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1월 18일 목요일 오전 10시 42분
문화 | 기사작성 kjh69

일제때 멋대로 옮겨진 ‘덕수궁 광명문’ 80년만에 제자리로

 

 
함녕전 남쪽으로 연내 이전…’자격루’·’흥천사 종’은 보존처리

덕수궁 광명문.

 

[시사리포트=문원일 기자]  일제가 1938년 덕수궁 남서쪽 구석으로 이전한 광명문(光明門)이 80년 만에 제자리인 함녕전(咸寧殿) 남쪽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덕수궁 광명문의 위치를 복원하는 공사를 올봄에 시작해 연내에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18일 밝혔다.

앞서 문화재청은 2016년 광명문이 이전할 터에서 발굴공사를 진행해 문의 유구(遺構·건물의 자취)를 확인했다.

광명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와 팔작지붕을 갖췄다. 본래 침전인 함녕전의 남쪽 행각 너머에 있었고, 1904년 덕수궁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함녕전은 소실됐으나 광명문은 화마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는 1930년대 석조전 서관을 증축해 이왕가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광명문을 멋대로 현 위치로 옮겼고, 물시계인 ‘자격루'(국보 제229호)와 1462년에 제작된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을 내부에 전시했다.

이로 인해 광명문은 문의 역할을 상실했고, 유물이 놓여 있는 야외 전시관으로 변했다.

흥천사명 동종(왼쪽)과 자격루.

 

광명문 이전 공사가 시작되면 건물 안에 있는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은 보존처리 절차에 돌입한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유물이 오랫동안 외부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보존처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년간 보존처리를 할 예정인데, 워낙 부피가 크고 무거운 유물들이라 보존처리 장소는 조금 더 고민해서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가 옮긴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 역시 광명문처럼 슬픈 역사가 깃든 유물이다.

물의 증가량이나 감소량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자격루는 조선 세종 16년(1434) 경복궁에 제작됐다. 지금 남아 있는 자격루는 중종 31년(1536) 창경궁 보루각에 다시 만든 장치의 일부다.

흥천사명 동종은 조선 왕실이 발원해 15세기 최고의 장인들이 합심해 만든 공예품이다. 흥천사(興天寺)는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명복을 기원하던 사찰로, 본래 중구 정동에 있었다. 동종은 흥천사가 16세기에 화재를 겪었을 때도 보존됐으나, 절이 성북구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방치됐고 광화문에 걸리기도 했다.

보존처리가 끝나면 자격루는 조선 왕실 유물을 관리하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갈 것으로 전망된다. 불교 문화재인 흥천사명 동종의 행선지는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을 추후 어디에 둘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명문의 옛 모습. [문화재청 제공]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는 “광명문은 침전 구역으로 하루빨리 돌아가야 한다”며 “지금 광명문 자리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쪽으로 연결되는 석조 구름다리가 있었는데, 이 다리도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고종과 이준 열사가 오갔던 구름다리는 정동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유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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