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2월 24일 화요일 오후 5시 09분

[이수성 前국무총리(2/2)] 사회가 깨끗하려면, 위에서 계속 맑은 물을 흘려보내야 해

 

 [차세대리더] 2호

 

특집대담 『원로에게 길을 묻다』 

 

사회가 깨끗하려면,
위에서 계속 맑은 물을 흘려보내야 해

 

“김영삼 대통령이 재벌 3~40명 단죄위해 집어넣어야 겠다”

  

대담 인터뷰/ 박승민 편집국장 (park83@sisareport.com)

  이수성 전 총리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업적이 될 만한 얘기는 극구 꺼려했다. 자화자찬하는 격이 된다며 피하려 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런 말은 전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원로에게 길을 묻다」라는 기획을 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 前총리는 서울대 총장 재직시, 김영삼 대통령이, 재벌 30~40명을 단죄해야 한다. 잡아넣어야겠다며 의견을 물어왔을 때, 국제적으로 한국경제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 우리나라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구속에는 반대했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그것이 사심이 없는 순수한 시도였다면 ‘경제민주화’를 실행해볼 수 있는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공동개최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이 총리는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한국의 단독 유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일공동개최를 제안했는데, 일본에서도 반대하고, 청와대에 불리어 가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는, “내가 언제 단독 개최를 얘기했지, 공동개최를 말했느냐”며 말다툼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한일공동개최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이수성 전 총리는 언론은 용어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안중근 의사’가 아닌 ‘안중근 장군’으로 불러야 하고, ‘종군위안부’가 아닌 ‘일본군에 의한 강제 성피해자’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일본군 성피해자’에 대한 처우를 위해 서울대 총장시절부터 힘을  써왔으며, 총리시절에도 그들의 복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총리는 담당 장관의 미관상 좋지 않다는 반대에도, 정부종합청사 현관 입구에 장애인들을 위해 전기로 작동하는 통로를 만들 것을 지시해 완성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선진국 일수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있다. 20년 전에 이 총리가 배려했던 약자의 인권신장을 위한 노력의 단편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창간호에 이어서. 가능한 한 대화체 그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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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민 편집장(이하, 박): 서울대 총장 재직 때 바로 총리로 발탁되셨는데?

이수성 전 국무총리(이하, 이 총리): (김영삼정부 시대) 총리로 오라고 했을 때 내가 아홉 번 거절을 했다고. 정말 응하기 싫었다고. (총리실에서) 매일 아침 전화가 와, 그래서 마지막에는 “내가 싫다고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하고 내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으니까… 정말 하기 싫었다고. 나는 김영삼 대통령께서 고집이 세서 그러신 게 아니신가,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이러신 것이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구. 그렇게 거절을 하면 어지간하면 재고를 하셔야 하는데, 마지막에 내가 속은 게 있지. 박세일 청와대 수석하고 이영희라고 노동부장관했던 친구하고 내가 정말 아끼는 후배들인데, (서울대)총장 공관을 찾아와서 두 시간을 얘기를 했는데, 내가, “이홍구 총리가 점잖고 대통령 욕 먹힐 사람 아니고, 배반할 사람 아니니까 그냥 (계속) 하는 게 제일 좋겠다고…” 나는 처음부터 그 원칙을 가지고 나는 안한다고 했지. 그런데 둘이 와서 하도 졸라댔지만, 딱 거절을 다했는데도 둘이가 간곡하게…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말하자면 나하고 약속을 안 지켰어. 또르르 가가지고 청와대에 한번 더하시면 될 겁니다. 결국 그랬을 거야. 다시 아침에 전화가 또 왔으니까. 그래서 나중에 박세일하고 이영희 만나서 자네들 왜 나하고 약속을 그렇게 안 지켰냐고, 왜 인생이 걸린 문제를 그렇게 하냐고 꾸지람을 한번 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청와대에서 서울대학병원 원장을 누굴 시키라고 했는데, 나는 안 된다고 했어. 지금도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꾸로 알고 나를 원망을 하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청와대의 지시를 내가 거부를 한 거야. 난 안된다고 했지. 차관들 세 사람, 보건복지부, 교육부, 경제기획원 차관들이 거기(서울대) 위원들이야. 당신들이 서울대학 잘되라고 이사로 있는 거지 권력으로 누르려고 이사로 있냐? 세 차관을 무지하게 야단쳤지. 그러고 투표를 딱 했는데도 청와대 지시라고 그 사람을 딱 찍었더라구. 서울대에서는 다른 사람을 찍고. 4대 3이 돼서 대통령이, 시킬려고 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서울대 총장이 고집이 하도 세서 미안하게 됐다고. 이런 것도 내가 알고 있다고. (김영삼 대통령과) 사이가 나쁘다면 아주 나쁜 셈이지.

