나라 방위를 목적으로 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는 인정하지 않는다. 국무회의에서 결정(의결)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자국방위, 일본방위만을 위해서 밖에 자위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헌법 9조의 지금까지의 정부 해석과의 논리적 정합성(이론에 모순이 없음)을 중시해서, 그 범위에서 밖에 자위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을 공명당의 힘으로 비틀어 눌러, 원래의 안보법제간담회 보고서의 내용과 완전히 다릅니다. 전혀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 아베 씨가 그림연극 같은 것들을 보여 주었잖아요. 그것에 뭐라고 쓰여 있는가 하면, 주한 일본인 피난 시에 선박이 모자라 미국의 함선에 실어 일본으로 향하고 있을 때에 미국의 함선이 공격받았을 경우는 (일본이) 공격할 수 있다고 되었지요.

이시카와 : 어디 까지나 자국방위의 목적, 일본을 지키기 위한 것뿐입니다.

: 자국방위 뿐이라면, 집단적자위권은 필요 없어요. 지금까지 충분히 해온 것이니까.

이시카와 : 지금까지도 실은 정부 해석에서는 거기는 자국방위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고 말해왔어요. 즉 애매했었지요. 일본이 헌법 9조 하에서 어디까지 자위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매우 애매하게 하고 있었던 것을 이번에 명확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왜 애매했었냐하면 일본 근해에서 일본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미국 함선이 공격을 받았을 경우, 그 공격이 자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인정되면 자위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도 자국방위 목적의 집단적자위권은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 그렇다면 해석 변경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명당은 계속 주장하고 있었지요.

이시카와 : (공명당은) 타국방어를 위한 집단적자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금 자민당이 예시하고 있는 것은 모두 지금까지 개별적 자위권의 범위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지금도 같은 입장입니다.

: 그 주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뀐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두 의원 :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면 더더욱 불필요하지요.

히구치 : 주위에서 보면 미국의 국기가 부착되어 있는 선박에 일본인이 계셔서 우리는 개별적인 자위권으로 국민 여러분을 보호하기 위해가는 것이지만, 미국의 깃발이 붙어있는 선박을 지키기 때문에, 집단적 자위권이지 않느냐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때도 있겠지요(그런 말을 들을 때(수)도 있겠지요) 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경찰권과 개별적 자위권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시카와 : 개별적, 집단적 형식으로 어느 부대가 습격 받는가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만, 헌법에는 사실 자위권이라는 말은 일절 나오지 않아요. 자위권이라는 행사가 왜 가능한가하면 헌법 제13조에 “국민의 생명, 국민의 자유,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옹호하기 위해 정부가 또는 입법도 최대의 존중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에, 헌법 9조가 전쟁을 포기하고 부대도 포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위대를 가질 수 또는 자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이 논리 구성인 것이에요. 이 논리구성의 범위 내에 있으면 자위 조치를 사용할 수 있고, 이 논리구성 이상의 자위 행동은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이번에 지켜 낼 수 있었습니다.

: 왠지 선문답이네요. 그런데 이시카와 씨에게 꼭 듣고 싶었던 것은 이라크 전쟁 때 사마와에 가셨었지요. 그때는 아직 집단적자위권 문제가 전혀 나오지 않을 때지요. 개별적 자위권만의 이야기로(일로). 그 때조차 소위 잘못된 전쟁, 부시의 미스테이크 전쟁 이지요.

대량살상형 세균무기가 없었는데, 있다고 오인해서 시작한 전쟁이잖아요. 거기에 일본은 당당히 후방이든 전방이든 참가한 것이에요.

이시카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