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오후 3시 26분

日공명당, ‘재일한국인 차별철폐’가 진정한 한일우호

 

[일본 의원 2명 직격 인터뷰 2/2]

日공명당  이시카와 히로타카(石川博崇)의원,  히구치 나오야(樋口尚也)의원

 

공명당 “재일한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주어야”  

공명당, 재일한국인의 차별철폐가 진정한 한일우호이다

 

박승민 기자 (park83@sisareport.com)

 

 

 

△재일한국인 문제

홍성곤 고문 : (洪性坤, 이하 홍) 또 하나는 재일한국인 문제인데요. 공명당(公明党)은 종래부터 매우 적극적으로 임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재일한국인은, 샌프란시스코조약 발효 이전에는 일본인이었거든요. 음, 일본인이라고 할까 일본인화 되어버렸지만,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것으로. 한국인으로 일본 육군 중장이 된 사람도 있거든요. 알고 계십니까? 이것은 꼭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줬으면 합니다만, 나와 같은 성씨에요. 홍사익(洪思翊).

이시카와 히로타카 의원(石川博崇, 이하 이시카와) : 친족입니까? 성씨도 같은데.

홍 : 글쎄요, 더듬어 가보자면… (웃음). 이 분은 물론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수재로 한국인으로서 본명으로 일본 육군중장이 된 이 사람은, (두 의원 : 본명 그대로?) 매우 드물지요. 그 정도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사람은 종전(終戰) 직전에 필리핀 포로수용소의 소장을 맡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거기에 미군이 상륙해 붙잡혀서 사형되었어요.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군인이니까 어쩔 수 없지요. 문제는 이 사람의 부인이 일본의 후생성(보건복지부에 해당)에 군인연금과 기타 연금의 수급을 신청했는데, (일본 정부가) “아니요, 국적이 이미 일본이 아니니까“라는 이유로 모두 컷트 당했어요. 이미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내가 왜 이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 사람이야말로 최고 수준(Top Level)의 사람이지요. 군인 중에서 대장 다음은 중장이니까. (웃음)… 거기까지 올라 일본 국가를 위해 공헌한 사람을 내던졌다. 샌프란시스코조약이라는 것은 이 사람의 의사가 아니거든요. (이시카와 : 그렇지요) 일본 정부가 취한 조치였고, 그렇지만 그것을 구실로 일방적으로 국적을 박탈하고 권리를 빼앗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시카와 : 그것은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홍 : 문제는 남겨진 유족이에요. 생계를 꾸릴 수 없기 때문에, 거지 생활과 다름없었지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어요. 그랬더니 한국에서는, 너희들은 친일파가 아닌가? 라며, 그래서 또 발길질 당해 살아갈 곳이 없었지요. 이것은 뭐 어떤 의미에서 재일한국인(재일동포)의 상징 같은 것이에요. (일본인에게) 재일한국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재일한국인이 일본에서) 여러 가지 왠지 나쁜 일을 하지 않을까, 파칭코(경영)하고 있지 않는가 라고 하지만, 이 사람(홍사익)의 이야기를 하면 모두, 과연! 그랬었던가요 라고 말합니다. 나는 재일한국인 (문제)의 본질은 이 사람에게 사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일방적으로 국적을 박탈시키는 거냐고. 이것은 말이에요, 어느 식민지 국가도 말이죠, 예를 들면, 영국은 인도 사람을 (본국에) 데리고 왔고, 프랑스는 베트남인을 데리고 와서 독립했을 때, (식민지국가 국민에게) 국적을 선택하도록 시켰죠. 어느 나라에서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독일의 경우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지만 패전 후, 국적을 오스트리아로 할 건지, 독일 국적을 그대로 유지할 건지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일본 국적을 ​​박탈했어요. 이것은 요, 어떻게 ​​보더라도 이상하지요. 일본은 왜 그렇게 했느냐하면, 즉 돈의 문제예요. 글쎄, 돈 되는 것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모양입니다만(웃음), 재일한국인을 일본 국적으로 ​​그대로두면 이 사람(홍사익)으로 대표되는 것처럼, 은급(恩給)도 지불 않으면 안 되고, 연금도 지불 않으면 안 돼, 그것을 피하려고 한 것이지요(그것으로부터 도망가려 한 것이지요). 그야말로 교활하고 빈틈없다. 인품과 같이 국가에도 국가의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 것을(그런 사실에 대해) 모처럼의 기회이니까.(웃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일본에서 조사해보는 것도…)
이시카와 : 아닙니다. 그것은 저도 좀 공부하겠습니다.

홍 : 이것을 요, 후생성에 말이죠. 한번 문의해서, 이런 이야기를 한국에서 듣고 왔는데, 이 사람(홍사익)의 건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이시카와 : 지금 그 유족, 가족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홍 : 유족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살 수 없게 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만, 그 후 소식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도 돈이 없으면 방법이 없겠지요.