​  그런데 느닷없이 (김영삼 대통령이) 95년 10월인가 전화를 하셔가지고, 이 총장 의견을 한번 들어봐야겠다고, 내가 재벌들을 단죄를 해야겠다고, 재벌들을 단죄 안 해가지고는 우리나라가 안 된다고. 재벌들을 잡아넣어야 되겠는데 내가 3~40명 정도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이 옳다고, “재벌들이 반성을 하고 사회 공헌하고 더 겸손해야 한다고, 이건 자본주의의 폐해다. 그렇지만 시기가 있는데, 지금 잡아넣으면 국제경쟁력이 상실되고 하나를 세우려다 하나를 놓치는 게 되니까 전 잡아넣는 것은 반대합니다”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 양반이(김영삼 대통령이) 그럼 몇 명만이라도 잡아넣어야 되겠는데 사람 이름까지 거명을 해가면서, “이래야지 기강이 서겠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런데 몇 명만 해도(구속시켜도) 국제적으로는 전체가 되니까, 우리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꼭 그렇게 하시려거든 불구속으로 입건하고, 이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구속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파장이 세다고, 지금은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리고 하나도 안 잡아  넣었어. 물론 내 얘기 때문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겠지. 그리고 나서 총리하라고 느닷없이 그러니까. 

 

이수성 국무총리_인터뷰4

<이수성 전 국무총리(가운데)가 본지 박승민 편집국장(왼쪽), 김종화 차장(오른쪽)과 인터뷰 중이다>

 

박: 김영삼 대통령께서 말한 재벌 3, 40명을 단죄해야겠다는 말은, 그것은 요즘 말하는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건가요? 어떤 의미인지?
이 총리: 나는 경제민주화 쪽이지. 나는 그렇게 들었다고. 그리고 그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나는 봤다고. 그런데 시기적으로는 지금은 우리가 아직까지 자본 축적이 안 된 나라여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서 무역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되고 이래서 불안한 거지. 우리 국민 전체가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지, 김영삼 대통령의 원칙은 내가 옳다고 생각해. 자본가, 기업인의 정신이 바라야(바로서야) 된다는, 그건 아주 옳은 얘기지.

박: 그때 국제적으로 한국경제 이미지도 물론 중요했겠지만, 그런 것을 그때 바로 잡았다고 한다면 지금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 총리: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걸 함부로 잡지를 못한다고. 지금 어떤 정부라도 함부로 잡았다가는… 그냥 서서히 할 수 밖에 없어. 이건 뭐 정치 기술의 문제겠지. 나는 모르지만. 권력자들 사회에 기여하고 이렇게 하시오! 또 혹시 나쁜 짓을 하면 이것은 안 되오! 재벌 아들 손자들이 이게 말이 되오! 그런 것은 얼마든지 현행법으로 할 수 있으니까. 또는 경제팀을 시켜서 사회봉사 하도록 하면 된다고.

