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2월 07일 수요일 오전 9시 41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07) 인간은 편협한 존재다

 

사고나 판단과 관련하여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평가가 있다. ‘열린 사람이다’ ‘공정한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사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등이다. 누군가에게 ‘꽉 막혔다’ ‘편협하다’ ‘주관적이다’라는 평을 듣는다고 생각해보면 너무나 분명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편협하다’는 단어로 대표되는 그런 부정적 평가를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새삼스러울 만큼 당연하다.

이런 편협성은 일부 ‘못된’ 사람들만 지닌 것일까? 인간 마음의 작동 체계를 탐구하는 심리학에 따르면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우선 인간에게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게 있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이미 갖고 있는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만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정보나 지식에 관해 폐쇄적인 사람을 흔히 ‘고집불통’이라거나 ‘고집이 세다’고 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이런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본래 고집쟁이의 성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또 하나, 인간의 편협성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행위자-관찰자 편향(actor-observer bias)’이 있다. 어떠한 행동에 대해 자기가 한 경우라면 그 이유를 주로 외부 환경에서 찾지만, 타인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 이유를 타인의 내면에서 찾는 경향을 말한다. 한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많이 오르내렸던 ‘내로남불’이 좋은 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여긴다. 한마디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리차드 니스벳

▲리차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 1941~). 관찰자-행위자 편향 이론을 주창한 심리학자.

어떠한 행동을 나나 내 편이 하면 옳은 것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남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옳지 않은 행동이다. 누군가가 나 자신이나 내 편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나 자신(이나 내 편)이 밖으로 드러내는 행동 자체보다 나 자신(이나 내 편)의 당초의 생각이나 의도를 고려해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반면에, 타인이나 다른 편에 대해 평가할 때는 그(들)의 드러난 행동이 곧 그(들)의 내면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므로 행동 자체에 의해 판단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찰자-행위자 편향’ 심리가 작동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내 자식이 어른의 말에 대꾸하는 건 원래 소신이 분명한 아이이기 때문이고 남의 자식이 그러는 건 원래 버릇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각하면 차가 막혀서, 또는 비가 와서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합리화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지각하면 ‘원래 게으른 사람’이어서 그런 거라고 서슴없이 판단한다. 내가 행위자인가 관찰자인가에 따라 일관성 없는 기준을 버젓이 들이대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속성이다.

이런 ‘확증 편향’이나 ‘관찰자-행위자 편향’이 몇몇 사람들에게만 있는, 예를 들면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에게만 있는 특성이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성향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엄연히 존재한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 즉 인간의 한계라는 말이다. 씁쓸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별로 좋지 않은 이런 성향들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고집 세고 폐쇄적이며, 툭하면 이중 잣대를 동원하여 자의적으로 판단과 평가를 내리는 편협한 존재이다. 이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 인간은 편협성과 폐쇄성의 어두운 함정에 빠지고 만다. 우리 사회를 진정한 공정성과 개방성이 지배하는 인간적 삶의 터전으로 만들려면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남들은 원래 편협한 사람이어서 편협한 행태를 보이지만 나나 내 편은 원래 그런 편협성과는 무관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 자체가 오만한 착각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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