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9월 23일 수요일 오후 3시 51분

[명인을 찾아서 ] 한국전통공예 보석 명인 ‘김상실 디자이너’

시대가 바뀌어도 퇴색되지 않는 영원한 반짝거림

이서영 기자 (yonghyun317@hanmail.net)
1.(캡션 기입부탁)김상실 명인이 프랑스에서 전시할 당시의 작품 모습
무에서 유가 탄생하는 과정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아무 생각 없이 발로 차는 돌멩이는 멋진 장신구가 되고, 나무가 떨군 나뭇가지는 훌륭한 조각품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손끝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모든 것들과 땀과 노력이 어려 있는 탄생의 과정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특히나 그것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사람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라면.
퇴계로 대한 극장 인근에 위치한 한 공방. 여기 시대가 바뀌어도 퇴색되지 않는 영원한 반짝거림을 위하여 밤낮으로 고군분투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전통공예 보석 명인 ‘김상실’ 디자이너(이하 김상실 명인)다. 이미 한국전통공예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위치에 우뚝 서 있음에도 불구, 김상실 명인은 한국전통공예의 멋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누구보다 성실히 노력하고 있다. 모두가 잠이 든 새벽에도 나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김 명인의 공방. 어두컴컴한 새벽을 밝히는 그 빛이 훗날 한국전통공예를 밝혀주리란 기대감을 안고 한국전통공예의 빛을 따라가 보았다.2.김상실 명인 20150207_231244
3.김상실명인 작품
첫 번째 빛. 김상실 명인, 한국전통공예와 만나다.4.김상실명인
한국전통공예가 곧 인생이 된 김상실 명인이지만, 처음부터 한국전통공예를 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김 명인은 경기 통신회사에서 8년간 근무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분야와 전혀 다른 분야에서 8년이란 시간을 소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과연 어떠한 연유 때문에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는지 궁금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김 명인이 그때까지만 해도 문제없이 다니던 통신회사를 퇴직한 것은 어떤 거창한 이유나 포부 때문은 아니었다. ‘남자라면 한 번쯤 큰 돈을 벌어야 되지 않겠냐.’는 지인의 회유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김 명인은 통신회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직업을 갖게 되었다. 바로 보석 유통업이었다. 보석 유통업은 김 명인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어찌보면 사소하다 할 수 있는 계기로 시작한 일이 본인의 적성이란 것을, 또 본인이 줄곧 하고 싶어하고 꿈꿔왔던 일이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뜻하지 않은 각성은 김 명인의 인생 판도를 뒤바꾸어 놓았다. 미비한 출발이 현재의 김 명인을 있게 한 시발점이자 운명적인 만남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 빛. ‘인간’ 김상실에서 ‘명인’ 김상실이 되다.
” 다른 사람이 만든 보석을 유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든 보석을 유통하고 싶었다.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보석이 유통되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겼다. ”
김 명인은 그간 모아둔 돈으로 세공 공장을 차렸다. 그리고 종로, 남대문 등 적재적소에 총판을 냈다.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김상실 명인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직종에 뛰어든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히트작들을 연이어 탄생시켰다. 이를 좀 더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김 명인은 TV에 나오는 탤런트들이 김 명인 본인이 직접 만든 장신구를 착용한다면 TV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중매체가 발달한 지금은 마케팅이라는 분야에서 스타마케팅을 뺄래야 뺄 수 없지만 9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스타마케팅이 전무했던 시대였다. 5.김상실 명인 20150207_231111
시대를 한 발 앞선 김 명인의 아이디어는 김 명인이 만든 장신구만큼 히트를 쳤다. TV를 틀면 각종 채널마다 김 명인의 작품을 착용한 탤런트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KBS 주말 연속극 ‘호텔’에서 이승연이 착용했던 메달 목걸이 역시 그 중 하나다. 그 밖에도 고소영, 손창민, 김혜수, 황보, 려원 등 많은 스타마케팅 사례가 있지만 그 중 최고의 히트작은 손창민이 드라마에서 착용했던 반지다. 당시 손창민이 새끼손가락에 꼈던 베르사체 반지는 지금까지도 변형에 변형을 거치면서 개발되고 있는 중이라고. 스타들뿐만 아니라 김상실 명인의 세공법이나 디자인을 카피한 장신구를 착용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이때 고안한 세공법은 일종의 전례가 되어 현재 세공업에도 적용되고 있으니 과거와 현재, 더불어 미래의 세공업에도 큰 공헌을 한 셈이다. 이쯤 되면 저작권 문제가 불거질 법도 한데, 이에 대한 김 명인의 태도는 너그럽기 그지없었다. 김 명인은 한국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지기 위한 첫 번째 지름길은 자신의 히트작을 여러 사람이 모방하여 대중화시키는 것이라 말하면서 대인배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6.김상실 명인
이처럼 김상실 명인은 수많은 인생 경험과 시간 속에 묻혀 있던 재능을 발견하는데 성공했으나 곧바로 ‘명인’이란 이름 두 글자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인간’ 김상실에서 ‘명인’ 김상실이 되기까지 김 명인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IMF가 터졌던 1990년대 후반 무렵,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했던 IMF 당시에도 승승장구 중이었던 김 명인은 사기로 인해 많은 돈을 잃었다. 돈을 잃은 것도 큰 타격이었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은 김 명인에게 더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김 명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유일하게 남아 있던 남대문 가게를 일으키고자 했다.
