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3월 07일 수요일 오후 12시 45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20 – 尾生之信(미생지신)

 

꼭 지켜야 하나요?

尾生之信(미생지신, wěi shēng zhī xìn)

꼬리 미, 날 생, 갈지, 믿을 신

사마천의 《사기》 소진열전에 나온다. 신의가 두터운 것을 가리키거나,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만 유학 시절, 지도를 해주신 Su교수님은 불행히도 50대 중반에 상처(喪妻)하셨다. 주위에서 ‘신체도 건강하고 사회적 지위도 높으니 여생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며 재혼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외동딸을 결혼시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하고 독거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죽은 아내와 ‘절대 재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므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그가 88세가 다 되었다. 필자가 작년 여름 대만에 가 친구들 몇몇이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술이 좀 들자 그가 이윽고 한숨을 쉬며 한마디 하셨다.

“자네들이 혹시 나중에 상처하게 되면 제발 2-3년 안에 재혼하게나, 나같이 쓸쓸히 추레하게 미련스럽게 살지 말고. 지난 30여 년간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켜 수절하여 왔는데 이제 생각하니 다 부질없는 일인 것을…. 좀 더 빨리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짝을 찾아 여생을 즐기며 살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결국 미생(尾生)같이 바보처럼 살다 죽게 되었네.

“그 약속 말고도 다른 약속 뭐 없었나요?”

“글쎄 약속 이라기보다는 뭐 …, 아내가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지. ‘나 죽은 뒤 다른 여자와 자면 내가 귀신이 되어 그 가운데에 누워있겠다.’고 했지. 어떤 여자를 만나면 늘 이 말이 떠올라서 허허.”

소진이 마침내 진(秦)을 제외한 연(燕) 등 6국의 합종을 이뤄내 진의 군사가 중원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후 진이 제와 위를 꾀어 조를 치자 조왕이 소진을 꾸짖었다. 소진이 두려워 연으로 가서 제에 보복할 것을 청했다. 하지만 소진이 조를 떠나자 합종의 약속이 깨지고 말았다.

진 혜왕이 딸을 연의 태자비로 주었다. 연 문후가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 제가 연의 국상을 틈타 연을 쳐 10성(城)을 빼앗았다. 연왕이 소진을 불러 책망하므로 소진이 제왕을 찾아 세치 혀를 놀려 마침내 설득하여 연의 10성을 돌려주게 하였다. 이때 한 사람이 소진을 이렇게 비방하였다.

“소진은 이곳저곳에 나라를 팔고 마음에 표리가 있는 자이다. 머지않아 난을 일으킬 것이다.”

소진이 죄인으로 몰릴 것이 두려워 다시 연으로 돌아 왔다. 하지만 연왕이 그에게 원래의 벼슬을 주지 않았다. 소진이 왕을 만났다.

“제가 제를 설득하여 10성을 돌려 드렸는데 왕께서 저를 믿지 않는 것은 필시 누군가 중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실상 증삼(曾參) 같은 효도도 없고 백이(伯夷) 같은 청렴도 없고 미생 같은 신의도 없습니다. 가령 대왕께서 증삼, 백이와 미생 같은 사람을 얻어 왕을 섬기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효도가 증삼 같으면 하룻밤도 부모를 떠나 밖에서 자지 않을 텐데, 왕께서 어떻게 그를 걸어서 천 리 길을 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백이는 무왕의 신하가 되는 것이 싫어 수양산에서 굶어 죽고 말았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천 리 길 제나라로 달려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의가 미생 같다면 미생은 어떤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를 약속했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었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안은 채 죽었는데, 이런 사람에게 천 리를 달려가 제나라의 강한 군사를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불효하고, 청렴하지 못하고, 신의가 없다고 중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는 부모를 버리고 여기까지 와서 약한 연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달래어 빼앗긴 성을 다시 바치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침내 연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진에게 다시 관직을 주고 후대하였다.

이 미생의 이야기는 소진열전 뿐 아니라 《장자(莊子)》, 《전국책(戰國策)》 등 여러 전적(典籍)에도 나온다.

미생은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그 다리 아래에서 기다렸으나 여자가 오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났다. 사람들이 위험하다며 올라오라고 하였지만, 그는 약속을 지켜야한다며 다리 기둥을 안고 버티다가 마침내 익사하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은 굳게 지킨다는 의미와 어리석고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없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그 의미가 상반된다.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대통령이 되려는 자들이 국민들에게 수많은 공약을 내건다. 사실 공약은 당선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 실천과는 별개일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공약과 관련되는 이해관계당사자들은 꼭 지켜야 한다고 우기고, 대통령은 자기의 결기를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 붙인다. 게다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오히려 아부하며 실행에 나서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사실상 재정부족 등 다 실천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어 공약을 실행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또 그것을 실행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갖가지 문제들이 속출하고 더 큰 문제로 바뀌고 있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4대강 사업’의 강행으로 다른 많은 국책사업들이 모두 외면되어지고, 사업의 결과 환경오염 등 부작용만 커졌으나 혜택을 입어 배를 불리게 된 자들은 토목업체들뿐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보면, 아직 선진국이 아님에도 사(社)보다는 노(勞)를 너무 중시한 공약을 꼭 지키려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경쟁력이 낮아지고 영세한 소상공인만 죽어나고 일자리가 줄어들어 오히려 실업이 늘어나는 부작용과 후유증이 있음에도 말이다. 모두가 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바보 같은 신의를 좇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록 약속된 것이라도 앞을 내다보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여 필요시에는 완급을 조절하거나 수정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또 후퇴하거나 취소도 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국민들도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모습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국민의 51%이상이 반대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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