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7년 11월 14일 화요일 오전 11시 49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03) 슬기로운 개인과 나라

 

“바꿀 수 없는 것을 감내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소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줄 아는 용기를 갖게 하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게 하소서.”
꽤 널리 알려진,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Reinhold Niebuhr, 1892~1971)의 기도문이다.

▲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

▲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

각 개인의 삶에는 전혀 변화시킬 수 없는 요소, 말하자면 인생의 상수(常數)가 있다.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무리 맘에 안 들고 바꾸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도 부모는 바꿀 수 없다. 이런 요소는 그것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의연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도리밖에 없다.

아무리 삭막하고 온갖 어려움이 둘러싼 인생이라 하더라도 그 주인공이 변화시킬 여지가 깡그리 없을 수는 없다. 가령 낭비벽 같은 고약한 습관은 고칠 수 있다. 사소한 일에 흥분하고 매사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버릇 따위도 꾸준히 노력하면 상당히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간하기는 쉬운 일처럼 비친다. 무슨 대단한 지혜 없이도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분별이 그처럼 간단할까? 예를 들면 알콜중독 같은 것 말이다. 완전히 고칠 수 있을까? 아니면, 다소 개선되는 정도 이상을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일까? 아마도 알콜중독 치료 전문가들에게 물어봐도 단일한 대답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무슨 일에서든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심지어 사소한 오락에서도 지면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이 여기는 강한 승부욕 같은 건 어떨까? 더구나 이런 승부욕을 큰 미덕인 양 여기는 사람이라면 바꾸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테고 실제로 바꾸지도 못할 텐데. 

결국, 바꿀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을 판별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말이 성립한다. 한마디로, 진정 지혜로워야 그걸 구분할 수 있다.

니부어의 기도문은, 얼핏 보면 초등학생의 바른생활 교과서 수준의 행동지침처럼 싱거워 보인다. 그러나 꼼꼼히 따져보면, 그가 말한 마음의 여유와 용기, 그리고 지혜를 제대로 갖추는 게 결코 수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아니, 도리어 말 그대로 상당한 수양을 쌓은 현인(賢人)이 아니고서는 갖추기 어려운 덕목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덕성을 갖춘다면 실제로 의젓하게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이 아니라 한 나라라면 어떨까? 국가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요소들을 지닌다. 나라의 위치나 기후 같은 게 그렇다. 과학과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하여 땅덩어리 이동, 기후 변화를 밥 먹듯 할 수 있을 때가 오면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건 몽상일 뿐이다.        

국민적 문화 행태 같은 건 어떨까? 물론 사소한 관행이나 폐단 같은 것은 국가가 작정하여 노력을 집중하면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컨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지역정서나 위계질서를 절대시하는 의식구조 같은 건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점들을 일종의 상수처럼 간주하고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고 고집할  수도 없다.

결국 국가 전체적 시야에서 본다면, 바꿀 수 없는 것과 있는 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슬기롭게 구분해서 그 중에 변경 가능하면서 중요성을 띤 일에 적절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성립한다.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처럼 상수적 요소에 대해서는 의연한 자세로 수용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가변적이고 개선이 시급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는 적절한 정책을 치밀하게 수립하여 추진하는 용기(단호함)가 필요하다. 앞에서 말한 한 국가의 상수적 측면과 개선 가능한 국가과제를 정교하게 분별하고 합당한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일에 고도의 지혜가 요구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슬기로운 국가’가 되려면 국민 전체가 지혜로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통치자를 비롯한 엘리트 집단과 사회 지도층이 지혜로워야 하고, 또한 우리 사회체제와 문화가 그들의 지혜가 결집될 수 있도록 짜여야 한다. 이들은 국가 백년 천년의 향방을 정하고 모든 정책의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니부어의 기도문은 개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해줌은 물론이고 한 국가의 존립과 번영의 현실적 지침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개인이든 국가든 간에, 바꿀 수 없는 것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여유, 바꿀 수 있는 것을 과감히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것이 멋진 개인, 당당한 국가가 되는 길이라고 본다.
 
현 시국은 니부어의 기도문을 나 자신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심정으로 읽게 하고 있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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