남대문 가게를 액세서리 가게로 바꾼 김 명인은 액세서리 디자인을 연구, 남대문 시장에 액세서리 학원을 만들고 상가를 구축했다. 그 후 공동 브랜드 상가를 구축하고, 2002년 무렵에는 인터넷 쇼핑몰도 개업했다. 지금은 온라인을 통한 전자상거래가 흥행하는 시기지만 2002년 당시만 해도 인터넷 쇼핑몰이 점차 상업화되기 시작한 초창기라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인프라를 구축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했는데, 김 명인이 직접 낸 아이디어가 실제로 프로그램에 적용되기까지 장장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김상실 명인은 전국 오프라인 가맹점과 온라인 프랜차이즈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2013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제작, 한국예총에서 시흥하는 명인제도에서 ‘보석공예명인’이란 칭호를 받고 ‘인간’ 김상실에서 ‘명인’ 김상실로 거듭났다. 이는 귀금속 공예 분야 명인 1호로 대한민국 최초의 칭호다.
세 번째 빛. 한국전통공예가 나아가야 할 길
보석공예명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수여받은 후에도 김 명인의 행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김 명인은 한국전통공예가 풀어야 하는 숙제는 ‘한국전통공예의 산업화’라고 이야기한다.
” 해외전시나 박람회를 방문해보니 한국 패션쥬얼리 제품의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제품력이 뛰어난 반면, 디자인은 외국 디자인 모방이 많았다. 액세서리 만드는 기관이나 학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 적은 것이 바로 그 이유다. 그러다 보니 실 제품에 비해 가격을 못 받는 것은 물론, 해외 무대에서도 대접받지 못한다. “
뛰어난 제품력에도 불구, 국제무대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한국전통공예의 문제점을 극복해야겠다 생각한 김상실 명인은 우리 색이 살아 있는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보석공예명인이란 칭호를 얻기 전인 2006년 당시, 김 명인은 전통공예 기법을 배우기 위하여 전국 각지를 순회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너가 무슨 전통 공예 하는 사람이냐? 이도 저도 아니고, 어중이떠중이 같다.’라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이단아 취급을 받으면서도 한국전통공예의 산업화를 위한 김상실 명인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기도 하고, 핸드메이드 수작업 제품을 직접 도매시장으로 가지고 나가 시장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김 명인은 ‘참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그런 일련의 노력들이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이라 말하며 시종일관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
김상실 명인은 또한 전통공예를 등한시하고 천대하는 태도에도 안타까움을 비췄다.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손끝이 섬세하고, 성격이 차분하며 온순하다. 공예를 가장 할 수 있는 조건을 타고난 민족임에도 타고난 잠재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잠재 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하여 김 명인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메이저 분야인 중공업 육성에 밀려 투자 지원이 미비한 게 첫 번째 이유고, 젊은 사람들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에만 관심을 가지는 게 두 번째 이유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만 해도 전통공예 학과가 전국 각지에 27개나 자리 잡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고등학교도 다수 설립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통공예 배움 과정을 공식적으로 수료할 수 있는 기관이 단 한 개도 없다. 국제 경쟁력으로 보나 대중적인 인식으로 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인정받지 못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요즘 들어 서울시를 공예 도시로 바꾸고, 안국동에 위치한 풍문여고를 공예 정보 센터로 개조하여 안국동과 인사동, 삼청동 일대를 공예 중심지로 만드는 등 한국전통공예의 맥을 잇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어 낙관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김상실 명인은 말한다.
