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오후 3시 31분

[김국헌 칼럼] 우리 국토를 사랑하는 것이 애국·호국의 시작

김국헌 장군
(예) 육군소장
  국보 1호는 숭례문이다. 그러면 국보 “0”호는 무엇인가? 물론 공식적으로 국보 “0”호로 지정되어 있는 문화재는 없다. 그러함에도 국보 “0”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국보에 앞서는 뛰어난 무엇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자 하는 것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榮州 浮石寺 無量壽殿)에서 바라보는, 소백산에서 속리산, 추풍령, 덕유산에 이르는 준봉으로 이루어진 외연(巍然)한 대경관을 국보 “0”호로 삼아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가히 일망무제(一望無際)라 할 만한 위풍인데 이 장관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격은 차라리 종교적 법열(法悅)에 가깝다.
  무량수전의 위치를 이곳으로 삼은 옛 고승의 안목은 바로 오직 이 한 곳일 수밖에 없는 명당(名堂)을 정확히 점지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국토가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많이 하나, 이를 웅변(雄辯)으로 입증할 승지(勝地)를 든다면 바로 이곳이 아닌가 한다.
  이스라엘은 전세계 유태인에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지만, 그 땅과 기후는 우리와 견줄 바가 못 된다. 남한 면적의 1/3 정도 되는 면적을 적시고 있는 물줄기는 갈릴리 호수와 요르단 강이 거의 전부인데 그 수량이 년 4억톤에 불과하다. 4억톤이 어느 정도 양인가 하면, 소양호 하나의 저수량이 27억톤이라는 것 하나만 들어도 알만하다. 우리에게는 그 밖에도 대청호, 충주호, 팔당호, 주암호, 그 밖에 도도히 흐르는 한강과 낙동강, 금강, 영산강 … 들이 있지 아니한가?
  이스라엘에서는 갈릴리 호수의 저수량을 ㎝ 단위로 매일 방송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얼마나 물을 갈급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복받은 땅에서 살고 있는가?
지키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바로 우리 국토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애국(愛國)과 호국(護國)의 밑바탕!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국민 모두의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의무!
남이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엄한 위용을 갖춘 나라를 만들자!
부석사에서의 석양

< 부석사에서의 석양 (자료원:www.pusoksa.org) >

  얼마 전 이임한 외국대사 한 분이 서울 사람들은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과 같은 명산이 바로 지척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실 한강(漢江)과 같은 큰 강을 끼고, 북한산(北韓山)과 같은 명산을 등지고 있는 수도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워싱턴, 런던, 파리, 북경, 동경, 베를린, 어디를 가보아도 한강만한 큰 강이 없으며 더욱이 북한산과 같은 명산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도전, 무학대사 등이 한양을 조선의 수도로 잡은 것은 당시의 풍수지리, 오늘날의 인문지리상으로 보아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있다. 원래 우리 농·수산물을 아끼고 키우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참으로 의미있고 또한 정확한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요즘에는 외국에서 값싼 농·축·수산물 등이 들어오고 있지만 역시 우리 입에는 우리 땅과 바다, 강과 산에서 생산되는 것들이 가장 영양가 있고 맛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확인시켜준다.
  우리 식품으로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김치를 일본에서 상품화하여 세계시장에 내놓고 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서 김치 만드는 법을 배워 가지만 별로 크게 근심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김치는 역시 우리 땅에서 자란 배추, 무우, 고추, 마늘, 파, 젓갈을 가지고 담가야 제맛이 나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에 김치 종주국의 지위를 빼앗길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나는 어느 농산물이든, 축산물이든, 수산물이든 외국의 동종(同種)의 산물에 비해 훨씬 맛이 있고 영양가가 풍부하고 실팍한 것은 신기하기조차 하다.
  이렇게 우리 국토예찬론(國土禮讚論)을 펼치는 것은 우리가 지키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바로 우리 국토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 바로 애국(愛國)과 호국(護國)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터전이 진실로 귀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부터 출발한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귀하고 아름다운 나라를 남에게 결코 뺏기거나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결의(決意)를 다지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신라인들에게 국토는 단순한 산천이 아니라 바로 불국토(佛國土)였으며, 이 불국토(佛國土)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호국불교의 신앙으로 승화되었다. 신라의 화랑들은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기상을 키우고 심신을 단련하는 가운데 이 국토가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것인가를 온 몸으로 느끼고 깨달음으로써 이 땅을 결코 남에게 내어 주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을 하였던 것이다.
  국토를 외적에게 유린당하게 할 수 없다는 결의야말로 “나라 지키기”의 밑받침이 된다. 이스라엘 군에서는 신병교육의 마지막 코스로 마사다(Masada) 전적지를 순례하도록 하고 있다. 기원전 로마군에 의해 유다,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 마사다 성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던 장병들이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로마군에 포로가 되는 굴욕을 거부하였던 피맺힌 항전사를 되새기게 함으로써 다시는 유태 민족의 터전인 이스라엘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의를 맹세하는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자의 설움과 아픔, 망국노(亡國奴: 침략국의 노예가 된 망국민)의 굴욕만큼 큰 것이 있을 것인가? 전쟁에 지면 국토를 유린당하고 귀중한 문화재가 소실되며, 부녀자와 노약자들이 농락당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을 지켜내지 못한 남자들의 자존심(自尊心)이 처절히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이 상처, 괴로움으로 부터 회복되는 것은 많은 시일을 요하며 격렬한 내부소모를 겪는다.
  흔히들 영국은 역사에 성공한 나라라고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노르만 정복 이후 중세, 고대,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외국의 침공을 받아 국토가 유린된 일이 없었다는 것. 전 유럽이 히틀러에 굴복하던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은 받았지만 군화발에 짓밟히지는 않았다는 데에 큰 이유가 있다.
  문화와 자존심을 사랑하던 프랑스도 보불전쟁과 2차대전 두 번에 걸쳐 독일에 항복하였고, 두 번이나 세계를 상대로 싸웠던 독일도 결국 전국토가 폐허가 되고 주권조차 잃게 되는 치욕적 항복을 하였으나 영국은 국민국가 형성이래 한번도 외국군의 침공에 국토를 유린당한 적이 없다.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국민은 꿋꿋한 자존심을 지켜올 수 있었고, 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다. 영국의 어느 도시, 마을이든 로마시대 유적으로 부터 중세, 근세의 유적, 유물, 문화재가 거의 고스란히 보존, 축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영국을 역사(歷史)에 성공(成功)한 나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국민 모두의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의무다. 특히 군인의 사명과 책임이 무거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이 나라를 지켜내는 데만 만족할 수 없다.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이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엄한 위용을 갖춘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전략태세는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결사항전하여 이 나라를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즉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不戰勝)”,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의 태세가 되어야 한다. 마치 검도의 고수(高手)들이 기(氣), 검(劒)이 한 점 안광(眼光)으로 결집되어 맞서다가 열세(劣勢)한 측이 스스로 검을 내려놓게 되는 그러한 엄중한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최상(最上)의 국가안보(國家安保)는 적에게 틈을 보이지 않는 것, 함부로 도전할 엄두를 못내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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