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7년 9월 07일 목요일 오전 10시 25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01) 희망적 사고는 위험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에 갑자기 부닥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가령, 어린 자식이 큰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느닷없이 듣는 경우, 또는 활기찬 젊은이가 어느 날 의사에게서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 경우다.

이럴 때는 아무리 이성적이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우선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 한다. “그럴 리가 없다. 틀림없이 무슨 착오로 잘못 전해진 소식이다!” “아니야, 오진이 분명해! 명의도 오진하는 경우가 흔하다지 않는가. 아니, 다른 사람의 검진자료가 내 것과 바뀐 게 분명해!”

직면한 사태가 감당 못할 만큼 크면 클수록 그것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은 심리가 강력히 작동한다. 그래서 그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사실이나 사태를 있는(벌어진)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 대로 보려는 태도를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고 한다. 원래의 영어 용어를 다소 어색하지만 좀 더 고지식하게 옮긴다면 ‘희망으로 꽉 들어차게 생각하는 것’이다. 엄연히 일어나거나 일어날 일을 내 맘 먹는 바처럼 될 거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이런 심리적 경향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다 있다.

희망적 사고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면 이른바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를 범하게 된다.

주사위 던지기 노름을 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주사위의 어느 한 숫자를 찍은 다음 실제로 주사위를 던져 그 숫자가 나오면 건 액수의 돈을 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노름이다. 주사위를 열 번 던지든, 천 번 만 번을 던지든, 특정 숫자를 맞힐 확률은 항상 6분의 1이다. 그런데 노름에 홀라당 빠진 노름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령 지금까지 주사위를 다섯 번 던졌는데 단 한 번도 맞히지 못했을 경우 여섯 번째는 맞힐 확률이 높아졌다고 굳게(!) 믿는다. 자기가 여태껏 돈을 딸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 이제는 딸 수 있는 기회가 가까워진 거라고 ‘내 속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희망적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떠한 사태의 실상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또는 인정하고 싶은 모습대로 되어 있다고 믿어버리는 태도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사태 인식이나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된다. 세상살이, 사실 세계는 인간의 욕구나 주관적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니까.

어떤 갈등이나 문제든 간에 적합한 해결방안을 찾으려면 우선 그 구조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희망적 사고는 문제의 전모와 핵심을 응시하고 성찰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외면하게 만든다. 그러니 개인이나 작은 집단의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 북한의 제6차 핵실험 관련 설명도

▲ 북한의 제6차 핵실험 관련 설명도(출처:서울경제)

북한 핵무장 문제 때문에 오늘 대한민국은 유사 이래 최고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말 그대로 국가 존립과 국민 생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처해 있다.

이런 국가 안보의 비상 상황과 전국민적 불안 상태는 북한이 처음 핵실험을 실시한 시점부터 싹튼 것으로 보인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작금의 상황이 조성되었다. 그런데 그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희망적 사고에 빠져 있었던 점도 중요한 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거나 ‘북한 핵은 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이라는 공언, 그리고 ‘중국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턱없는 낙관, 이 모두가 희망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북한과 그 통치자들의 실상과 본색을 냉철히 파악하지 못했다.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대로 인식하면서 마치 그 실상, 본질을 제대로 아는 양 자신해왔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라도 안이한 희망적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국가 보위(保衛)와 국민 생명 및 재산을 책임진, 대통령을 비롯한 의사결정권자들의 냉철한 사고와 판단이 요구된다. 이들이 희망적 사고에 갇혀 허우적거린다면 국가적 대재앙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를 주관적인 희망으로 물들여 안이하게 보지 말고 그 전모, 본질과 구조를 투시, 성찰하려고 해야 한다. 이렇게 하더라도 실상을 파악하고 합당한 대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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