박: 그렇습니다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얘기했는데 경제민주화 쪽은 지금 거의 진척이 안 되고 있는데요. 삼성 같은 곳은 지금 정부에서 손을 못 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김영삼 대통령이 그 시절에 그런 것을 어느 정도 했다면… 지금 말씀을 듣고 그런 생각이듭니다만.
이 총리: 그러면 또 뒤집어지지. 권력은 짧고 돈 세력은 크고. 그래서 잠깐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지금 실명제 해봐야 다 도둑질 다하고 하니, 서서히 다루어야 한다고. 한꺼번에 하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 현실 세계는 이상대로 되지 않거든.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에. 현실세계에서는 점점 사람 눈에 보이게 갑작스럽게 되는 게 아니고, 사람들 눈에 이건 잘되는 나라다, 우선 노인이 편안해야 돼. 없는 사람이 편할 수 있나? 지금 정부에서 돈 주고 하는 거지. 점점 젊은이들 부담이 늘어나지. 그걸 다 알면서도 일단 관념적으로 얘기하면 노인이 우선 편안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장년층이 내 나라에 대해서 안심을 해야 되지. 청년들은 희망이, 일자리도 있고 뭘 하면 꿈을 키우고 희망이 있어야 돼. 어린애들 학생들이 행복해야 된다고. 그래서 ‘어린이가 행복한 나라’, ‘여자가 행복한 나라’ 사실 우스운 얘기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김영삼 대통령이 95년 10월인가 전화를 하셨는데, 내가 재벌들을 단죄를 해야겠다고,  재벌들을 잡아넣어야 되겠는데 내가 30~40명 정도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제가) 그 말씀이 옳다고, “재벌들이 반성을 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더 겸손해야 한다고, 이건 자본주의의 폐해다. 그렇지만 시기가 있는데, 지금 잡아넣으면 국제경쟁력이 상실되고 하나를 세우려다 하나를 놓치는 게 되니까 전 잡아넣는 것은 반대합니다”라고 했어.

 

박: 서울대 총장으로 계실 때, 김영삼 대통령이 전화를 했으니까, 자문을 구한것이지요?
이 총리: 일화가 정말 많다고. 내가 다 얘기를 못하고, 내가 여섯 번을 사표를 냈는데, 네 번째인가 냈을 때, (김영삼 대통령께서) “왜 이 총리는 자꾸 사표를 내느냐고, 누구는 사표 내라고 했더니 6개월만 더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고, 몇 달만 더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하고 나가서 둔갑을 해가지고, 자진해서 그만둔 것처럼 쇼를 하는데…” 그 얘기를 나한테 하는 거야. 나중에 그게 그 분(김영삼) 자서전에 다 써 있더구만. 그래서 사표를 송 비서실장이니까 다 알지. 사표를 꼭 다니고 다니던가, 책상위에 놓고 다녔으니까. 총리라는 것은 그만둘 각오만 하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으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나를 겉으로는 표시를 안했지만 나하고 많이 싸우다시피 했어요. 말을 내가 잘 안 들었어요. 대통령 선거 할 때도 경선 하는데, “이 사람 말 잘 안들을 사람이다”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

박: 그런 점도 작용을 했습니까? 저는 (이 총리가) 그 무렵에 원래 정치인이 아니니까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대권후보들 중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계파세력들에 의해…
이 총리: 나는 그런 건 상관이 없었어요. 나는 그때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구. 이회창씨 지지하면서 기분이 그렇게 좋았다고. 아 나는 이제는 이 짐을 지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리고 내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거든. 하느님이 김대중 대통령을 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나는 그렇게 봤거든. 그런데 이건 아주 중요한 얘기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제일 좋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김영삼 대통령이었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제일 좋았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김영삼 대통령이었어요. 이 양반(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지킬 사람이고, 내가 통일해서 민족 화합을 하려고 했는데, (그걸)못했는데, 이젠 그걸 할 수 있다. 정말 좋아하시더라구. 그건 내가 증인이라구.

 

박: 왜 그랬습니까?
이 총리: (김영삼 대통령이)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나한테 “아! 잘 됐다고”, 이 양반(김대중 대통령)이 나하고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지만, 이 양반은 민주주의를 지킬 사람이고, 내가 통일해서 민족 화합을 하려고 했는데, (그걸)못했는데, 이젠 그걸 할 수 있다. 정말 좋아하시더라구. 그건 내가 증인이라구.

 

박: (김영삼 대통령이) 본심에서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말씀이군요?
이 총리: 아주 본심에서. 그런데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 사이가) 나빠진 이유가, 김현철(김영삼 전대통령 차남)을 국회의 증인으로 세운데 있는 거지. 그것 때문에 나빠진 거지. 내가(김영삼 대통령 본인이) 그렇게 (김대중씨가 당선된 것을) 좋게 생각했는데, 내 아들을 또 그렇게 (국회 증언대에) 세우니까.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뵙고, “두 분의 사이가 좋아야지 나라가 (발전) 되는데…”(라고 말씀드렸다.) (김대중 대통령이) “맞다. 내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누가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나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데. 법무부장관이 고집을 그렇게 부려서 내가 정말 곤란하다. 내가 다시 이야기 하겠다. 그때 그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었지. 김태정 총장을 시켜서, 설명을 소상히 드려라. 김대중 대통령의 원뜻을 있는 그대로 설명을 드려라. 김영삼 대통령이 오해를 하시면 우리나라가 불행해진다. 그때 김태정 총장이 가서 상세하게 설명을 다 드리고 오해가 풀렸었는데, 결국은 또 재판에 세웠으니까.

