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5년 12월 28일 월요일 오후 9시 12분

일제 강점기, 한 일본 농학자의 여정 그리고 정열

 

조선의 흙이 되어도 좋다

 

다카하시 노보루의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의 발견부터 출판까지(민속원)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

 

두 권의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 전국 각지를 답사하며 농민들과 어깨를 맞대면서 조선의 전통적 농법과 실태를 조사 연구한 일본인 농학자가 있었다. 그가 다카하시 노보루(高橋昇) 박사다.

다카하시 노보루는 도쿄(東京)대학 농대 출신으로 조선총독부 산하 농사시험장에 파견 나와 근무하면서 당시 조선 8도의 농업 실태에 대해 심층 조사했다. 그의 연구조사는 조선총독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닌, 농학자로서 그의 개인적 비용과 의지 및 신념에서 독자적으로 이루어졌다.

“조선의 흙이 되어도 좋다”

다카하시는 무모하였던 일제(조선총독부)의 식민농정을 비판하고 “조선의 흙이 되어도 좋다”고 할 만큼 조선을 위해 몸바쳐 살며 조선을 사랑하였다. (민속원)

다카하시 노보루는 제주도에서 백두산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일일이 답사하면서 전래하는 농법과 농기계, 농촌생활문화를 탐문기록하고 사진과 스케치로 남겨 당시의 전무후무한 우리나라 기록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의 연구 자료는 조선총독부 서선지장장(사리원 소재)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10여 년간 조사한 자료로써 약 12,000장에 달한다. 그 외에도 사진 1,495장 그림 282장, 지도 260장, 사진 원판 507장 등 한반도의 농업실태, 토지이용과 경작법, 농기구 조사, 농민의 생활상 등 방대한 분량이었다.

 

다카하시노보루의조선반도-표지

 

다카하시 박사는 일본 패전(광복) 후에도 수원 농사시험장(후에 한국농촌진흥청)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일본에 돌아가지 않고 잔무 정리와 연구 전수를 위해 9개월 정도 더 머무르다 돌아갔다.

그는 1946년 일본으로 귀국하지만 2개월 후에 갑자기 협심증으로 사망해 55세로 생을 마친다. 다카하시 박사는 여생을 조선의 농업관련 저작에 몰두하려고 한듯하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방대한 조사 자료는 그의 아들 다카하시 코시로(高橋 甲四郞, 1925년 경기도에서 출생) 씨가 보관하고 있었다.

아들 코시로 씨는 후쿠오카현에서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재직하다 1966년에 퇴직한다. 그는 그때부터 아버지의 유고 원고를 세상에 내보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농업전문가, 출판사 등을 수소문하며 고군분투하지만 팔리지 않을 책을 발간하려는 출판사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코시로 씨의 장기간에 걸친 출판의지와 집념은 농학자 등의 도움을 받아 다카하시 노보루 사후 53년 만인 1998년에 한권의 두툼한 책으로 빛을 보게 된다.

책 제목이 「다카하시 노보루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 (일본 미래사)이다. B5판 1292쪽으로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원고지 12,000장 중에 출판에 사용한 분량은 4,000장 정도이다. 아직 8,000장은 원고로 남아있다고 한다.

 

조선반도의농법과농민(상)-표지

 

일본에서 다카하시 박사의 책이 출판되자 한국농촌진흥청은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해 현재 내부자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농촌진흥청은 아들 코시로 씨에게 요청해 다카하시 박사가 전국 각지에서 찍은 농업 실태 관련 사진을 기탁 받아 ‘다카하시 노보루 박사의 사진집’를 발간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을 한국의 출판사 민속원에서 번역 출판해 상중하 3권으로 2014년 발간되었다.

다카하시 박사의 아들 코시로 씨는 어떻게 아버지의 유고원고를 출판하게 되었는지, 그 전 과정을 기술한 다카하시 노보루의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의 발견부터 출판까지를 일본에서 출간했다. 올해 9월 한국 민속원에서 재일동포 전문번역가 김용권 씨 번역으로 출판했다. 코시로 씨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는 그의 열정이 그려진 논픽션이다.

여기서 일본인의 조사 탐구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조선은 덜 문명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조선인에 의해 수집되고 집필된 조선의 농법과 농업실태에 대한 종합적 연구 서적은 거의 없고 대부분 단편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것을 일본인 농학자가 다년간의 집념으로 집대성 한 것이다.

 

조선반도의농법과농민(중)-표지

 

아들 코시로 씨의 책 추천서를 쓴 일본 전문가 기노 코조(木野耕三)는 “다카하시 노보루의 여정은 …… (대동여지도를 작성한) 김정호에 필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옛날 우리 어른신들은 일본인의 이미지를 말할 때, ‘차양모자(hat)에 카메라와 만년필을 꽂은’ 사람으로 흔히 묘사했다. 여기서 ‘카메라와 만년필’은 그들의 기록 문화를 의미한다. 그들이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은 가히 세계 어느 나라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다카하시 노보루 박사의 저서는 우리 농학자 등에게 당시 조선의 농학과 농법을 연구하는데 많은 기여를 할 것이다. 또한 독자들에게는 일본인의 정신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조선반도의농법과농민(하)-표지

 

 

박승민 기자(park83@sis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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