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오후 3시 47분

[문성룡 특별기고] 원로 영화인들과 상생 없는 한국영화

문성룡
51회 대종상 영화제 심사위원
한국 시나리오 작가협회 부이사장
광주 영상작가 교육원장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은 이제 잘못된 말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도 긴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령화 사회에서 지금 전 세계에서 한류바람을 일으킨 시발점이며 원동력이었던 원로 예술인들은 지금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는가? 잘된 집안의 담장 밖에선 세 가지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일하는 소리, 글 읽는 소리, 웃음꽃이 담장을 타고 넘는 소리.
영화진흥위원회가 2014년 한국영화의 관객 수가 역대 최고라고 발표했지만, 아무리 ‘국제시장’ ‘명량’ ‘변호인’ ‘수상한 그녀’ ‘7번방의 선물’ 같은 대박영화를 만들어도 영화사들은 여전히 가난할 수밖에 없는데, 원로 영화인을 위시한 영화 스탭들의 처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지면을 통해 한국영화계의 문제점들을 잠시 열거해보자면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홀대, 투자사의 횡포, 투자시스템의 낙후성, 제작시스템의 후진성 등을 들 수 있다. 배우들의 리허설이 진행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촬영, 배급시스템의 왜곡 등이 꾸준히 제기돼왔던 것이긴 하지만 영화인이라면 영화현장의 밑바닥 정서까지 포착해야한다. 투자사가 투자 진행비, 캐스팅 주선비, 공동제작 진행비 등을 챙기는 탓에 스탭들의 임금은 5∼6년 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조수들은 물론이고 헤드 스탭도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위기에 내몰리고 있으며 또 감독이 배우들과 제대로 된 사전 리허설을 진행하지 않음으로써 현장리허설이 길어지고 스탭들은 그 리허설을 지켜보며 사전에 준비할 여지가 사라져 버린다.

한국영화계의 문제점들을 잠시 열거해보자면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홀대, 투자사의 횡포, 투자시스템의 낙후성, 제작시스템의 후진성 등을 들 수 있어

투자사가 투자 진행비, 캐스팅 주선비, 공동제작 진행비 등을 챙기는 탓에 스탭들의 임금은 5∼6년 전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감소

조수들은 물론이고 헤드 스탭도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로 위기에 내몰리고 있어

10년 전만 해도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분배 비율은 6:4였다. 그러던 것이 7:3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8:2까지 내려가

