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3월 01일 목요일 오전 11시 11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08) 사람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

 

이스라엘에는 마사다 유적지가 있다. 이스라엘 사해(死海) 해안에 있는데, 배 모양으로 생긴 구릉을 이용한 자연 요새지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은 물론이고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군의 전쟁과 관련된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 마사다 유적은 메마른 황야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바위 산 위에서 마치 사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장엄하고 아름답다는 경탄을 자아낸다.

이 요새의 역사적 의미를 대충이라도 읽으려면 ‘마사다 항전’을 알아야 한다.

▲ 마사다(Masada) 유적지

▲ 마사다(Masada) 유적지

AD 70년대 초에 유대인들과 로마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헤롯왕은 이 전쟁이 일어나기 약 100년 전에 반란에 대비하여 마사다를 요새화한다). AD 66년에 마사다 요새에서 ‘열심당’으로 불리는 유대인 저항 집단을 중심으로 로마군의 유대 영토 주둔에 반발하는 무력투쟁이 벌어진다. 열심당원들은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 마사다 요새로 피난하여 이 요새를 저항의 근거지로 삼는데, 이때부터 이 요새는 유대인과 로마의 전쟁터로 변한다.
 
유대 저항군이 마사다 요새를 근거지로 하여 로마 정착촌을 급습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 피해가 커지자, 로마 총독은 로마 보병군단을 이끌고 마사다 요새 주변에 8개의 진지를 구축한 뒤 공격을 시작한다. 로마군은 방호벽을 파괴하는데 여러 번 실패한 끝에 요새를 포위하고 서쪽 측벽에 공격용 누벽(壘壁)을 세우는 데 성공한다(AD 73년). 당시 마사다 요새 안에는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가 이끄는,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960명의 열심당원들이 남아 필사적으로 항전하고 있었다.

약 3개월간의 공략 끝에 마사다 요새의 성벽이 무너진다.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지도자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는 적의 노예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자결하자고 호소한다. 이에 동의한 저항군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자기 가족을 죽이고, 다시 모여 열 사람씩 조를 짜서 제비뽑기를 통해 한 사람이 아홉 명을 죽이는 방식으로 죽음의 의식을 반복해서 치른다. 마지막 사람은 전원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성에 불을 지른 후 자결한다. 마사다에 입성한 로마군이 목격한 것은 936구의 시신뿐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5명의 아이와 함께 지하 동굴에 숨어있던 여자 2명뿐이었다.

결국 이 전쟁은 로마군의 승리로 끝나지만 유대인들이 로마군에 대항하여,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항전한 것이었기에,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의 긍지와 일체감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회자된다. 마사다 유적은 유대인의 불굴의 저항정신을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으로서 이스라엘의 민족적 자긍심과 단결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이 엄청난 사건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후 약 1천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망하고, 이후 약 2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 시대가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시대와 지역은 다르지만, 마사다 항전은 우리의 비극적 역사인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떠올린다. 특히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남한산성 항전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사다 항전이 이스라엘 민족의 처절하고 장렬한 비극적 사건이라면, 남한산성 항전은 한국 민족의 처참하고 비굴한 비극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마사다 항전 이후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도처에서 2천년 동안 온갖 굴욕과 무자비한 희생을 강요받았고 심지어 멸절(滅絶)의 위기마저 겼었다. 우리의 경우, 숱한 세계사적 격랑에 이리저리 차이고 온갖 굴욕을 감내하면서도(국권을 완전히 상실한 암울한 시기도 있었다) 한 민족으로서의 생존과 명맥을 유지하고 발전해왔다. 

숭고한 목적을 위해 단 하나뿐인 생명을 바치는 일은 정녕 고귀한 행동이다. 목숨을 거는 행동은 말이 쉽지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목숨을 내놓고, 죽을 각오로 이룬 일에 관해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다른 대안도 고려했어야 했다’라는 등 말하는 건 안이함을 넘어 경박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일시적일지언정 굴욕을 당하느니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과연 더 가치 있는 태도일까?”
“사람의 생명(목숨) 보존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귀중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은 것일까?”
“마사다 요새에서 항전하다 자결한 이스라엘 조상들은 청나라에 항복하고 온갖 굴욕을 감수한 우리 선조들보다 더 훌륭한가?”    
금방 명쾌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볼수록 쉽사리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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