히구치 나오야 의원(樋口尚也, 이하 히구치) : 홍사익 중장 부인의 처참한 생활은 50년대 60년대의 이야기입니까? 전후 직후이겠죠. (샌프란시스코조약은) 52년에 발효하여 그 후의 이야기이지요. 저희들도 (재일한국) 민단의 단장님, 부단장님에게도 자주 지도받고(말씀을 듣고) 있고, 우리가 선배 쿠사카와(草川)선생님이나 후유시바(冬柴) 선생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것은, 80년대에, 공명당이 재일한국인 여러분의 차별철폐가 진정한 일한, 한일의 우호라며 선배가 정해, 민간대사 같은 활동을 했습니다. 민단 여러분은 그런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또 매우 열심히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해 주십니다. 선배들이 말한 것은 말이죠, 국민연금의 가입이구요, 그리고 국민체육대회 참가, 공기업 취업, 지문날인철폐, 무선전파의 사용허가, 서울올림픽의 기부금 세액공제, 이런 것을 공명당이 했다는 것까지 (저희들은) 이어받았습니다. 다음은 민단에서 말씀하신 것인데요, 사할린잔류 한국인문제. 그때 쿠사카와 선생님에게 들었는데요, 민단의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와서 다리에 매달려 울며, 사할린에 있는 남편과 만나고 싶다는 말씀했다고. 사할린에 있던 일본인은 귀국했는데, 한국인은 한국과 구소련이 국교가 없었기 때문에 귀국도 못하고 아무도 만나러 갈 수도 없었던 때에, 그 민단의 아주머니가 (공명당을 찾아) 온 것이에요. 그래서 1980년에 쿠사카와 선생님이 단신 사할린에 가서 길을 열어, 협상한 끝에 역시 일본에서라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공산당도 말해줘서 도쿄에서 1987년에 제1호 면담을 하시게 된 것이지요. 그 후로 200쌍(부부)의 도쿄에서의 재회가 있었고, 한국에 돌아오신 분도 계시지요. 그런 선배로부터 계승하고 있는 것은, 역시 일본에 계신 (재일한국인)여러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지금 선생님(홍고문)으로부터 배운 것처럼 차별을 어떻게 철폐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며, 지극히 한일관계에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으므로, ​​그래서 우리세대도 제대로 그 일을 열심히 해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홍 : 그것은 정말 계속 노력해주셨으면 합니다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요, 역시 취직차별이에요. 나는 일본의 교육제도는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대학 수험은 능력이 있으면, 도쿄(東京)대학이든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지요. 문제는 사회에 나온 다음에 재일한국인으로 도쿄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도대체 어떤 인생을 걷고 있는가 인데, 취직할 곳이 없어요. 지금은 외국계 회사가 일본에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외국계가 재일한국인들의 우수한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지요. 그래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것은 진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역시 일본의 공무원으로 채용해 달라는 것이다. 지방을 포함해서 말이죠. 그리고 일본의 대기업들도 차별하지 않고 고용해 달라. 요컨대 일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이에요. 이것은 일반 외국인도 뉴커머(New Comer)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요. 일본사회의 구성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만든다. 이런 사람들(재일한국인)로부터 예를 들어 정치자금이 정치인에게 전해져도 말이죠, 그것이 정정당당한 것이라면 정치자금 규제법에 위반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죠. 민주당의 마에하라(前原)씨. 그 사람의 케이스는, 마에하라 씨는 중학생 때 교토(京都)로 이사했어요. 그분은 굉장히 가난해서요, 밥을 먹을 수 없었어요. 그것을 인근 불고기집 (재일한국인)아줌마가 불쌍하다며 밥을 먹게 해주었는데, 그러는 동안 (마에하라의) 팬이 되었지요. 연간 2만~3만엔을 기부한다. 요컨대 팬 심리지요(그냥 한 사람의 팬으로서 마에하라 씨에게 소액 기부한 것이지요). 그것을 문제시한다. 불고기집의의 아줌마가 연간 2~3만내고 뭔가 한국의 이익을 위해 부탁할 목적이 아니잖아요? 그런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거에요. 그렇지만 악의가 있으면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현행법입니다. 그래서 현실에 입각한 법률을 만들어야 합니다. 역시 일본에서 영주권을 가진 한국인은 이미 준 일본인이라고 취급해서 법적으로는 똑같이 대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지요). 생각지 않는 곳에서 모순이 드러나지요.

이시카와 : 여러 법제도 중에서 재일한국인 분들이 고생하고 계시는 장면(경우), 케이스가 아주 많아서 말이죠,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되어 특별 영주자의 재일한국인 분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늘어나거나, 당연히 편리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예를 들면, 특별 영주자 분들이 영주권을 7년마다 갱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갱신을 하는 경우에, 깜박 실수하면 자신의 재류자격(일본체류자격)이 끊어졌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그것은 역시 (자치단체에서)통지를 보내주지 않으면 (안 되죠). 갱신하지 않으면 불법체류로 직무 질문을 받을 가능성도… 그런 여러 케이스가 있는 가운데, 그 목소리를 일본의 정치에 제대로 전달해서, 하나하나, 지금 말씀 드린 것도 개선하기 위해 임하고(착수하고) 있습니다만, 처음에는 공명당이 (재일 한국)민단 분들이나 재일한국인 분들에게 청취조사도 했습니다. 오사카는 제 (선거구)지역에 많이 계십니다만, 그런 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습니다)

홍 : 참정권 문제인데요. 재일한국인은 일본사회의 구성원이니까, 당연히 참정권을 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시카와 :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관되게 공명당이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을 하고 추진해 와서(오지만)…
홍 : 좀처럼 실현되지 않습니다만… (웃음)  

이시카와 : 그것은 우리의 역량부족이지만요. 이것도 거꾸로 반대하는 분들에게 오해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호주의로, 이를테면 해외에 있는 일본인들이 거기에서 지방참정권을 부여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일본인에게도 지방참정권을 부여한다면, 상호주의로 일본도 한국인에 제공해야한다 라고 말하면, 일본에서 반대하고 있는 분들이 아, 그렇다면 뭐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어떤 외국인에게도 모두 지방참정권을 주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홍 : 아니요. 전혀 다른 의미(사정)이며, 재일한국인이라도 이를테면 최근 한국에서 일본에 온 뉴커머(New Comer), 이것은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전전(戦前)에 이른바 식민지시대에 직간접적인 이유가 있어서 일본에 온 그 자손이지요. 이것으로 한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본인과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생각합니다).

이시카와 : 특히 세금을 납부하며 지역의 과제 해결을 위해 재일한국인 분들도 3세, 4세도 일본에서 많이 생활을 하며(거주하며), 또한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홍 : 사실 저는 1960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해였는데요, 그 1년 전이네요, 59년에 북한으로의 귀환사업이 시작된 거죠. 오래된 이야기니까 모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10만명이 낯선 북(조선)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그들이 왜 북쪽으로 갔는지. 그것은 일본이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내 주위에서도 선배들로 도쿄대학(東京大學), 교토대학(京都大學), 오사카대학(大阪大學)을 나온 사람들이 택시 운전수 밖에 밥을 먹는 방법이 없으니까. (북한이)환영한다고 하면 북한이라도 갈 수 밖에 없었지요. 사실을 말하면 나도 갈 예정이었는데, 그 전에 일단 비교하기 위해 세계를 어떻게든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돈이 없으니까, 무료로 세계를 보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다가, 선장을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도쿄수산대학(東京水産大学)이라는 곳에 들어갔던 것이에요. 그래서 재일한국인 중에서 수산 해양을 전공 한 것은 나 혼자예요. 그런 입장에서 어떻게든 일본의 해양 수산업계와 한국과, 지금은 서로 이 분야의 기술이 상당히 발전해 있어서, 상호 보완기술이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조인트 시키려고 합니다만, 순조롭게 되지 않습니다. 내 역량 부족이 원인이지만.