 

기자님 두 분 다 언론인이기 때문에 용어 선택하는 거 그거에 신경을 좀 쓰라구. 안중근 장군이 항일독립군 참모부장이라고. 실제로 싸웠다고. 참모부장이라구. 그런데 이 양반이 여순 감옥에 잡혀갔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한 것은, “나는 군인이다. 군인으로 적군을(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였다. 그러니 날 군법회의에 회부해라” 이렇게 말씀하셨다구. 당연히 우리는 ‘안중근 장군’ 그래야 돼. 중국에서는 ‘의사(義士)’ 그러면 ‘단독행위한 자’를 의사라고 그런다고. 실제 전투에 참여했고, 아홉 명이 같이 했고, 본인 자신이 그 용어를 썼다구. 그럼 안중근 장군이라고 해야 맞는 거지. 그래서 할 수 없이 안중근 기념관을 지을 때 내가 기념관 건립위원장을 했었는데, 이걸 ‘의사 안중근장군기념관’ 이렇게 하겠다. 그리고 국방부에 내가 김관진 합참의장한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데 군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구. 상의를 해보겠습니다 하고 장관들하고 다 상의를 하더니 자기들은 아주 좋습니다(그랬어). 군에서도 다 동의를 했다. 그렇게 해야 할 텐데 우리가 그렇게 하지를 못해요. 그래서 용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라고요.

 

언론은 용어 선택에 신경 써야해,
안중근 장군이 여순감옥에서, “나는 군인이다. 군인으로 적군을 쏘아 죽였다. 그러니 날 군법회의에 회부해라”고 했다. 당연히 우리는 ‘안중근 장군’ 그렇게 불러야 맞다.

 

당신이(안중근의사가=안중근장군이) 그렇게 희망하고 직위에 연연할 분은 아니지만, “내 자리가 그 자리다”라고 얘기한 분을 국민이 못 들어 주고 있다. 그 ‘종군위안부’라는 말도 내가 절대로 위안부가 아니다 ‘일본군에 의한 강제 성피해자’다. 길기는 좀 길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강간피해자예요. 강간피해자인데 강간이라는 말이 좀 과격하니까 ‘강제성피해자’라고 하자. 위안부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시집보내는 것이 열풍이 됐어요. 빨리 시집보내, 안 그러면 일본군한테 잡혀간다. 그 양반들이 어떻게 위안부이냐 일본군 경찰한테 강제로 잡혀가서 그 꼴을 당하고 살았는데. 일본군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 우리나라 사람은 그런 소리하면(그렇게 부르면) 안 되는데.

