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10월 06일 화요일 오전 10시 46분

고정식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55) 시야를 넓혀야 하는 까닭

 

옛날 중국의 형(荊)나라 사람이 활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활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말했다. “형나라 사람이 잃은 활을 결국 형나라 사람이 주울 텐데 무엇 때문에 찾으려고 애쓴단 말인가.”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형나라라는 말을 빼는 게 좋겠다.”고 평했다.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을 사람이 줍게 되면 그것으로 족하지 굳이 형나라 사람으로 국한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는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이런 말을 듣고 노자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아예 사람이라는 말도 빼는 게 더 좋겠지.” 잃어버린 활이 어디에 있든 결국 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맹춘기(孟春紀) 귀공(貴公)’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이 이야기의 맨 앞에 등장하는 활 잃어버린 형나라 사람만한 시야를 갖추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의 시야는, 공자와 노자에 비교하면 다소 왜소해 보이지만, 적어도 자기 나라 국경선까지 이르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도 이런 수준의 시야를 갖기는 쉽지 않다.

진샹링(금산령) 근처의 만리장성

▲ 진샹링(금산령, 金山岭) 근처의 만리장성.

시야가 좁을수록 ‘나의 이익과 손해’의 범위가 극도로 제한된다. 가장 좁은 시야로 보면 한 핏줄을 나눈 형제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 형제의 이익은 그 형제의 이익이지 절대로 내 이익이 될 수 없다는 단순명쾌한 논리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형제의 이익이 내가 손해 본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내 이익이라고 말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시야가 넓으면 넓을수록 이득과 손해, 소유를 분별하는 경계가 점점 더 확장된다. 노자쯤 되면 그런 경계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겉모양은 이리저리 바뀔지언정 결국 존재하는 것이고 이 우주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게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이런 경지에서라면 어떤 문제든지 말 그대로 초연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노자처럼 거창스럽지 않은 일상적 수준에서도 좁게 짧게 보면 잃는 것이 넓게 길게 보면 결국 얻는 일로 귀착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경험한다.   
 
왜 이처럼 보다 넓은 시야를 갖는 게 바람직할까? 대체로 시야가 넓으면 눈앞의 사소한 이해득실에 일희일비할 개연성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편협하고 근시안적 관점이나 이기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면 할수록 그 결과에 이리저리 동요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보다 넓은 안목을 지닐 때 우리는 보다 안온한 마음 상태, 다시 말해 마음의 평정을 누릴 여지를 더욱 많이 갖게 된다.
 
보다 폭넓은 시야나 관점을 갖는 게 좋다고 해도 그것을 얻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간에, 자기중심적 배타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항상 두꺼운 타성과 관습, 편견으로 겹겹이 무장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머스 홉스

▲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그는 국가가 존재하기 전의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고 주장했다.

굳이 부정적인 면을 말하면, 일단 다른 나라와의 문제는 제쳐 놓더라도, 지금 세상은 온통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공동체적 분위기가 거의 증발해버리고, 가장 끈끈하고 원초적인 정으로 뭉치는 가족 집단조차 이미 원자화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런 세태에서 보다 넓은 시야를 갖자는 말은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소박한 주장처럼 들린다. 한 나라가 한 마을처럼 공동체적 질서와 연대감으로 단단히 묶여있던 시절에나 통용될 수 있는 생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글의 형나라 사람 이야기는 세상 천하가 극도로 어지러웠던 춘추전국시대가 그 배경이다. 공자나 노자 역시 참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았던 인물이다.
 
보다 넓은 시야를 갖자는 주장을 가볍게 물리쳐서는 안 된다. 오늘의 이 현실에서, 똑같은 것을 소유하고 똑같은 여건에서 삶을 영위하면서도 보다 평온한 마음, 보다 고요한 행복을 보다 크게 누리면서 살기 위한 현실적 지혜로서 시야를 확충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흔한 말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말고 보다 멀리 생각하고 보다 넓게 바라보도록 우리 스스로를 연마하자. 이런 노력이 조금씩 쌓여 갈수록 개인이 누리는 행복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역시 더욱 인간적인 따스함을 지닌 사회, 구성원들이 더욱 강한 유대감을 공유하는 진정한 선진 사회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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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된 댓글 수 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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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하길

    정말 좋은 내용이네요 어렵겠지만 실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