 

△공동사업과 민간교류

이시카와 : 나도 원래 대학시절은 해양생물학이었습니다.
홍 : 그랬었지요. 나도 그래서 놀랐습니다.
이시카와 : 홋카이도(北海道)대학의 수산학부에서 졸업 연구를…
홍 : 이것은 인연이 깊네요.
이시카와 : 제 대학 졸업연구는 인공위성에서 해수면을 24시간 365일 모니터링을 해, 그것에 의해 플랑크톤의 이산화탄소 흡수율을 측정하면… 그러한 연구했습니다. 매주 배에 타서 그물을 던지고…

홍 : 한일 수산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서로 자원의 탈취 전쟁을 한 것이지요. 어업교섭도 그렇고. 내가 몇 만톤을 잡는다. 넌 얼마만큼 해라라든가… 이런 것만 했다. 결과적으로 자원이 점점 줄어 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지 말고, 이만큼 바이오이든 무엇이든 기술이 발달하고 있으니 공동으로 종묘생산을 해보자, 자원을 늘리자며. 옛날에는 일본 수산청 주변에서도 흥미가 있어서, 그럼 한국과 일본의 공통의 해역에서 키우기 쉬운 어종을 어디에서 ​​종묘하면 좋을 것인지, 제주도가 가장 좋을 것이다 라고 해서, 토지의 선정까지 진행한 시대(시절)가 있었거든요. 그런 것이 실현된다면 그것이 한일우호로 연결되는 거죠.

이시카와 : 우리 여러 의원과 논의를 하는 하나의 테마가, 공통의 과제, 공통의 주제, 서로 이익이 되는 윈-윈인 주제를 확실히 촉진(추진)해 나가는 것. 지금 예를 들면 환경 문제, PM2.5 대기 오염, 이것은 한일 공통의 과제이지요. 저출산 고령화, 일본은 여러 가지 사회보장제도를 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한국의 고령화율(속도)은 일본을 앞지르니까요. 일본의 경험이라는 것은 한국에서도 반드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올림픽의 상호 협력. 평창과 도쿄. 그 속에서 관광 촉진(홍보) 이라든지, 이러한 테마를 역시 차분히 적극적으로 협의하는 환경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은 결코 과거의 것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반성위에서 미래지향적으로 이러한 공통의 과제에 대해 논의 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홍 : 지금까지의 정치인들은 총론이 많았지요. 총론은 모두 찬성해요. 이제는 특히 젊은 여러분은 총론이 아니라 구체론(각론)을 다양하게 내서 구체론(각론)을 협의하면서 실현시켜 나가야 합니다. 

히구치 의원(왼쪽)과 이시카와 의원(오른쪽)
이시카와 :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청소년 교류이지요. 젊은 시절에 중학생, 고교생, 대학생도 좋으니까, 서로의 나라를 직접 보는 것. 미디어를 통해서 보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실제로 보고, 피부로 스쳐 느끼고, 그러한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양국의 미래에 큰 차이를 가져 올지도 모르지요.
홍 : 청소년 교류도, 육상에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에는 수산고등학교, 이제 수산이 사양화하고 있으니까 학교도 연습선박도 남아있지요. 그런 것을 이용하여 선상 교류를 한다든지.

이시카와 : 실은 그것을 제가 얼마 전 국회질문에서 거론했습니다. 일본은 선원 되려는 사람이 적다고. 지난 세월호의 매우 참혹한 사건이 있었지만, 세월호 사고의 교훈이라는 것을 서로 지그시 파악해 가는 것도 필요하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본은 선원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매우 적은 가운데,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라든지, 그런 곳은 선원에 대한 기술협력을 하고 있지만, 역시 한국이나 중국과의 사이에 서로 선원의 기술협력을 하면서 향상을 언젠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위원회에서 제기했습니다. 외무장관으로부터 국토교통성으로부터 답변을 이끌어냈습니다.

홍 : 중국과도 상당히 냉각되어 있죠. 그건 어떻게든 그 얼음을 녹여야합니다만, 좀처럼 그 아베 정권이 계속되는 한 정상끼리 ​​어렵겠지요. 그래서 그 저변에서 아래쪽으로부터 여러 가지 구체적인 방법으로 녹여(풀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서로의 교류를…

이시카와 :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우리도 첫 걸음이라고 생각함으로 지속적으로 일한 우호를 강화하고 노력해 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홍 : (아사히신문, ‘나의 시점’기고를 보이며) 이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고 천황사죄를 언급하며 일본 측에서 대단한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요. 그 무렵 한국국민의 심정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어서.
이시카와 : 재일한국인 분들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방한 소감

박 : 실제로 한국에 오셔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소감은?
이시카와 : 나는 한일관계에서 여러 가지 과제가 있는 가운데, 그 흐트러져있는 것을 하나라도 풀어 갈 수 있도록 해 나가고 싶다는 결의로 가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다양한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아직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반드시 일한문제의 해결을 위해 나갈 수 있다는 확신과, 어떻게 해서든 일한관계를 진전 시켜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통적인 의사를 한국의 여러분들로부터도 느꼈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지금 아직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강하게 느끼는 부분이에요.

히구치 : 매우 유익한 매일이며, 정말 (한국에)와서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늘도 많은 공부가 되었고, 앞으로도 공부해 나가겠습니다. 오늘 DMZ(비무장지대)에 갔습니다. 그것도 또한 매우 좋았고, 바로 안내해준 군인(사병)은 징병제도로, 지금 들어온(입대한) 분으로, 일본 히토쓰바시대학(一ツ橋大学)에 유학했던 일본어가 유창했던 분이 안내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여러가지 최전방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징병제도에 대해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그가)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좋았나요? 라고 묻자,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고, 「평화를 지켜나가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대단히 힘들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스무 살 전후의 젊은 분이, 일본은 일부 어딘가 ‘평화망상’이라고 말합니다만. (나)자신도 그랬었나? 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샐러리맨으로 있었습니다만. 역시 평화를 만들어가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귀국에 와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더라도 일한, 한일, 일중, 중일도 그렇지만요, 평화롭고 핵무기문제도 북한문제도 확실히 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의를 새롭게 할 수 있어, 정말로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재일동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책임