​힐러리가 나하고 똑 같은 마음으로 얘기를 했더구만. 그런데 우리 언론인들은 듣지를 않는 거야. 언론의 힘이라는 것이 절대적이니까, 제발 어떤 언론이라도 시작을 해서 확산이 되면 좋겠다. (본지의 자매매체 「시사리포트」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 대신, ‘일본군 성피해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올바른 용어 선택을 하는 것이, 내가 지금 한(恨)이 되는 게, 서울대 총장을 할 때 그분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했다구. 우리 국민이 이만큼 살지 않느냐, 먹여 살리자. 1년을 MBC하고 같이 모금운동을 했는데, 7천만원이 들어왔어요. 7천만원 밖에 안 들어 왔어요. 그때 ‘일본군  성피해자’ 할머니들 그 피해 할머니들 숫자가 한 250명 정도 됐어요. 이 분들을 먹여 살리기는커녕, 1인당 250만원 정도 나눠주니까 끝이야. 그때 나하고 같이 했던 분이 서영훈씨, MBC사장 최창봉씨, 이화여자대학교의 김정옥교수 하고 몇이 했는데, 우리 국민들한테 아직까지 의식이 전달이 잘 안 되는 구나. 그래서 총리 되자마자 “내가 먹여 살려라”(라고 말했다). (담당부처가) 반대를 하고 그래서, 내가 처음에 한 달에 2백만원씩, “노동자들이 못살고, 농민이 못살고 하지만 이분들 나머지 평생을 잘 살게 해주자. 그래서 2백만원씩 드리자”(고 제안했다). 부총리가 반대하고 경제각료가 반대하고 심지어는 심한 얘기까지 내가 들었다. “성노예를 가지고 왜 그러십니까?” 하는 소리를 내가 듣고, 그날 내가 굉장히 화가 났지. “어떻게 성노예냐? 그분들이 당신 이모이고, 당신 고모고, 내 누나고 그렇다. 무조건 해라. 안되면 100만원씩 해라” 그러니까 나중에 부총리가 와서 사정을 하면서 “지금은 100만원이 어려우니 지금 50만원 하고 차차 올리도록 합시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예산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바로 국가에서 50만원씩 지급하고 매년 올리는 걸로 하자. 난 믿지를 않는다. 내가 그만두고 당신도 그만두고 할 텐데, 누가 이런 마음가지고 올릴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래도 일단 원칙을 그렇게 정해놓고 기록을 해라. 매년 올리는 걸로. 그래서 십몇 년이 지난 뒤에 얼마 전에 알아보니까 57만 5천원 됐더라구요. 그분들 생각하면 기가 막히는… 정부에서 지원을 한다고 그러니까 (그 분들이)자부심이 생긴 거예요. 그 전에는 부끄럽고 챙피하고, 자신은 죄가 하나도 없지만, 사람들한테 말 한마디 못하고 평생 살던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그래도 국가에서 인정을 하고 하니까, 신고를 하자 해서 신고를 한 것이 백 몇십명이 더 하셨어요. 3백 70~80명이 되셨지. 이분들 오십만원씩 드리고 (경기도)광주에 ‘나눔의 집’ (진입로를) 경기지사한테(시켜서) 이 길 다 포장해라. 그리고 편찮으시니까, 서울대병원 치과 의사들한테 다 이를 무료로 다 갈아드려라. 또 한양대학교, 경희대학교에서 중증환자 치료해드리고.

‘종군위안부’라는 말도 절대로 위안부가 아니다. ‘일본군에 의한 강제 성(性)피해자’다. 서울대 총장을 할 때 그분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1년간 MBC하고 함께 했는데, 7천만원 밖에 안 들어 왔어요. 우리 국민들한테 아직까지 의식이 전달이 잘 안 되는 구나.

 

박: 그때 기반을 마련했네요. 지금 기초수급정도만 지급하고 있는데, 그런 건 예외를 두어도 되지 않습니까?
이 총리: 그런 건 당연히 예외지. 그 분들 어떤 분들입니까? 나라가 약하고 그래서 일본놈에게 점령당하고 그래서 당한 분들인데 무슨 죄가 있겠어요.
박: 서울대 총장으로 계실 때부터 그 일에 힘쓰셨네요?
이 총리: 그렇지. 장애인도 그렇고.

 

박: 김학순 할머니가 맨 처음 일본군 성피해자에 대해 증언한 다음, 저도 관심을 갖고 90년대 초반부터 쭉 취재를 했었는데, 이 총리께서 그 대우에 대한 기반을 잡아놓으셨군요? 
이 총리: 꼭 그런 건 아니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정부에서 그분들에게 자부심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 망신당하고 죽을 고생을 했지만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자부심을 심어드리는 것이 후생들이 할 일이다 라고 내가 믿으니까. 어느 정도 했고, 또 누가 돌아가시면 내가 꼭 현직 총리로 문상을 갔고 이영수할머니 대구에서 칠순잔치 할 때 내가 일부러 가서 축하드렸고, 내가 그분들에게 지금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에 못지않게 내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지. 

 

박: 어려운 일을 많이 추진하셨는데, 이 총리께서는 장애인들의 인권신장에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 
이 총리: 장애인들이 무슨 죄가 있나? 장애인들, 한 인간의 존엄성에는 조금도 남보다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정부종합청사에 장애인 보도가 없어요. 계단밖에 없어. 장애인 보도 만들어라(지시했지요). 그 당시에 담당 장관이 “미관상 안 좋습니다” 그래서 내가 화가 굉장히 났어. “어째서 미관상 안 좋으냐?” 한 나라의 중앙정부가 장애인들을 도와주어야 미관상 더 아름답지, 당장해라. 일주일 만에 해라. 전기로 작동하는 통행로를 그때 만들었다고.

