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1월 25일 목요일 오전 10시 43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18 – 鷄口牛後(계구우후)

닭의 부리는 될지언정

鷄口牛後(계구우후, jī kǒu niú hòu)

닭 계, 입 구, 소 우, 뒤 후

《사기》의 소진전(蘇秦傳)에 나온다. 큰 집단의 꼴찌보다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더 낫다는 것을 닭의 머리와 소의 꼬리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대통령의 일상은 아침에 비서실장 등 몇몇의 참모를 만나 티타임을 갖고 정말 복잡다단하고 골치가 아픈 국정을 보고받고 지시한다. 장관도 차관과 몇몇 실장과, 또 국장도 4-5명의 과장을 모여 놓고 업무를 보고 받고 지시한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중학교 친구 김 ㅁㅅ은 고향 군청에서 지방 9급으로 공무원을 시작했다. 내가 중앙부처 과장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지방 사무관으로 면장이 되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군청에서 계장이나 면장이나 직급은 같다. 사실 도나 군에서 계장으로 있는 것보다는 시골에 면장으로 가는 것이 훨씬 더 낫더라. 도청에서 계장으로 있으면 간부 중의 말단으로 위로는 과장님, 국장님 눈치를 보고, 아래로는 부하직원이 말을 잘 안 들어 골치 아픈 일이 많다. 또 갖은 민원과 궂은일을 다 뒤치다꺼리를 해야 되니 퇴근 시간도 없지. 하지만 면장을 해보니 상관인 군수가 옆에 있지 않으니 좋고, 가끔 군수가 와보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좀 잘 모시고 좀 아부를 하면 잘했다는 칭찬을 받지. 일개 면의 서열 1위의 기관장이니 그저 입만 가지고 다니면서 아랫사람들에게 지시만 내리면 되고, 면내를 돌아다니면 주민들이 이장들이 면장님, 면장님 하면서 받들어 주니 얼마나 좋은지. 군수가 실장으로 승진시켜주겠다 해도 난 안 간다 할 거네.”

중국 전국시대(BC475-BC221) 중기, 낙양에서 태어난 소진, 젊은 시절 스승 귀곡(鬼谷)선생으로부터 배우고 나중에 췌마술(揣摩術)을 익힌 그는 먼저 주(周)나라를 찾았으나 신하들의 박대를 받았다. 진(秦)의 혜왕은 그의 ‘무력합병계책’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거절하였다. 조(趙)나라를 찾았으나 재상 봉양군의 비협조로 왕을 만나지 못하였다.

연(燕)에 이르러 1년여 기간 진의 세력을 막기 위해 나머지 여섯 나라 즉, 한(韓)·위(魏)·조(趙)·연(燕)·제(齊)·초(楚)가 외교적 동맹을 맺어 대항하여야 한다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유세하였다. 마침내 문후의 호응을 받고 거마와 금은을 받고 조나라로 향했다. 봉양군이 죽은 다음인지라 조의 숙후도 소진의 합종책에 대하여 적극 찬동하였다.

소진은 조나라를 떠나 한나라로 향하였다. 당시 한나라는 진나라에 가장 인접해 있었고, 또 6국 중에서 제일 약한 나라였다. 그래서 진나라의 공격에 대한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소진이 선혜왕을 만나 이렇게 유세하였다.

“한이 영토는 비록 작지만 용감한 군사와 좋은 무기를 갖고 있어 일당백의 실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왕께서도 매우 현명하십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며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어 복종하는 것은 국가의 치욕이요 천하의 웃음거리입니다. 만약 대왕께서 진을 섬긴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의양(宜陽)과 성고(成皐)를 요구할 것입니다. 금년에 땅을 떼어 주면 내년에 또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떼어 주면 줄 땅이 없게 되고, 주지 않으면 전에 땅을 주었던 공(功)은 없어지고 화(禍)를 입게 됩니다. 또한 대왕의 땅은 국한되어 있는데 진의 요구는 끝이 없으니 이처럼 국한된 땅을 가지고 무한한 요구를 거스르는 것을 가리켜 원한을 사고 화를 초래(市怨結禍)한다고 말합니다. 속담에 ‘닭의 입(부리)이 될지언정 소의 뒤(항문)는 되지 마라.’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진을 섬긴다면 소의 뒤가 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대왕의 현명함과 한나라의 강대함을 가지고 소의 뒤가 되었다는 오명을 얻으면 신도 수치스럽다고 느끼게 됩니다.”

한왕이 분연히 얼굴빛을 변해 가지고 팔을 걷어붙이더니 두 눈을 부릅뜨며 칼을 꽉 잡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과인은 비록 불초하지만 단연코 진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이오. 지금 그대가 조(趙)왕의 가르침으로 나를 깨우쳤소. 주저 없이 이 나라를 들어 그대의 의견에 따르리다.”

소진이 6국 중에서 가장 약한 한나라에게 ‘계구우후’ 라는 화두를 던 짐으로써 한왕의 자존심을 적당히 건드려 가며 유세를 하여 한나라가 합종에 참여하게 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6국의 군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소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대정치가가 되었다.

이 성어는 오늘날 큰 조직에서 유명무실하게 존재감 없이 지내는 것보다 작은 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게 더 좋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성어의 진정한 의미는 ‘나쁜 환경이지만 중시를 받으며 사는 것이 좋은 환경에서 살더라도 무시를 받는 것보다 낫다.’ 는 것이다. 오늘날 조직사회에서는 ‘큰 집단의 말석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 는 말로 쓰이고 있다.

대학졸업생들과 부모들은 삼성 등과 같은 대기업을 선호한다. 그런데 대기업에서 대리와 과장을 거치는 동안 그 곳에서 못 견디고 뛰쳐나와 중소기업으로 가 더 높은 직함을 갖거나 창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일에서 보수는 적으나 작은 기업에서 선두에 서서 일을 추진하는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또 자기 분수와 적성에 맞춰 자기 마음대로 일하며 성과를 낼 수 있는 1인 사장도 해볼 만한 것이다. 작은 곳에서 두각을 보이며 자유자재로 인생을 즐기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토부에서 서기관으로 퇴직한 친구 S가 이렇게 말했다.

“국장 좀 해 보겠다고 본부에 들어가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고 과도한 아부를 일삼으며 가슴앓이를 했던 것이 후회된다. 지방의 자그마한 관서의 장이 되어 한 일 년이 지나고 나서야 ‘진즉 본부를 포기하고 내려와 있을 걸’ 하고 후회했지.”

정문섭 박사 프로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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