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9월 28일 월요일 오후 1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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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 칼럼] 동맹의 한계 – 방위사업청 문제점

 

미국 정부가 한국에 공여하기를 거부한 네 가지 핵심기술에는 영국에도 주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미국과 영국의 관계는 문자 그대로 특수 관계(special relations) 이다. 미국은 영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다. 그 후 미국이 확장되며 많은 인종요소가 들어 왔지만, 중심은 역시 WASP(와스프,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약어,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 즉 앵글로 색슨, 프로테스탄트이다.

이러한 미국과 영국의 특수 관계에도 기억할 사실이 있다. 2차대전 초 히틀러의 공격으로 영국이 존망의 고비에 처했을 때 미국은 구축함 50척을 원조했다. 그런데 이 구축함이 공짜가 아니었다(!) 미국은 그 대가로 미 동부해안에서 900km 떨어진 버뮤다 섬에 해•공군기지를 요구했다.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는 절묘한 협조로 공산권을 붕괴시켰다. 그런데 1983년 미국은 좌익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그레나다는 형식적이기는 하나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받드는 코모웰스의 일원이었다. 대처는 이 소식을 6시 BBC 방송을 듣고 알았다. 대처는 레이건이 그레나다 침공계획을 사전 통고하지 않은데 대해 격분하였다.

레이건은 침공이 개시된 날 오후에야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 사전 통고를 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였다. 대처는 대노했지만 레이건에 유감을 표하는 선에서 물러났다. 레이건은 기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군부의 요구 때문에 대처에도 사전 알리지 않은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특수 관계에도 이러한 간극(間隙)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한미혈맹은 미영 특수 관계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사실 실무선에서는 이런 일이 적지 않다. 모두들 쉬쉬하는 가운데 넘어 갔을 뿐이다. 1980년대 초 국방부 방산담당 차관보가 미국과 협상을 하고 들어와 고민에 빠졌다. 대통령에 보고한 내용과 협상내용이 달랐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는 당시 대통령과 동기생이었다. 미국 협상 팀과 겨룰 만큼 철저하지 못해 우리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확보하지 못한 채로 구두약속에 만족했다가 ‘아차’한 것이다. 영어문서에서는 콜론: 과 세미 콜론; 하나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된다.

국방부를 문민화한다고 하면서 일반 행정 파트에 있던 관료들이 간부와 책임자로 와서 기존의 전문가들을 장악하지 못하니 이런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방사청은 특히 그러하다. 방사청을 만들 때 요원들은 국방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좀 있었다. 그 후 전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오다보니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미국에서 세계 제1의 자동차 폴크스 바겐이 퇴출상태에 있다. 배출가스를 낮추기 위한 조작이 문제가 되고 있다. 독일인은 정확하기로 정평이 나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방사청에서 일어난 일도 본질은 같다. 모두 급한 김에 뱉은 거짓말이 문제다. 거짓말에 기반하여 판단을 하고, 결심을 세우고, 일을 추진하다보니 이것이 쌓여 겉잡지 못하게 터져버린 것이다.

이번 일에 청와대에서 조사를 지시했다고 하는데 이런 문제는 검찰조사, 감사원 감사로 밝혀질 일이 아니다. 획득업무에 밝은 역대 장관-그리 많지 않다-. 민간 전문가로 조직되어 전권을 갖고 대통령께 직보하는 특별 사문회가 필요하다. 레이건 대통령 당시 미국 CIA의 전반적인 문제점과 개선안을 보고했던 타워위원회(Tower Commission)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

얼결의 거짓말을 밝혀내지 못하고 넘기면 결국은 이런 파탄(破綻)에 이른다. 오호 통재라!

 

 

김국헌장군 배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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