영화사의 몫 또한 점점 작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분배 비율은 6:4였다. 그러던 것이 7:3으로 바뀌더니 지금은 8:2까지 내려갔다. 배급수수료도 5%에서 매년 오르더니 12%까지 뛰었다. 수직계열화를 통해 한국영화산업을 독과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횡포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투자와 배급의 절반, 멀티플렉스의 95%를 장악하면서 제작사를 하청업체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한국영화에 관객 1,000만명이 들면 영화사는 얼마를 벌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제작비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거 같으면 아무리 적어도 70∼80억원은 됐다. 그 돈으로 다른 곳에 손 벌리지 않고 내 영화 서너 편은 맘대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림도 없다. 영화사가 손에 쥐는 돈은 고작 20∼30억원으로 극장부금(상영료)을 뺀 수익의 10분의 1수준이다.
온 나라가 ‘상생’을 외치고 정부까지 나서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를 보호하고 나서고 있지만 영화계는 요지부동이다. 산업구조가 이렇다보니 정부가 아무리 지원을 확대해도 결국 수혜자는 수익의 90%를 챙겨가는 대기업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난 정부는 문화의 다양성보다는 경제논리에만 집착해 이들의 독과점을 더욱 부추겼다. 펀드의 구성 원칙이나 각종 조세지원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은 중소기업 업종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대기업의 특혜성산업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영세제작사와 극장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다반사인데 원로영화인들의 일자리 창출과 지원 활성화를 논할 수 있겠는가.
글로벌시대에 있어서 영화는 산업적 병기이자 협력의 도구이며 민족문화의 얼굴이어야
우리 영화는 이제 제 나라 안에서만 아등바등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명예를 위하여 존재하거나 영리만을 위한 도구는 더욱 아니어야 한다. 글로벌시대에 있어서 영화는 산업적 병기이자 협력의 도구이며 민족문화의 얼굴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영화계를 들여 보자면 작품에 대한 간섭과 통제는 예사이고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무너뜨리듯 멀티플렉스를 경쟁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관객이 적으면 곧바로 ‘퐁당퐁당’ 상영으로 바꾸거나 내려버리고 자기 식구가 아닌 극장들이 부금을 조금만 늦게 주어도 곧바로 영화 상영을 끊거나 다음 작품을 배급하지 않는 짓도 서슴치 않는다.
영화만큼 창의와 창조, 상생의 산업도 없다. 이제는 원로영화인들을 중심으로 우리 모든 영화인들이 함께 용기를 발휘하여 소리를 높이고 나설 결정적인 시기이다. 그 동안 필자를 포함한 이 나라의 영화인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는 체념과 타성에 젖어 거의 습관적으로 모든 문화행사들을 지켜봐 왔었다.
이제야말로 의식을 전환해야 할 시기가 왔다. 원로영화인들의 아픈 외침과 한국영화의 근원적 모순을 소리내야한다. 가만히 앉아 떨어지는 감이나 기다려서는 결코 안된다. 무언가 영화계가 가야할 올바른 길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수많은 영화단체 장들이 정녕 이 나라의 영화문화를 선도해 왔는지, 아니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얼빠짐으로 이 나라 영화계를 권력의 협조자나 시녀로 전략하게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리도 그 대안을 세워 영화정책을 가지고 뛰어다녀야 한다. 어느 심마니의 일갈처럼 ‘산삼을 먹어서 건강한 게 아니라 찾아다니면서 건강해 졌다는’ 말을 원로영화인들은 기억해야 한다.
또한 상생을 외면하는 기업이나 단체들은 영화와 함께 할 자격이 없음을 통보하여야 한다. 한국영화의 지원활성화가 되지 않은 것은 한국 영화자본의 탐욕과 더불어 영화산업을 시스템으로 만들지 못하는 영화산업 구성원들의 무지와 이기심에서 기인했음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영화정책을 입법하거나 기획하고 지원하는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지 말고 더 이상 무관심으로 영화 죽이기에 앞장서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기관의 행태는 영화를 알고 있을 뿐이지 영화 내면은 알고 있지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의 근본적 모순인 배급시스템을 대기업에만 맡기고 방관할 게 아니라 원로영화인들이 젊은 영화인들과 함께 제작에 동참할 수 있는 저예산의 작은 영화들을 많이 제작하고 배급시켜 줄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이제부터라도 한국영화의 근본적모순인 배급시스템을 대기업에만 맡기고 방관할 게 아니라 원로영화인들이 젊은 영화인들과 함께 제작에 동참할 수 있는 저예산의 작은 영화들을 많이 제작하고 배급시켜 줄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 등 영화지원 사업 등에도 기획 단계부터 원로 영화인들과 젊은 영화인들이 신, 구조화를 이루어 신청한 사업부터 지원을 해주도록 법령을 개정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젊은 영화인들이 현장에서 원로영화인들의 몇 십년간 축적되어있는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을뿐더러 모든 영화인들이 서로 마음을 터놓고 같이 상생의 길로 갈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영화인임을 자부하며 살아가는 원로영화인들이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은 외부의 재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의한 각고의 성찰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우리는 우리의 영화를 향유할 권리를 되찾아야한다. 그것은 결코 몇몇 선지자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제 더는 망설이지 말자. 이제라도 원로 영화인들이 은둔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새 아침을 맞이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임을 깨달아야한다.
극장의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외면하는 데는 10초 밖에 안 걸린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때는 10년이 더 걸린다는 걸 정부 당국자나 영화인 모두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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