홍 : 오늘로 (일정의 딱) 중간이군요. 앞으로 절반 한국의 여러 사람을 만나실텐데요, 이런 관점에서 질문을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사실 한일기본조약이 1965년에 체결 된 것이지만, 그 때 박 (정희)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어요. 그 안에 재일한국인에게 보내는 담화가 있었어요.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면, “지금까지 여러분은 이국의 일본에서 쓰라림(고초)을 겪으며 참혹한 고생을 하셨다. 이 책임은 전적으로 한국 정부에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한국정부가 재일동포 여러분이 고생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내용입니다. 그 담화가 그 뒤에  한국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라고, 실행했습니까? 라고, 그러한 취지로 한번 물어봐 주세요. 우리 공명당은 공명당으로서 재일한국인들에 대해 이만큼 노력해오고 있다 라고. 한국정부는 도대체 어떻습니까 라고.  이런 담화를 냈습니다 라고. 그것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바로 담화의 내용이 나옵니다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약속 해놓고 실제로 뭘 했는가? 내가 아는 한 아무것도 안 했다. 거꾸로 역대 총리, 역대 무슨 장관이라는 사람은, 일본에 와서 재일동포를 모아 놓고, 여러분 애국이란, 일본에서 빠칭코를 (경영)하든 무엇을 하든, 돈을 벌어서 그 돈을 조국에 기부하는 것이라고, 같은 일을 계속(여러번) 되풀이했다. 그래서 재일동포들은 그것을 믿고 상당한 돈을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 때는 100억엔을 기부했지만 재일동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돈의 일부로 세운 올림픽회관을 재일동포회관으로 해야 합니다. 정부가 그만큼 약속을 해놓고, 그 후에도 계속 어떤 의미에서 뜯어내는 거에요. 뜯어내며 기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일동포를 멸시하고 있어요. 그래서 공명당도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여러분도 재일동포를 위해 성의를 다해달라고… (히구치 : 그렇습니다)

히구치 : 지금 민단에서 탈북자 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말씀하신 60년대에 (북한에) 간 사람들의 2세 3세가 중국을 거쳐 일본에 돌아오셔서, 최근 11년간 200명의 탈북자 지원을 민단에서 인도적 입장에서 집구하기부터, 언어 문제, 취업활동, 쭉 해주고 있어서, 정말 머리가 숙여질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정부 분들은 그것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그러한 것을 민단과 협력하여… 한국정부도 재일한국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셔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바로 민간 대사로 (일본에)계시기 때문입니다. 귀중한 지적해 주셨으며, 지금 다시 한 번 공부가 되었습니다.

홍 : 이것은 일본 분한테 지적받으면 한국의 당국자는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 하지만요.
이시카와 : 우리도 노력하겠습니다만, 함께 노력합시다 라고 말할 때, 재료로써 꼭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홍 : 그러한 형태로 한국의 현재의 당국자에게 재일한국인의 문제를 호소할 필요가 있어요. 이것은 숫자가 60만명이나 있어요. 6만이거나 6천명이 아니에요. 이만큼 큰 존재를요, 대통령이 허세를 부려놓고서, 아무것도하고 있지 않는 것은, 이것은 국가로서 배신이에요.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재일동포의 유망한 인재가 억울한 인생을 보냈는가라는 것이지요.

 

△외국인 참정권

이시카와 : 재외 투표권이 3년 전 입니까, 실현을 했다는 것은 재일한국인 분들에게는 하나의 큰 움직임이었을까요.
홍 : 음, 솔직히 말해 재일동포가 한국에서 투표권을 가진다해도 그다지 현실적인 효과가 없어요.
이시카와 : 귀화를 하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고 계시는 것은, 역시 조국에서 정치적 의견 표명을 확실히 하고 싶다는…

홍 : 오히려요, 그로 인해 일본의 여러분(일본인)으로부터 참정권에 대해, 너희들 이중의 권리행사를 할 생각인가라는 반론을 해오는 것이에요.
이시카와 : 일본인도 한국에 있는 일본인은 재외투표권이 있고, 지방참정권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홍 : 아니요,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이를테면 재일한국인은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권리를 행사하는가, (그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라는 말이죠.

이시카와 :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홍 : 아니 아니요. 서울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 재외 투표에서 일본의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지요. 그 케이스와, 예를 들면 브라질의 일본계인이 브라질에서도 일본에서도 모두 참정권을 가진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시카와 : 하지만 외국인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그런 것을 인정하고 있지요.
홍 : 아니 아니요. 그것은 일반적인 외국인문제의 논의에서이고 재일한국인의 경우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이시카와 : 외국인 참정권이라는 것은 지방 참정권입니다만. 당연히 그것을 인정하는 나라…

홍 : 예를 들면, 스위스라든지 북유럽 국가 그런 나라의 경우는 국정(총선)도 지방(선거)도 인정해요. 또한 피선거권 선거권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일한국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재일한국인의 역사적 경위에 비추어 재일한국인 고유의 문제로서, 스위스처럼 해 달라는  것이지죠. 스위스라든지 독일처럼 말예요. 독일은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모두 선거권을 주고 있어요.
이시카와 : EU에서 온 외국인만이 아닐까요.
홍 : 식민지시대부터 일본에서 거주한 사람과 일본에서 태어난 그 자손에 한하여 일본인과 동등한 권리 의무를 부여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제한 없는 참정권을 부여 해달라는 것이지요. 일반 외국인과 같은 씨름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일본에 있는 일반 외국인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되죠. 개인적으로는 재일한국인은 생활 기반이 있는 일본에서 참정권을 가져야 하며, 한국에서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참정권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이시카와 : 재일한국인을 지원하겠습니다 라고, 선언한 한국정부가 제대로 재일한국인 분들을 지원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역시 투표행동을 통해 의견 표명한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지 않습니까?

지난 8월 22일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홍 : 문제는요, 재일한국인 문제가 정치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원을 움직인다는 것은 특정의 선거구에서 재일한국인이 압도적으로 표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조 의원을 선출할 수 있는 케이스입니다. 재일한국인은 일본에 있으며, 한국 정치를 모르고 출신지도 한국에서 흩어져있습니다.
이시카와 : 재일한국인은 일본에서 한국의 대통령선거에도 선거할 수 있지요?
홍 : 대통령 선거에도 투표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큰 임팩트(영향력)는 갖지 못하지요. 저는 몇 번이고 말합니다만, 재일한국인은 어디까지나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한 사람은 일본의 정치에 참여해야하며, 한국에 참여할 의미는 별로 없다, 라는 것이 나의 지론 이지죠. 그것은 일본 분들이(일본인들이) 양쪽에서 다 투표해도 상관없어요 라고 한다면, 찬성한다고 한다면 다른 문제입니다만.