 

이 총리: 월드컵이 왜 한일 월드컵이 되었는지 모르지? 일주일에 세 번씩, 네 번씩 총리공관에서 집권당 대표, 그때 당시 이홍구 대표였죠.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청와대비서실장, 청와대 담당 비서관, 국무총리까지해서 내가 주제하는 회의가 있었지. 그때 참석 멤버가 구평회씨, 김운용씨 등이 싸움이 벌어지는데 대개 싸움을 하면 3대 3이야. 이홍구 대표는 정몽준씨가 신뢰하는 정몽준 쪽이고, 청와대 이원종씨가 또 그런 편이고, 김운용씨나 구평회씨 이 사람들은 절대 안 된다는 거지. (월드컵유치를 위해) 아무리 우리가 노력을 해도, (지리적으로) 일본에 붙어있기 때문에 이거는 안 된다. 아무리 해도 5표 차이는 난다. 그게 이양반의 판단이고, 정몽준 씨의 판단은 “열심히 아프리카 유럽을 설득하면 3표 차이로 우리가 이긴다” 이렇게 싸움이 벌어졌어요. 결정은 결국 대통령이 해야 하겠지만, 나는 대통령한테 뭘 미루지 않으니까, 내가 (판단) 하고 내가 그만두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안 된다는 판단이고(한국의 단독개최 유치가 어렵다는 판단이고), 그래서 96년 4월 말에 기자회견을 했어요. 한국과 일본은 몇 천년에 걸쳐서 은원이 많은 나라다. 지금도 사이가 굉장히 안 좋다. 월드컵이라는 것이 세계인이 관심을 갖지만 하나의 스포츠다. 스포츠는 단순히 승리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화합하고 사랑하고 그러는 건데, 이것을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했을 경우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FIFA에서 이점을 감안해서 해줬으면 나는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96년 4월 기자회견에서, 한국과 일본은 몇 천년에 걸쳐서 은원이 많은 나라다. 월드컵이라는 것이 단순히 승리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화합하고 사랑하고 그러는 건데, 이것을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했을 경우에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일본은 당시 하시모토(橋本龍太郎) 총리인데, 한국 총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월드컵은 한 나라에서만 하는 거다. 한나라에서 개최하는 거지, 공동개최하는 것은 룰이 아니다. 우리 (김영삼)대통령은 또 법무부장관 시켜서, 그것은 (이수성)총리 개인의 의견이다. 그러고 나를 (청와대로)오라고 해요. 가서 나하고 말다툼을 하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이 총리는 내 말도 안 들어 보고, 내가 국민들에게 단독개최 약속을 했지, 언제 공동개최한다고 했냐?” (라고 하셨다). “(내가) 단독개최는 안 된다. 내 판단으로는 안 되는데, 안 되면 우리나라 큰 망신이다. 또 단독개최가 되도 나는 못하겠다. FIFA에서 요구하는 것이 축구경기장 스무 개를 지어야 되는데, 우리나라 예산 3조가 경기장 짓는데 든다. 경기장 짓고 나서 축구경기 한번하고 그 경기장은 버려진다고 봐야 된다. 전기세, 관리비만 857억인가 없어지게 되어있어요. 살림하는 사람 입장에서 하라고 해도 나는 못하겠다. 최상이 한일 공동개최다”라고 (말씀드렸지요). 나중에 대통령이 내가 하도 고집을 세우니까, “아 그러면 천천히 있다가 6월 달에 하지 왜 그러느냐고 그래요”. (내가) “그때는 우리나라가 질거라는 게 다 드러나는데 그거는 무슨 망신이냐. 지금이 적기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FIFA에서 뭐 이의 없다. 독일이고 프랑스이고 아벨란제 말을 꺽어 버리고 그냥 공동개최를 해버린 거죠.

 

박: 공동개최는 일본에서는 자기들이 단독 개최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랬으니까, 그게 공헌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말씀하신대로 한일 관계개선 그런 면에서는 의미가 있었지요.
이 총리: 그때 언론 사설에서 나를 세 번인가 두드려 팼다고. 단독개최를 안하고 공동개최하자고 총리가 그런다고. 그래서 나는 전혀 관계가 없지. 내가 그만두면 그만이지.

