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2월 21일 수요일 오전 11시 10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19 – 前倨後恭(전거후공)

왜 앞뒤가 다르시오?

前倨後恭(전거후공, qián jù hòu gōng)

앞 전, 오만할 거, 뒤 후, 공손할 공

사마천이 쓴 《사기》 소진전에 나온다. 처음에는 거만하게 나오다가 나중에는 공손하게 되다

소진(蘇秦)은 전국(戰國, BC475-BC221)시대 유명한 대정치가였다. 그는 장의(張儀)와 함께 귀곡(鬼谷)선생의 제자가 되어 종횡가(縱橫家, 전국시대 합종과 연횡을 주장하던 세객)의 학설을 배웠다.

소진이 귀곡선생으로부터 배움을 마치고 하산하여 몇 년 동안 밖으로 나가 유세를 벌였으나 왕들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해 매우 곤궁한 처지가 되어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형제자매와 처첩들이 조소하며 말했다.

“주나라의 전지를 경작하거나 상공업에 힘을 써서 이익을 좇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거늘 당신은 본업을 버리고 혀끝의 이론에나 힘을 쓰고 있으니, 그렇게 하고 곤궁하게 지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가족들로부터 창피를 당하여 너무 부끄럽고 마음의 상처가 커진 소진은 문을 닫고 집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였다. 온갖 책을 모두 읽어 마침내 합종연횡(合縱連橫)의 도리와 이치를 도출해 내었다. 이리하여 그는 다시 집을 나와 각 나라 왕에게 그의 학설을 적극 설파하여 중용을 받고자 하였다.

처음에는 그의 학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여전히 세치 혀를 굴려 마침내 연(燕)나라와 趙(조)나라를 설득하였다. 이어서 제(齊), 초(楚), 위(魏), 한(韓)이 연합하여 진(秦) 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론을 피력하였는데, 각 나라 왕들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소진이 6국의 합종을 성사시켜 6국 재상의 관인(官印)을 지니고 금의환향했을 때 고향의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환영하였다. 소진이 집에 당도했을 때 이전에 자기를 질시하고 비웃었던 그의 형수, 처첩과 형제자매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고개를 숙이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특히 그를 많이 구박했던 형수는 아예 두 손으로 공손히 음식을 갖고 와 모시는 것이었다. 소진이 그러한 형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형수님은 종전에는 무척이나 오만하고 거만하셨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처럼 겸손하게 몸을 낮추시는데 왜 그러세요?”

형수는 매우 창피하여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다급히 무릎을 꿇고 연방 머리를 땅에 찧으며 죄를 청하여 말했다.

“지금은 지위가 높아지고 재물을 많이 가졌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듣고 탄식하여 말하였다.

“같은 사람이지만 빈천할 때에는 무시하고 경시하게 되지만 부귀하게 되니 가족친척들도 두려워하고 모시려 하는구나. 하물며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겠는가? 만약 내가 낙양성에 비옥한 밭이 두 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관인을 찰 수 있었겠는가? 별 볼일 없을 때 받은 구박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상대편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훗날 사람들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별 볼일이 없는 위치에 있다고 판단되면 거만한 태도로 대하고, 그 사람이 돈이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공손하게 신명을 다하여 모시며 온갖 아부를 떠는 경우를 풍자하여 사용하였다. 사람팔자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업신여기지 말고 겸손해야함을 훈계하는 성어라 하겠다.

한편, 요사이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투표가 임박할 때는 무한하게 공손하였으나 선거가 끝나면 바로 거만해지는 현상, 즉 ‘전공후거(前恭後倨)’한 경우를 자주 보게 되어 씁쓸한 마음이 든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우리 지역을 잘 살게 해줄 일꾼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우선 그 자들이 공천을 받기 위해 윗선에 얼마나 무한하게 공손하였는지를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선거과정과 당선된 뒤에 나타난 그에게서 어떠한 ‘전공후거’한 모습이 보였는지도 좀 가려 봐주었으면 좋겠다.

정문섭 박사 프로필2


<저작권자Ⓒ 시사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