이시카와 : 공명당은 그러한 입장에서 (재일한국인에 대해 양국에 투표가 가능한) 지방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만.
홍 : 그것은 이상론이에요. 일본의 대부분의 국민은 지방참정권조차 아직 반대하고 있어요. 우리가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그런 것이라면 (재일한국인의 참정권이) 필요하네요 라고, 그러한 경우는, 자네들은 한국의 참정권을 포기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의견이 매우 많아요. 양쪽 다 라는 것은(투표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고.
이시카와 :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전혀…
홍 : 그것이 현실론이랍니다.
이시카와 : 그런 목소리가 큰 것은 사실입니다. 

히구치 : 선생님, 후유시바 데츠죠(冬柴鉄三) 선생님이 말이죠, 변호사이니까 자신이 직접 원고를 쓰고, 스스로 법안도 만들고, 원안(시안)을 낸 것이 지금의 지방참정권의 기반이 되었습니다만, 말씀하신대로 전혀 진전이 없어요. 그래서 찬스를 놓친 때도 있었다고 선배들로부터도 들었기 때문에, 정말 때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되지요. 좀처럼 그때는(기회는) 오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것을 모두가 때(찬스)를 만들어… 아직 저희 미력하지만, 먼저 지방참정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의원 : 아니요, 아니요. 공부가 되었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홍 : 수고하셨습니다.

 

 

—————————————————————————-

公明党は、「在日韓国人に地方参政権を与えるべきだと思う」

公明党 「在日韓国人のみなさんの差別撤廃が真の日韓友好である」

△在日韓国人問題

洪性坤顧問(以下,洪):もう一つは在日韓国人の問題ですよね。公明党は従来から非常に積極的に取り組んでもらってるという事なんですけれども、ご存知のように在日韓国人というのは、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発効以前は日本人だったんですよ。まあ、日本人というか日本人にされちゃったんだけどね、天皇の赤子と煽られて天皇陛下のために命を捧げろということで。韓国人で日本の陸軍中将になった人もいるんですよ。ご存知ですか。これ是非とも興味を持って調べて欲しいんですけども、私と同じ名前なんです。洪思翊(ホン・サイク)。
石川博崇議員(以下,石川):ご親族ですか。名前も同じということで。

洪:まあ、辿れば・・・(笑)。この方はもちろん陸軍士官学校出身の秀才で、韓国人の本名で日本の陸軍中将になったこの人は、(両議員:本名のままで?)非常に珍しいですよ。それくらい、ずば抜けた頭脳を持ってたということですね。この人は終戦間際にフィリピンの捕虜収容所の所長を務めており、運悪く、そこへアメリカ軍が上陸して捕まって死刑になる訳ですね。それはある意味で軍人だから仕方がない。問題はこの人の奥さんが、日本の厚生省に軍人恩給その他の年金の受給を申請するんですけれども、(日本政府が)「いや、国籍がもう日本じゃないと」ということで全部カットされる訳ですね。もう受け入れてもらえないんですよ。私がなぜこの人の話をするかというと、この人こそトップレベルの人ですよね。軍人の中で大将の次は中将なんだから(笑)・・・。そこまで登り詰めて日本国家のために貢献した人間を放擲する。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というのはこの人の意思じゃないんですよ。(石川:そうですね)日本政府がとった措置であって、だけどそれを口実に一方的に国籍を離脱させ権利を奪うのは酷すぎると思うんですよ。
石川:仰るとおりです。それは・・・

洪:問題は残された遺族ですよね。生計が立てられないということで、もう乞食同然ですね。で、韓国へ戻った。そうしたら韓国ではお前たちは親日派じゃないかと。それでまた足蹴にされて、生き場がないんですね。これはまあ、ある意味在日の象徴みたいなもんですよ。在日のことを話し出すと、何か悪いことやってんじゃないか偏見を持つ人がいますが、この人の話をするとみな、なるほど!、そういうことだったのかというんです。私は在日の本質はこの人にあると。なぜ一方的に国籍を離脱させるんだと。これはね、どこの植民地国家もですね、例えば、イギリスはインド人を連れてきた、フランスはベトナム人を連れてきた、独立した時に、国籍選択をさせたんですよ。どこでもやってるんですね。で、ドイツの場合は、オーストリアを併合してましたが敗戦後、国籍をオーストリアにするのか、ドイツ国籍をそのまま保持するのか、自由選択させたんです。日本だけが問答無用で一方的に日本国籍を剥奪したんですね。これはね、どこから見てもおかしい。日本はなぜそうしたかというと、要するにお金の問題ですよ。まあ、金目という言葉が流行ってるらしいが(笑)、在日韓国人の日本国籍をそのままにしておけば、この人に代表されるように恩給も払わなきゃいかん、年金も払わなきゃいかん、それを逃れようとしたんですよね。いかにも小賢しい。人柄と同じで国家にも国柄というのがある。その辺のことをせっかくの機会ですから(笑)、こういう話を聞いたと。
石川:いや、ちょっと私も勉強します、それは。

洪:これをね、厚生省に一回問い合わせてもらって、こういう話を韓国で聞いてきたんだけども、この人の件はどうなってるんだと。
石川:いまあれですか。そのご遺族、ご家族?
洪:遺族はね、さきほど言ったように韓国でも日本でも住めなくなって、アメリカに移ったという話なんですけど、そのあと消息不明なんですよ。日本の陸軍中将までやったひとの家族ですよ。アメリカに移っても金がなくちゃ仕様がない訳ですよ。

樋口尚也議員(以下,樋口):洪思翊中将の奥さまの凄まじい生活は、50年代60年代の話ですか。戦後直後でしょう。(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は)52年に発効してそのあとの話ですね。あの、(在日韓国)民団さんには私たちもいま、団長、副団長にももう頻繁にご指導頂いてて、私たちが先輩の草川先生や冬柴先生から伺ってるのは、ちょっと80年代ですね、公明党が在日韓国人のみなさんの差別撤廃が真の日韓、韓日友好だというふうに先輩が決められて民間大使みたいな活動をしました。民団さんからは、もう極めて一生懸命にいろんなことを仰って頂いてて。先輩方が言ってたのはですね、国民年金の加入ですね。それと国民体育大会の参加、公営企業への就職、指紋押印の撤廃、無線電波の使用許可、ソウルオリンピックの寄付金の税額控除、こういうことを公明党はやりましたと、いうことまで引き継ぎました。あとは民団さんからお話であれだったのは、サハリン在留の韓国人問題。あの時に草川先生に聞いたらですね、民団さんのおばちゃんが自分のところに来て、足にしがみついて泣いて、サハリンにいる夫と合いたいというふう仰ったと。サハリンに居た日本人は帰国したが、韓国人は、韓国と旧ソ連が国交がなかったので帰国も出来ず会いに行くことも誰もできなかった時に、その民団のおばちゃんが来たのです。で、1980年に草川先生が単身サハリンに行って切り開いて、で、交渉したあげく、日本で再会出来ればいいじゃないかと共産党もいってくれて、東京で1987年に第1号の面談をされる訳ですよね。そのあと200組の東京での再会があって、韓国にお戻りになった方もいらっしゃる。そういう先輩から受け継いでいることというのはやはり日本にいらっしゃる皆さんのお声をちゃんと聞いて、いま先生(洪顧問)から教わったような、差別をどう撤廃していくのかということで、極めて日韓関係にとって大事だということを教えて頂いてますので、それは私たち世代もしっかりそのことを頑張ってまいりたいと思います。

