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6년 5월 05일 목요일 오후 8시 24분

[김국헌 칼럼] 한미동맹과 종합적 안보구상의 필요성

 

중국이 미 항모의 홍콩 입항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걱정할 것이 없다. 가까이에는 제주도에 강정항이 있고 베트남에는 나트랑이 있으며, 필리핀에 수빅 기지가 있다. 미국은 평택에 세계 최대의 해외 미군 기지를 가지게 된다. 미국 해군이 여전히 세계 최강인 것은 전 세계에 거점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A. Mahan의 해군력 사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점에서 아직 멀었다. 국토는 엄청나게 크지만 항구는 대련, 천진, 상해, 홍콩(香港)은 모두 동해에 있고 서쪽에는 모래바다 밖에 없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혼자서 이긴 것이 아니다. 러시아는 위풍당당하게 발틱 함대를 출진시켰으나 지브롤터에서 영국이 가로막아 지중해로 들어가지 못했다. 지중해로 진입하여 스웨즈 운하를 통과하면 될 것을 멀리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케이프 타운에 들리려 하는데 다시 영국이 거부하니 겨우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 영토인 마다가스카르에 가서 물과 석탄, 식량을 조달했다. 다시 인도의 봄베이에 들리려다 안 되니 인도차이나의 캄란 만에 들려 숨을 돌렸다.

이때쯤 러시아 수병은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하루 빨리 도고 함대의 포탄에 맞아 죽기를 바라게 된다. 이것이 도고가 자기를 넬슨에 비한다면 모르겠으나 조선의 이순신에 비교한다는 것은 감당하지 못한다고 했던 일본해 해전의 진상이다.

그밖에도 영국은 일본이 런던 국제금융시장에서 전비를 조달하게 도와주었다. 일본이 탈진할 무렵 미국은 강화를 주선하였다. 동맹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영일동맹이 이루어지기 까지 일본인이 영국에 어떻게 비쳤는가? 네델란드인이 나가사키에 온 것이 이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이다. 이들을 통하여 조총이 전해졌다.

모방에 능한 일본은 조총을 대량 생산하였고 오다 노부나가는 장창과 조총을 활용한 집단전술을 발전시켜 다케다 신겐 등의 맹장을 제압하고 일본을 통일한다. 당시 노부나가가 보유한 조총은 서구 전체보다 많았고 일본의 보병은 세계 일류의 전사였다. 그런데 당시의 수발총(燧撥銃)인 조총은 비가 오면 사용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이러한 조총의 단점을 꿰뚫어 조총에 비해 우수한 화포로 왜 수군을 제압하였다. 영화 ‘명량‘에서는 이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수발총(flint): 화약과 탄환을 쑤셔 넣고 부싯돌로 불을 붙여 격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를 간파한 적은 첫 발만 피하면 다음 발사를 준비하는 시간을 잡아 돌격한다. 따라서 충격효과를 올리기 위해 일제사격으로 적을 압도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단발소총이라도 오늘날처럼 발전되는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이다. 8발 삽탄식(揷彈式)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이 처음 사용하였는데 일본군은 처음에 미군 보병이 모두 기관총을 사용하는 줄 알았다. 기관총은 노일전쟁에서 본격 사용되었는데 203 고지에 돌격하는 노기의 일본군은 추풍낙엽이었다.

트럼프는 트럼프나 치라고 해라. 한미동맹은 바위와 같이 튼튼하다. 마냥 이렇게 마음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라는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망발을 부린 것이 불과 30년 전이다. 국가안보실장은 단순한 위기관리가 아닌 총합적 안보구상을 할 수 있는 한국의 키신저가 되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양적완화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도 문제지만, 여야 정치권이 안보에 있어 미묘한 흐름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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