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1월 16일 화요일 오전 10시 39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17 – 작법자폐(作法自斃)

내가 만든 법에 걸려

作法自斃(작법자폐, zùo fǎ zì bì)

지을 작, 법 법, 스스로 자, 죽을 폐

《사기》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온다. 제가 만든 법에 제가 걸려 죽는다는 뜻으로 제가 놓은 덫에 제가 치인다는 속담과 같은 뜻이다. 嗟呼! 爲法之敝, 一至此哉!(차호, 위법지폐, 일치차재) : 아! 법을 만든 폐해가 이 지경에까지 왔구나!

“글쎄요. 갑자기 그리 물어 오시면…, 제가 아는 한, 아무 돈이나 받아먹는 분은 아니시죠. 또 업무능력도 높고 또 조직 장악력도 있을 거니까 그쪽이 말하는 ‘개혁’의 적임자가 될 수 있죠. 아! 재산도 대부분 처갓집 것이라 뭐 거리낄 것도 없겠군요.”

장관 하마평에 올랐던 그에 대한 평판조사에 응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보자에 오르지 못했다. 한 모임의 멤버였던 그와 몇몇이 술자리를 가졌다. 몇 순배 술이 돌자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던 2011년 당시 사실 난 이 법의 초안 작성의 한 멤버였지. 당시 윗선의 강한 요구에다가 여론도 그리 흘러가니 보다 엄격한 내용이 들어가게 되었다네. 그때 거기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 법이 앞으로 자기의 앞길을 막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을 거네. 너도나도 더 엄격하게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니까. 헌데 요 며칠 동안 그때 그 사람들 중 나를 포함한 네 명에게 하마평이 있었고 후보제의도 왔었지만 난 후보자가 되지 못했다네.”

“아니 자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문제? 없었지. 법을 만들 때 나도 거리낄 게 없다고 장담했었지. 그런데…, 나도 모르는 장모 재산의 증여세 미납, 아내가 저지른 아들 놈 강남 위장전입, 18년 전 퇴직 후를 생각해서 사 놓은 여주의 밭 500평, 허허, 다 발목을 잡는 것이 되더군. 아마 지금 후보자도 잠을 못 자고 있을지도 몰라. 나와 같은 문제는 없을지는 몰라도 업무능력이 없는 좀 무능하고 리더십도 부족한 친구라 어찌될지, 또 그를 따르던 한 여직원을 매몰차게 내친 일이 있었는데 그녀가 어떤 말을 하고 다닐지….”

전국(戰國, BC475-BC221)시대 진(秦)나라는 원래 작은 나라였으나 후반 효공(孝公)이 상앙(商鞅)의 건의를 받아들여 변법(變法, 제도 및 법제를 고침)을 시행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신법의 제정과 집행의 전권을 상앙에게 주었다. 이른 바 ‘상앙의 변법(變法)’ 이다.

변법이 거국적으로 시행되고 너무나 엄격하게 시행되었으므로 초기에는 반발도 있었지만, 상앙이 신념을 갖고 상벌을 분명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왕의 친족과 귀족이라도 반드시 법을 준수하도록 철저히 집행해 나갔기 때문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상앙이 재상이 되어 10여년, 그 사이에 군주의 일족과 외척들이 그를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백성들 중에서도 가혹하게 처벌을 받은 자들이 상앙에 대해 원망의 소리를 높이는 자가 늘어갔다.

어느 날 학식이 많은 조양(趙良)이 상앙에게 충고하였다.

“인심을 잃은 자는 붕괴하고, 힘을 의지하는 자는 멸망한다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천수를 누리고 싶다면 하사받은 15읍을 바로 반납하고 여러 현자를 찾아내어 대우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진왕이 죽고 난 후 다음 왕이 당신을 살려둔다는 보장이 없을 것입니다(요약).”

친구들과 가족들도 걱정이 되어 권했다.

“이렇게 나가다간 지금의 왕이 죽은 후 왕족들의 보복을 받을 가능성이 크네. 차라리 미리 은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상앙이 고개를 저으며 듣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법을 어기는 왕의 친족들이 있어 아니 되네.”

그러나 5개월 후 갑자기 효공이 병들어 죽었고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이전에 태자의 잘못으로 대신 벌을 받은 태부 건(虔)의 일당이 앙심을 품고 상앙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무고하였다. 상앙에 대하여 유감을 갖고 있던 차에 상소를 본 왕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비흑백도 가리지 않고 바로 상앙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다.

자신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진 것을 미리 안 상앙이 황급히 짐을 꾸려 우선 도성을 벗어났다. 국경인 함곡관(函谷關)까지 도망하였을 때 이미 날이 저물어 밤이 되었으므로 근처의 여관을 찾아 투숙하려고 하였다. 상앙이 누구인지 또 직접 얼굴을 본 적도 없는 객점의 주인이 물었다.

“뉘신가요? 손님의 여행권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상앙이 머뭇거리자 주인이 투숙을 거절하였다.

“손님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고 재워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를 어겼다가는 저도 연대하여 큰 벌을 받습니다. 상앙이 만든 법입니다.”

 그러자 상앙이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아! 뜻밖에도 내가 만든 것이 결국 나를 옭아매는 법이 되다니!”

상앙은 결국 그 여관에서 자지도 못하고 밤을 새워 위(魏)나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위나라에서도 쫓겨나 수하들과 같이 봉지인 상읍(商邑)에서 정(鄭)나라를 쳤다. 그러나 진이 군사를 내어 상군을 죽였다. 진 혜왕이 그의 시체를 거열형에 처하고 멸족을 명하였다.

상앙의 한탄에서 나온 이 성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업자득(自業自得)과 같은 의미이다. 훗날 ‘법을 정하는 사람이 그 법으로 인해 자기가 오히려 피해를 입는다.’ 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사청문회법》의 제정과 그 적용을 환영하고 있지만, 적재적소에 알맞은 장관을 임명하여야 하는 대통령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일부 국민들은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법이 좀 과하고 득보다 폐가 더 많은 것 같다 며 염려한다.

현재 우리 정치 및 관료사회의 이면을 보면, 너무 청렴하면 위에서 이끌어 주지 않아 국장급도 못하고 밀려나고, 너무 일을 잘 하려고 하면 동료의 시기와 아랫사람들의 기피로 평판에서 밀려 후보자 군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어서 벌어지는 호통청문회와 망신청문회로 인해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정확히 검증하는데 실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도 후보로 선택되어지는 것조차 기피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늘 복잡다단하고 예측불가한 일이 수없이 도사리고 있는 이 나라의 정치에 마냥 청렴하고 정직함만을 추구해야만 할까? 행여 능력과 리더십을 가진 출중한 사람을 잃어버리지는 않는지? 이로 인해 나라의 발전을 막고 국정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지 않겠나?

과연 이 법을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인가?

정문섭 박사 프로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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