네 번째 빛. 한국전통공예의 미래를 위한 또 다른 발걸음
오랜 시간 동안 들여다본 김상실 명인의 작품은 다른 한국전통공예와 달리 눈길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었다.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자개나 전복 같은 것들이 화려한 장신구로 변신하여 이목을 집중시켰고, 보통 사람들은 발견하기 힘든 자개의 아름다움을 발굴하여 그것을 극대화시킨 김 명인만의 독특한 기법 때문이었다.
김상실 명인의 주특기는 ‘패각 기법’이다. 패각 기법이란 전복이나 조개의 선을 오려 붙인 다음 그 위에 각종 보석을 얹어 작품을 만드는 기법이다. 김 명인은 패각 중에서도 전복 패각을 주로 사용한다. 전복마다 컬러와 문양이 달라서 그 컬러와 문양을 최대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패각 기법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은 브로치로도 쓸 수 있고 줄을 끼워 목걸이로도 쓸 수 있다. ‘패각 기법’은 김 명인이 직접 개발한 기법으로 이번 전주에서 열린 전통공예 전국대전에도 공통된 분야가 없었다고 한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분야이기에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여러 사람들의 점수를 통합한 결과 특별상이라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은 전복 껍데기로 기본 바탕을 만든 후 그 위에 진주나 수정, 크리스탈 같은 것들을 꽃으로 만들어 장식한 작품이다. 김 명인은 기본 바탕을 화려함으로 가득 채우기보다 여백의 미를 중시했다. 이는 평소 공부하고 있는 한국화 기법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한번 보고 또 보고 싶은 한국화처럼 김 명인의 작품 역시 한번 보고 또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특별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한국화의 미학을 보석으로 표현한 김 명인의 작품이 한국전통공예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가능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다섯 번째 빛. 프랑스에서 시작되는 한국전통공예의 새로운 명맥
김상실 명인은 올해 3월 프랑스에서 전시회를 가질 계획이다. 작년 3월 경, 전통공예 사업가 모집 공고가 떴고 최종 20명에 김 명인이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린 것이다.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나라인 프랑스에서 전시회를 갖는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우리 색, 우리 문화를 그대로 품은 김 명인의 작품이 프랑스인들에게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기대가 되었다.
“이번 전시를 위하여 해외 디자인을 전공한 유학파 디자이너들 20명으로부터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전통공예 기술과 현대적 디자인을 융합하는 교육이었다. 이는 새로운 한국형 디자인 공예를 창출해내기 위한 교육 시스템으로 촌스럽다 치부되었던 전통공예 디자인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김상실 명인은 한 번의 전시회를 위해 1년 가까이 교육받았다. 외국 유명 디자이너들을 초빙하여 교육을 받기도 했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지속적인 교육을 받기도 했다. 교육에 대한 결과물은 3월 첫 주에 파리에서 첫 선을 보인다. 그 후 4월 말부터 5월까지 밀라노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쇼에 전시되고, 6월부터 7월까지 전주 한옥마을의 공예 문화관에서 1개월가량 전시된다.
이처럼 한국전통공예를 세상에 알리고자 시작된 첫 행보는 김상실 명인이 소속되어 있는 1기생을 시작으로 2기생, 3기생, 4기생으로 뻗어나가는 등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제도화될 예정이다. 밀라노에서 첫 선을 보일 김 명인의 작품은 ‘식탁’으로, 주제는 ‘식탁 위의 예술제’다. 이번 테마가 ‘식문화’인 만큼 김 명인은 나라가 평안하려면 가정이 평안해야 하고, 가정이 평안하기 위해서는 주부의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식탁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식탁으로 꾸미는 데 전념했다. 처음에는 다섯 점을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미를 보다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전시 효과가 높은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 90센티~120센티 정도 되는 판위에 각종 보석을 이용하여 정원을 만드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 동안 작품 판매 위주로 해외전시에 참여했지만, 판매보다 작가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전시 위주의 작품을 택했다. 개인의 영광보다 한국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유럽인들에게 보다 확실히 전달하고 싶은 김 명인의 정신은 ‘식탁 위의 예술제’와 함께 전시될 계획이다.
김 명인 1
전통공예는 후대를 넘어선 먼 미래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야 할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허나 부족한 투자지원, 현대 디자인과의 절충안 부족 등으로 타 공예 분야에 비해 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분명 희망은 있다. 오직 한국전통공예만을 위한 기관을 설립하고 각 공방마다 수강생을 모집하여 미래의 공예 전승자를 키우는 등 곳곳에서 한국전통공예 부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김상실 디자이너 역시 전시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김상실 명인의 이런 노력이 한국전통공예라는 망망대해에서 빛나는 미래로 향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등대가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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