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7년 9월 21일 목요일 오전 10시 41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11 – 재덕부재험(在德不在險)

아무리 튼튼한 울타리일지라도

재덕부재험(在德不在險, zài dé bù zài xiǎn)

있을 재, 큰 덕, 아닐 부, 있을 재, 험할 험

이 이야기는 《사기》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나온다. 오기가 말한 ‘재덕부재험’은 역대 왕조마다 인용되어 왕의 덕을 중요시하여 왔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적이 될 수 있다.’ 라는 뜻을 가진 ‘주중적국(舟中敵國)’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녀는 18년간 살았던 집을 떠나 18년간의 야인 생활을 거친 후 국회의원이 되어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하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나라 경제를 일으킨 위대한 지도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내조를 잘한 분’ 이라고 기억하며 그녀에게 열광했고 마침내 그녀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다시 그의 집에 들어가게 해주었다.

그러나 강단이 있게 국정을 잘 이끌어 가리라는 기대는 얼마 가지 않아 줄어들기 시작했다. 장관과 독대도 하지 않는 등 소통이 잘 안 된다는 비판을 시작으로 그녀를 감싸고 있던 튼튼한 울타리들이 하나하나 벗겨지고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말썽을 일으킨 수준 낮은 비서진을 ‘의리’라는 명분으로 그대로 곁에 두고, 충언을 해주는 이들을 싫어하며 만나주지 않고, 간언과 반대의견을 내는 자에게는 더 나아가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내쳤다.

급기야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비선을 두어 이른 바 ‘국정농단사건’을 일으켜 마침내 그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간 떠돌던 온갖 루머와 불협화음이 사실로 드러나니 그녀를 지지해왔던 가장 든든하고 촘촘히 다져진 ‘국민’이라는 울타리마저 벗겨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탄핵되어 구속에 이르는 치욕스럽고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다. 사람들은 본인도 본인이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잘 못 모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녀의 왕국이 무너진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인가? 아니다. 이 사건의 여파로 보수니 진보니 국론이 엇갈리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사드배치 등 국정 현안이 표류하였다. 대외적으로 나라의 품격이 크게 훼손되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에서 보듯이 아무리 튼튼한 왕궁이라도 왕이 제대로 왕 노릇을 못하면 바로 무너진다는 사실, 더 나아가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고난을 받는 것이 이 오늘날 이곳 여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어 안타까움만 늘고 있다.

위(魏)나라 문후(文侯)는 오기(吳起)가 용병에 능할 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공평하여 유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용해서 병졸들의 인망을 얻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를 서하(西河, 섬서의 동쪽)태수로 임명하고 진(秦)나라와 한(韓)나라를 막게 했다. 문후가 죽은 다음 오기는 그의 아들 무후(武侯)를 섬겼다. 어느 땐가 무후가 서하에 배를 띄우고 중류에 내려 왔을 때 오기를 돌아보고 말했다.

“참으로 아름답구나. 이 험준한 산하야말로 위나라의 보배구려.”

그러자 오기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망에 있는 것이지 험준한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在德不在險). 옛날 삼묘(三苗)씨의 나라는 동정(洞庭)을 왼쪽으로 끼고 팽려(彭蠡)를 오른쪽에 끼고 있었지만 임금이 덕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우(禹)에게 멸망당했습니다. 하(夏)의 걸왕(桀王)이 도읍한 곳은 황하와 제수(濟水)를 왼쪽에 끼고 태산과 화산(華山)를 오른쪽에 끼고, 이궐(伊闕)이 그 남쪽에 있으며, 양장산(羊腸山)이 그 북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불인(不仁)했기 때문에 은(殷)나라의 탕왕(湯王)에게 쫓겨났습니다. 은나라 주왕(紂王)의 나라는 맹문(孟門)을 왼쪽에 끼고 태항산(太行山)을 오른쪽에 끼고 상산(常山)이 북쪽에 있었고, 대하(大河)가 남쪽을 돌고 있건만 정치가 부덕한 까닭에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도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망에 있는 것이지 험준한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덕을 쌓지 않으신다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적국인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舟中之人盡爲敵國也).”

그러나 훗날 무후가 그를 의심하므로 다시 초나라로 가서 도왕(悼王)을 섬겼다. 재상을 지내면서 법을 엄하게 다스려 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왕이 죽자 오기를 원망한 왕족과 신하들이 내란을 일으켜 그를 죽였다.

사마천은 말미에 이런 말을 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말 잘하는 자가 반드시 능히 행하는 자가 아니다.’오기는 무후에게 산하의 험준함이 덕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하면서도 자신이 초나라에서 행한 정치는 각박하고 몰인정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몸을 잃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 성어는 한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단결은 임금의 덕에 달려 있는 것이지, 변방의 지리가 험준하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라는 뜻이다. 즉 나라의 안전과 발전(명운)은 물질적 조건이나 좋은 환경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가 덕을 베푸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지난 몇 개월간 벌어진 쓰나미는 이제 지나갔다. 국민들은 덕이 부족한 왕이 제발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다가오는 선거일을 기다리고 있다. 후보들마다 자기가 제일 훌륭한 최상의 대통령감이라고들 말하지만, 국민들은 ‘이것은 좋으나 저것이 부족한’ 후보들을 보면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국민들은 나라의 안보와 경제를 책임질 ‘최상’이 없으니 결국 그 중에 ‘차선’이라도 잘 찾아봐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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