洪:それは本当に引き続き頑張って頂きたいですけども、一番問題なのはね、やはり就職差別ですよね。私は日本の教育制度というのは、非常に立派にできてると思いますよ。大学を受験するのは、能力があれば、東大でもどこでも入れる訳ですよね。問題は社会へ出てからです。在日韓国人で東大まで出た人が一体どういう人生を歩んでいるのかと、就職先がないんですよね。いまは外資系が日本に沢山来てますから、外資系が在日の優秀な人を雇うんですね。それである程度救われるんですがこれは本当の解決にはならない。やはり日本の公務員で採用してもらう、地方を含めてですね。それから日本の大企業も差別しないで雇う。要するに日本社会の構成員だということですよ。在日は一般外国人でもニューカマーでもない訳ですから。歴史上の問題がある訳ですからね。日本社会の構成人として生活出来るよう特別法を作る。こういう人たちから例えば、政治資金が、政治家に渡ってもですね、それが堂々としたものである限りは、政治資金規制法に違反しないという形にしないと。民主党の前原さん。前原さんは中学生のときに京都に引っ越したんですよ。あの方はものすごく貧しくてですね、もう飯が食えなかった。それを近所の焼肉屋のおばちゃんが可愛そうだということで飯を食わしてそのうちに国会議員にまでなったのでフアンになった訳ですね。年間2万か3万円を寄付する。要するにフアン心理ですよ。それを問題にする。焼肉屋のおばちゃんが年間2~3万出して、何か韓国の利益のために頼む目的じゃないでしょう。そんなこと誰でもわかってるんですよ。だけど悪意があればそれが問題になるのが現行法です。だから現実に即した法律を作るべきです。やはり日本で特別永住権を持った韓国人は法的に公民権を付与する制度にしないとですね。おもわぬところで矛盾が露呈するんですよね。

石川:いろんな法制度の中で在日の方々が苦労されてる場面、ケースが非常に多くてですね、入管法が改正されて、特別永住者の在日の方々がや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が増えたり、当然便利な場面も沢山あるんですが、実際に例えば、特別永住者の方々が永住権を7年ごとに更新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も更新をするという場合に、うっかりすると自分の在留資格が切れてるかどうかもわからない。それはやぱり通知をもらわないと。、更新しないと不法滞在で職務質問をかけられてしまう可能性も・・・そういういろんなケースがある中で、その声を日本の政治にきちんと届けて、一つ一つ、いま申し上げたことも改善に向けて、取り組ませて頂いてますけども、最初は公明党が民団の方々、あるいは、在日の方々に聞き取り調査もしました。大阪は私の地元で沢山いらっしゃいますけど、そういう方々の声を・・・

洪:参政権の問題ですね。在日は日本社会の構成人ですから当然、参政権を与えるべきだと思うんですよ。
石川:そう思います。それは一貫して公明党が法案にし、(国会に)提出をし、やってきて・・・
洪:なかなか実現しないんですけども・・・(笑)

石川:それは我々の力不足ですけどね。これも逆に反対される方々に誤解されてるのは、あくまでも相互主義で、要するに海外にいる日本人の方々がそこで地方参政権を与えられている。例えば韓国が、日本人にも地方参政権を与えるなら、相互主義で日本も韓国人に与えるべきであると、いうふうにいえば、日本で反対してる方々が、ああ、それだったらまあ認められるべきだと思う人もいるんですが、どんな外国人にもみな地方参政権を与えるんじゃないかと思っている・・・
洪:いいえ。全然違う訳で、在日韓国人でも要するに最近韓国から日本に来たニューカマー、これは対象にならないと思うんですね。で、あくまで戦前から、いわゆる植民地時代に直接、間接の理由があって日本に来たその子孫ですよね。これに限るべきだと思います。それは日本人と同等にすべきだと。

石川:特に税金納めて地域の課題解決のために、在日の方々も3世、4世も日本中に沢山生活をし、また生まれ育ってきている訳ですから。

洪:実は私は1960年に大学入学の年だったですけども、その前年ですね、59年に北朝鮮帰還事業が始まったんですよ。古い話だからわからないかも知れませんが、で、10万人が見ず知らずの北(朝鮮)へ帰った訳ですね。彼らがなぜ、北へ行ったのか。それは日本が受け入れてくれないからですよ。私の周りでも、先輩で、東大、京大、阪大を出た人達がタクシー運転手しか飯を食う道がないんだから。歓迎すると云われたら北でも行かざるを得ないんですね。実をいうと私も行く積もりでしたが、その前に一応比較のため世界を何とか見てみたいと。金がない訳だから、ただで世界を見る方法はないかと思案し、船長を養成する学校に入ればいいということで東京水産大学というところに入る訳ですよ。だから在日韓国人で、水産海洋を専攻したのは私一人なんです。そういう立場で何とか日本の海洋水産界と韓国と、いまお互いこの分野の技術が相当発達してまして、相互補完の技術が沢山あるんですよ。そういうことでジョイントさせようとするんだけども、うまくいかない。私の力不足が原因ですが。

 

△共同事業と民間交流

石川:私も元々大学時代は海洋生物学でした。
洪:そうでしたよね。私もそれで驚いて。
石川:北海道大学の水産学部で卒業研究を・・・
洪:これは因縁が深いですね。
石川:私の大学の卒業研究は人工衛星から海水面を24時間365日モニタリングをしてそれによって、プランクトンの二酸化炭素の吸収率を計ると、そういう研究をやってました。毎週、船に乗って、網を投げて。

