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1월 18일 목요일 오전 11시 34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06) 경직된 사고는 위험하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좋아하는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데이트 약속을 했다.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다려도 여자는 오지 않았다. 마침 소나기가 내려 냇물이 밀려왔다. 그는 끝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 결국 교각을 끌어안고 죽고 말았다.

여기서 미생지신(尾生之信)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과 《장자(莊子)》의 ‘도척편(盜跖篇)’에 등장한다. ‘미생의 믿음’을 뜻하는데, 약속을 미련스러울 정도로 굳게 지키거나 지나치게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을 가리킬 때 두루 쓴다.

장자는 미생을 ‘도척편(盜跖篇)’에서 도척의 입을 빌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제사에 쓰려고 잡아놓은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차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 없다. 아무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귀중한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란 참된 삶의 길을 모르는 놈이다.” 미생의 경직된 사고와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뛰어난 운동선수들은 그 동작이 하나 같이 유연하다. 물론 종목에 따라 유연한 부위와 요구되는 정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그들이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걸 보고 있으면 경탄이 절로 나온다. 진한 감동도 느낀다. 유연성, 부드러움 그 자체가 귀한 덕목임을 절감하게 된다.

▲ 전설적인 체조 선수 나디야 코마네치의 체조 경기 모습

▲ 전설적인 체조 선수 나디야 코마네치의 체조 경기 모습 (1976년).

부드러움이나 유연(성)의 반대는 경직(硬直)이다. 몸이 굳어서 뻣뻣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의학에서는 특히 근육이 수축하여 굳어지는 일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 말은 사고방식이나 태도, 분위기 같은 게 부드럽지 못하여 융통성이 없고 지나치게 엄격하게 된 것을 가리킬 때도 널리 쓴다.

경직(성)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경우에도 부정적이다. 그러니까, 이런 경직(성)을 좋아하거나 당초에 추구할 사람도 없으며, 누구든 자신의 사고나 행동이 경직됐다고 평가받으면 대단히 불쾌하게 여길 것이다.

경직(성)은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모르는 사이에 빠지고 마는 함정을 닮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경직된 사고방식이나 행동, 정책, 실천계획 등은 가치지향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부산물처럼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일을 추진하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생각과 행동이 뻣뻣해지고 폐쇄적인 상태로 변모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애초에 목적시하지도 않았는데 목적을 향해 열심히 가다 보니 저절로(?) 생겨난다는 데 경직성의 원천적 위험성이 들어 있다.

소소한 개인적 일상사에서 막중한 국가 정책에 이르기까지, 해법 마련은 항상 문제의 근본 구조와 소재를 명확히 진단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런 세심한 진단에 따른 정교한 해결책 수립이 심모원려(深謀遠慮), 말 그대로 깊이 고민하고 멀리(거시적으로) 고려하는 작업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고가 경직될수록 맨 처음 세운 목표나 구호에 사로잡혀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판단은 조급해진다. 상이한 관점이나 견해에 대해 열린 자세로 경청하기는 고사하고 성급히 편을 가르고, 합당한 비판을 정략적 공격으로 새겨듣는다. 일리 있는 대안 제시나 상식 수준의 문제점 지적조차 괜한 흠집잡기로 받아들인다. 적합한 해결책은 적절한 정책 수단과 타당한 목적 사이에 균형을 잡는 가운데 이루어지는데, 이런 균형 잡기에 실패할수록 외부 비판에 대해 폐쇄적 태도와 신경질적 거부감을 나타낸다. 거꾸로, 이런 행태야말로 경직된 사고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결국 경직된 사고방식은, 그 주인공으로 하여금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렸을 뿐인데 어느 순간 자신을 폐쇄적 독선적 울타리에 가두어 놓게 만드는, 고약한 괴물과 다름없다. 이보다 더 고약한 점이 있다. 일단 이런 경직성의 늪에 빠지면 문제의 핵심을 놓침으로써 문제 해결에 실패함은 물론이고 도리어 문제 자체를 헝클어뜨리고 만다는 것이다.

경직된 사고의 폐해는 결코 만만치 않다. 우리의 사고나 태도가 과연 체조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몸짓처럼 유연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꾸준히 성찰하는 데 소홀하지 말아야겠다. 그것이 개인의 일상사나 실존적 문제에 관한 조언이든 중대한 국가 경제 정책이나 안보 외교 전략이든 간에.

 

고정식배저5


<저작권자Ⓒ 시사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