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11월 03일 화요일 오후 12시 33분

고정식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57) 올바로 알려고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시몬과 페로

우선 이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자. 나이가 제법 지긋하고 머리와 수염이 제멋대로 자란 남자가 젊은 여자의 젖을 빨고 있다. 남자는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반신만 대충 가려져 있는데 두 손이 뒤로 쇠사슬에 묶여있는 듯하다. 눈빛은 거의 몽롱한 상태다. 여자는 몸매와 가슴이 상당히 풍만하고, 눈빛은 젖을 빨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간은 컴컴하고 허름해 보인다.

무엇을 그린 것일까? 어두컴컴한 곳에서 직설적으로 말하기에도 민망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아니고 무언가. 아마도 오늘날처럼 영상물이 흔하지 않던 시대에 그려진 일종의 도색 그림이 분명하다! 난해한 추상화나 전문가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초현실주의 작품이 아니라서 판단하는 데 별로 망설여지지도 않는다!

이 그림에 대해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렇게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그림의 예술적 가치나 아름다움은 어떻겠느냐고 묻는다면, 도색 그림에 예술은 무슨 얼어 죽을 예술이냐는 냉소적인 대답이 곧바로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이 그림의 제목은 『시몬과 페로』다. 17세기 바로크시대, 그러니까 대충 4백년 전에 네덜란드의 거장 페테르 루벤스(Peter Paul Rubens)가 그렸다. 소재는 ‘시몬과 페로’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이 이야기는 로마 시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가 쓴 『기억할 만한 언행들』이라는 책에 나온다고 한다. 옛날 로마에 시몬이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역모죄를 저질렀다 하여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 방식은 아사형(餓死刑), 즉 감옥에서 굶겨 죽이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 노인에게는 페로라는 딸이 있어서 감옥살이를 하는 아버지 면회를 갔다. 하지만 시몬은 굶어죽어야 하는 벌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갖다 주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딸 페로는 마침 출산한 다음이어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으므로 아버지를 면회할 때마다 간수들 몰래 아버지에게 젖을 먹였다. 결과적으로 딸 페로는 아버지가 굶어 죽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딸의 이런 갸륵한 행동이 알려져 로마 왕은 감동했고 마침내 아버지 시몬은 석방되었다.

옛날 로마에서는 ‘시몬과 페로’의 주제가 상당히 인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가장 고귀한 사례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야기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이 이야기는 말하자면 ‘로마판 심청전’인 셈이다. 천재 화가 루벤스는 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한 화폭에 그려 넣었던 것이다.

그림에 대한 이런 정보를 듣고 나서 다시 그림을 보니 그 이전과 그림이 달라 보이는가?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는 『동방박사의 경배』, 『십자가 세우기』 등 역사화와 종교화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다. 오스트리아 왕실 전속 화가로 임명되면서 전 유럽에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런데 신성하고 거룩한 그림을 그리던 루벤스가 『시몬과 페로』를 그리자 일종의 ‘퇴폐성’ 논란에 휩싸이고 만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시몬과 페로』를 노인과 젊은 여자의 퇴폐적 성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루벤스가 ‘시몬과 페로’의 이야기를 맨 처음 그린 화가도 아니었고(루벤스 말고도 이를 주제로 한 그림이나 조각은 여러 작품이 있다), 그가 여러 차례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엉뚱한 말썽으로 인해 루벤스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하는 수 없이 낙향하여 주로 어둡고 쓸쓸한 풍경화를 그리다가 1640년에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쓸쓸하게 죽고 말았다.

루벤스가 죽고 많은 세월이 흐른 다음 그의 『시몬과 페로』는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고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색채의 강렬한 대비(對比)를 통해 이미지를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화려한 찬사와 함께.

시몬과 페로2

▲ 『시몬과 페로』폼페이 프레스코화, 1세기경 작품, 작가 미상.

어떤 주장이든 예술 작품이든, 혹은 무슨 사건이든 간에 그 실상을 올바로 알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사실이나 진실을 온전히 파악하려면, 알고자 하는 대상에 관련된 맥락과 배경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알려는 그 대상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닐지라도 그러하다.
 
우리는 지레 짐작, 선입견, 자기 고집 등을 동원하여 대상을 바라보면서 실상을 파악한다든가 객관적으로 관찰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대상을 보려는 자기중심적 성향도 지니고 있다. 문제를 건성건성 거칠게 단순화하고 마는 조급함, 성급함마저 지니고 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인지구조는 사실이나 진실보다는 오히려 허상이나 허위와 같은 편이 되기에 더 적합하다. ‘옳다 그르다’거나 ‘좋다 나쁘다’는, 이른바 가치평가는 올바른 사실판단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인식 능력은 냉철하게 반성, 성찰해야 할 약점들을 엄청나게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무엇을 올바로 안다는 것이 언뜻 생각하듯이 그리 쉽지 않음을 우선 깨달아야 한다. 이런 자각에 투철해지면 더욱 겸손한 태도를 지니고자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성급한 일반화나 거친 단순화, 또는 오해나 곡해로 향해 치달을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진리, 그야말로 엄청난 진리가 아니라 일상사의 사소하고 단편적인 사실이나 진실에 다가가는 일조차 그리 쉽지 않음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필자 고정식


<저작권자Ⓒ 시사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등록된 댓글 수 1 댓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1. 성함...말하길

    요즘 우리나라에 역사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나마 일기 시작하는 현상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현재를 충실히 살기 위해서는 근현대사 즉 현재의 삶과 직결되는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물며 예술에 대한 이해는 창조성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명작일 수록 사후 유명세가 더욱 풍요해질 수 밖에 없음이 바로 렘브란트의 ‘시몬과 페로’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흐름이 잘 말해주고 있는겄 같다.
    역사를 직시 할 수 있는 냉철함이 절실히 요구 되는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