洪:日韓の水産分野ではこれまでお互い資源の分捕り合戦をした訳ですよね。漁業交渉もそうですし。俺が何万トンを取る、お前はいくらにしろとか・・・こればかりやった。結果的に資源がどんどん減って行ってる訳ですよね。そうじゃなくて、これだけバイオにしても何にしても技術が発達してるから共同で種苗生産をやろう資源を増やそうと。昔は日本の水産庁辺りも興味があって、じゃあ、韓国と日本の共通の海域で育ち易い魚種をどこで種苗すればいいかと、済州島が一番いいだろうということで土地の選定まで進んだ時代があったんですよ。そう言うことが実現すれば、それが日韓友好に繋がるんですよね。

石川:我々いろんな議員と議論をする一つのテーマが共通の課題、共通のテーマ、お互いに利益のウィンウィンなテーマ、これをしっかり促進していくこと。いま例えば環境問題、PM2.5大気汚染、これは日韓共通の課題ですね。少子高齢化、日本はいろんな社会保障制度をやってますけど、これから韓国の高齢化率は日本を追い抜きますから。日本の経験というのは韓国でも必ず活用できる。あとそれからオリンピックの相互協力。平昌と東京。そのなかでの観光促進とか、こういったテーマをやはりじっくり前向きに話せる環境を作っ行かなければいけない。私たちの未来志向というのは決して、過去のことを無視するということじゃなくて、過去の反省の上で、やはり未来志向でこうした共通の課題について、話し合っていこうよ、ということです。

洪:いままでの政治家の方は総論が多かったですね。総論はみな賛成しますよ。これからは特に若い皆さんは、総論じゃなくて具体論を色々出して、具体論を協議しながら実現させて行かなければいけないですね。
石川:もう一つの重要なのは青少年交流ですね。若い時に、中学生、高校生、大学生でもいいですから、お互いの国を直接見る。メディアを通じて見るだけではなくて、自分の目で実際に見て、肌で触れて、感じて、そういう経験を持つか持たないかが、両国の将来に大きな違いを生んでくるかもしれないですね。

洪:青少年交流もね、陸上でやることも重要だけども、日本には水産高校、いまや水産が斜陽化してますから、学校も練習船も余ってる訳ですね。ああいうものを利用して、船上交流をやるとか。

石川:実はそのことを私がついこの間、国会の質問で、取り上げたんです。日本は船員のなり手が少ないと。この前のセウォル号の大変痛ましい事件があったけれども、セウォル号の事故の教訓というのをお互いにしっかり把握していくということも必要だし、もう一つ大事なのは日本は船員になりたいというのは非常に少ない中で、フィリピンとかインドネシアとか、そういったところとは船員に対する技術協力をやってるんですけど、やはり韓国、あるいは中国との間で船員のお互い技術協力をしながら向上をいずれやるべきじゃないかと、というのを委員会でさせて頂きました。外務大臣から国土交通省から答弁を引き出しました。

洪:中国ともずいぶん冷え込んでるでしょう。何とかその氷を溶かさなければいけないですけども、なかなかその安倍政権が続く限りは、トップ同士は難しいですよね。だからその底辺から、下のほうから色んな具体的な方法で溶かしていくという作業が必要ですよね。だからそういう面で、お互いの交流を・・・

石川:有難うございます。今回は私たちも第一歩という思いですので、継続的に日韓の友好を強化して頑張って行きたいと・・・

洪:(朝日新聞、私の視点を見せて)これ李明博大統領が独島に上陸したり、天皇の謝罪に言及して日本側でえらい問題になったことがあるんですね。あの頃、韓国民の心情は必ずしもそうじゃないよと言うことをどうしても伝えたかったもんで。
石川:在日の方もそう仰います。

 

△訪韓の感想

朴:実際に韓国にいらして、いろんな方々とお話をされたご感想は。
石川:私は、韓日関係でいろんな課題がある中で、そのほつれているものを、一つでも解いて行けるようにして行きたいという決意できましたけども、今回いろんな方にお会いして、お話をして、まだ半分しか経ってないんですが、必ず、日韓問題の解決に向けて進んでいけるなという確信と、何んとしても日韓関係を進めて行か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共通の意思を韓国の皆さんからも感じたので、必ず解決出来るという確信を持ちました。今まだ半分しか経ってませんが強く感じてるところですね。

樋口:大変有意義な毎日で、本当に来てよかったなと思ってるんです。もちろん皆さんのお話を伺って、今日も大変勉強になりましたし、これからも勉強を進めて行きます。今日DMZに行きました。それもまたすごくよくて、まさに担当してくれた軍人の人は徴兵制度で、いま入ってる方で、日本の一ツ橋大学に留学していた日本語ぺらぺらの方がご案内してくれたんです。で、その人に、いろんな最前線の話を聞き、徴兵制度、どうですか、と聞いたら、よかったと思うと、(何がよかったですか?)「平和はただじゃないんだ」と、「平和を守っていく、平和を作っていくことは大変なんだということがよく判りました」というんですね。二十歳前後の若い方が、日本は一部どこか平和ボケというふうに言われますけど。自分もそうだったのかなと思ってですね、これまでサラリーマンやってましたけどね。やはり平和を作っていくという作業がどれだけ大変なのかということをお国に来て学びました。だから何にしても日韓、韓日、日中、中日もそうですけどね、平和で核兵器の問題も北朝鮮の問題もしっかりやって行かなければいけないなと決意を新たにすることができて、本当によかったと思っています。
△在日に対する韓国政府の責任