박: 그때 (단독개최)가능성은 낮았었지요.
이 총리: 전혀 없었지. 내 판단으로는 안 되는 거였지.
박: 그리고 우리가 후발 주자였고요. 나중에 했기 때문에 명분도 약했었지요. (월드컵 개최지  유치에서)져도 할 말도 없었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북의) 전쟁은 피해야 돼. 이기면 뭘 해. 내 민족 다 죽이고 이기면 뭐해. 민족 공멸이라고.

박: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이 총리: 우선 평화가 중요한데, 남북문제, 전쟁의 위협은 없어야 돼. 지금 전쟁 났다고 하면 사람들은 우리가 이긴다고 생각하지,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민족 공멸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야 돼. 이기면 뭘 해. 내 민족 다 죽이고 이기면 뭐해. 그래서 내 생각 같아서는 북한에 굶어죽는 어린애들 무조건 살려놔야 된다고. 내 친구들하고 얘기하면 그러지, 그놈들이 돈 빼돌려서 팔아먹어가지고 핵 만들고 그런다고. 어떻게 팔아먹나? 식량하고 의약품은 무조건, 조건이 없이 대줘야 한다고.

박: 쌀 같은 경우는 (북한이) 군량미로도 보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쌀은 말고 다른 걸로, 밀가루나 옥수수랄지?
이 총리: 난 ‘햇반’ 생각까지 했다고. 계속, 자꾸 전달해야 한다고. 음식물 쓰레기가 내가 총리할 때 8조야, 요새는 20조가 넘어. 그 반이면 이북(북한)사람 다 먹고 살아. 그런데 말 한번 잘못하면 이수성이는 좌파라고 그래. 북한을 돕자고 하면 나는 전쟁의 위협을 막고 적어도 10년 뒤를 보고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좌파라 그런다고.

 

이수성 전 총리

 

박: 인도적인 문제니까 그건 다르죠.
이 총리: 아주 다르지. 그건 민족에 대한 사랑이지. 좌우(左右)가지고 따질 문제가… (아니지). 좌우라는 것이 없다고. 학자들이 자꾸 만들어 내지 뜻도 모르면서. 자유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 아니거든. 책에 보면 자유, 아까 형법 얘기했잖아. 그런데 대성한다는 게 돈도 많이 벌어야겠지. 그렇지만 인터넷 사용하는 젊은이들 마음 정화시키라고. 그네들이 우리나라를 결국 책임져야 될 텐데. 지금 윤일병 사건 여기에 대해 정말 절실하게 느낀다고.

박: 일본 같은 경우 ‘이지메’, 집단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본래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는 그런 단어가 없지 않았습니까? ‘왕따’라는 단어도 없었고…
이 총리: 우리나라에는 ‘왕따’가 원래 없었지. 왕따라는 단어가 없었는데, 왕따를 너무 심하게 해서 내가 또 내 얘기 그만두자고…
박: 아닙니다. 원로에게 말씀을 듣는 의미가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윤일병 사건도 왕따인데, 사회가 탁해지면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 맑은 사회에서는 안 생긴다고.

이 총리: 찬반양론이 있기 때문에. 깡패도 요즘 날뛴다고. 내가 경찰관한테 부탁을 했어. 경찰청에. 정신없이 바쁜 사람들인 줄을 내가 안다. 난 경찰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거든. (총리시절에) 국회에서 내가 답변할 때, 국회의원들이 경찰들을 매도를 할 때, 내가 답변한 게 있어. 경찰관이 없으면 단 하루도 여러분 발 뻗고 살지를 못한다. 나쁜 경찰도 있지만 그거 가지고 전체를 매도하면 안 된다. 국회의원 여러분이 대접하고 존경해줘야 한다고. 그분들 하루에… 일주일이면 닷새를 집에 못 들어가는데 자부심을 심어 주게 부탁을 했고, 그리고 학부형들 돈 모아서 선생님주지 말고, 좋은 학부형이 모여서 왕따 하는 애들을 오히려 왕따 시켜버려라. 그걸 한번 하라고 그랬지. 그리고 왕따, 윤일병도 왕따인데, 사회가 탁해지면 그런 현상이 생긴다고. 맑은 사회에서는 안 생긴다고.

 

박: 아까 말씀하신 악플 많이 하고 그런 것도 사회가 그래서, 우리 사회가 만든 거죠.
이 총리: 어른들이 만든 거지. 애들이 뭐. 듣고 배우고 하는 것이 그런 거지.  

박:장시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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