洪:今日で中日ですよね。あと半分で韓国のいろんな人に会われるんでしょうけども、こういう観点から質問をして見てはどうでしょう。実は日韓基本条約が1965年に結ばれた訳ですけど、そのときに、朴(正熙)大統領が国民向けの談話を発表してるんです。その中に、在日韓国人向けの談話がある訳ですよ。それはどういうことかというと、「いままで皆さんは異国の日本で辛酸をなめ塗炭の苦労をされた。この責任はあげて韓国政府にあります。従って今後は、韓国政府が在日の皆さんに苦労させないように全力を尽くすことを約束します」という内容です。その談話がその後韓国でどうなりましたかと、実行しましたかと。そういう趣旨で一回聞いて見てくださいよ。我々公明党は公明党として在日についてこれだけ頑張って来てるんだと。韓国政府は一体どうなんですかと、こういう談話を出してますよと。それはインターネット調べればすぐ談話の内容が出てきますけれども。一国の大統領が約束しておいて実際に何をやったか。私の知る限りは何にもやってない。逆に歴代の総理、歴代の何とか長官というのが日本に来て在日を集めて、皆さん、愛国とは日本でパチンコをやろうが何をやろうが、金を儲けてその金を祖国に寄付することだと、同じことをずっと繰り返して来たんです。在日はそれを信じて相当な金を寄付したんです。で、ソウルオリンピックの時は100億円も寄付したが在日には何も残らなかった。その金の一部で建てたオリンピック会館を在日会館にすべきです。政府がそれだけ約束をしておいて、その後も引き続き、ある意味むしり取ってるんですよ。むしり取って、基本的な問題は何も解決しないばかりか在日を見下げているんです。だから公明党も頑張りますけども、韓国の皆さんも在日の為に誠意を尽くして下さいと・・・(樋口:そうですよ)
樋口:いま民団さんが脱北者支援もやって頂いてるでしょう。まさに先に言われた、60年代に(北朝鮮に)行った人たちの2世3世が中国周りで日本に戻っていらっしゃって、この11年間で200人の脱北者の支援を民団さんが人道的な立場で家探しから、言語の問題、就職活動、ずっとやって頂いて、本当に頭が下がる思いなんです。だけど韓国政府の方はそれを知らないと思います。だから私たちもそういうふうなことも民団さんと協力して・・・韓国政府も在日を大事にされてですね、いろんな話を聞いて、まさに民間大使でいらっしゃいますから。大事なご指摘頂いたなという、いま改めて勉強になりました。

洪:これは日本の方に指摘されると、韓国の当局者はビックリしちゃうと思うんだけどね。
石川:我々も頑張りますので、共に頑張りましょうと、いうときの材料に是非使わせて頂きたいと思います。
洪:そういう形で韓国の現在の当局者に、在日の問題というのを訴えかける必要があるんですよね。これは数が60万人いるんですよ。6万とか6千人じゃないです。これだけ大きな存在をねえ、大統領が大見得を切っておきながらね、何にもしてないということは、これは国家としての裏切りですよ。その間にどれだけ多くの在日の有為の人材が無念の人生を送ったかということですよね。
△外国人参政権

石川:在外投票権が3年前ですか、実現をしたというのは在日の方々にすると、一つの大きな動きではあるでしょうかね。
洪:まあ、正直にいって、在日が韓国で投票権を持ってもあまり現実的な効果がないですね。
石川:帰化をせずにアイデンティティーを維持されてるというのは、やはり祖国で政治的意見表明をしっかりしたいという・・・

洪:むしろね、そのことによって、日本の皆さんから参政権についてね、お前たち二重の権利行使をする気なのかという反論が来る訳ですよ。
石川:日本人だって、韓国にいる日本人は、在外投票権持っていて、地方参政権持ってる訳ですよね。
洪:いやいや。そういう意味じゃなくて、要するに、在日韓国人は韓国と日本の両方に権利を行使するのか、可笑しいじゃないかということなんですよね。

石川:全然可笑しくないですね。
洪:いやいや。ソウルに住んでる日本人が在外投票で日本の選挙に参加するのは当たり前の話なんですよ。そのケースと、例えばブラジルの日系人がブラジルでも日本でも両方に参政権を持つのとは意味が違う。
石川:でも外国人参政権を認めてるという国というのは、そういうことを認めてる訳ですよね。
洪:いやいや。それは一般外国人問題の議論で在日の場合とは意味が違います。
石川:外国人参政権というのは地方参政権ですけど。当然それを認めてる国・・・

洪:例えば、スイスとかね北欧の国、ああいう国の場合は国政も地方も認めてますよ。また被選挙権も選挙権も認めてます。在日が言ってるのは在日の歴史的経緯に鑑み、在日固有の問題として、スイスと同じようにしてくれということですよ。スイスとかドイツのようにね。ドイツは国内に住んでる外国人には全部選挙権を与えてますよ。
石川:EUからの外国人だけじゃないですかね。
洪:植民地時代から日本で居住した者と、日本で生まれたその子孫に限って、日本人と同等の権利義務を与えて欲しいということです。それについては制限なしの参政権を与えてくれと。一言でいえば公民権です。一般外国人と同じ基準で考えてはならないと。個人的には在日は生活基盤のある日本で参政権を持つべきで、韓国に持つ必要はないと思います。韓国での参政権は現実的に何の意味もないですよ。

石川:在日を支援しますと、宣言した韓国政府がきちんと在日の方々を支援するようにするためにもやはり投票行動を通じて、意見表明するというのは、大きな意義があるんじゃないですか。
洪:問題はね、在日問題が政治イッシュにならないことです。議員を動かすということは、特定の選挙区で在日が圧倒的に票を持っていてシンパ議員を選ぶことが可能なケースです。在日は日本にいて韓国政治を知らないし、出身地も韓国でばらばらです。

石川:在日韓国人は日本で韓国の大統領選挙にも選挙できますよね?
洪:大統領選挙にも投票できますよ。だけど、そんなに大きなインパクトは持たないですよね。私は何度も言いますけど、在日はあくまでも日本で生きて行くんだと、だから日本の政治に関わるべきで、韓国に関わる意味はあまりないと。というのが私の持論なんですよね。それは日本の方が両方でもいいよというなら、それでも賛成するというなら別ですけども。

石川:公明党はそういう立場で(在日韓国人に対して両国に投票ができる)地方参政権を認めてます。全然変なことじゃないと思いますけど。
洪:それは理想論ですよ。日本の大部分の国民は地方参政権でさえまだ反対している訳ですよね。私たちが個別に話をすると、そういうことなら(在日の参政権が)必要だねと、そうした場合は、君らは韓国の参政権を放棄すべきじゃないか、という意見が非常に多いですよ。両方というのはちょっと可笑しいと。
石川:可笑しくないと思いますけどね、全然・・・
洪:それが現実論なんですよ。
石川:そういう声が大きなのは確かです。

樋口:先生、冬柴鉄三先生がですね、弁護士ですから自分で原稿を書いて、自分で法案も作って、叩き台を出したというのが、いまの地方参政権のベースになってる訳ですが、おっしゃるように全然進んでないんですね。で、チャンスを逸した時もあったというふうに先輩からも聞いてますので、本当に時を作らないとですね。なかなかこの時は来ないから、何とかしてそれは皆で時を作って・・・まだ私たち微力ですけど、先ずその地方参政権ですね、実現できるように頑張りたいと思います。
両議員:いやいや、勉強になりました。(笑)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洪 :お疲れさまでした。

 


<저작권자Ⓒ 시사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