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3월 15일 목요일 오전 11시 29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21 – 杜門不出(두문불출)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니

杜門不出(두문불출, dù mén bù chū)

막을 두, 문 문, 아니 불, 날 출

문을 닫아걸고 집안에 틀어박혀 바깥에 나오지 않음을 뜻한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출입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춘추시대 좌구명(左丘明)의 《국어(國語)》,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상군열전(商君列傳),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 등에서 이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상앙이 숨어사는 선비 조양을 찾아 교제를 청하자 조양이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불초하므로 그대의 뜻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대가 변법을 강하게 시행하여 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사고 있으며 도리에 어긋나고 백성을 교도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대로 가다가는 상군이 하는 일로 인해 천수(天壽)를 누릴 수 없습니다. 태자가 법을 지키지 않았다하여 대신 벌을 받아 코를 베인 공자 건(虔)은 부끄러워 문을 닫고 밖에 나오지 않기를 8년이 되었습니다. -중략- 왕이 죽으면 태자가 왕이 될 것이고 그 왕이 당신을 그대를 잡는 것은 한쪽 발을 들고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빠른 시간일 것입니다.

조나라의 변방을 지키던 이목(李牧)장군의 일화에도 나온다.

흉노가 쳐들어오면 이목 장군은 성안으로 물러나 싸우지 않았다. 흉노가 겁쟁이라 놀리고 병사들도 비겁하다고 여겼다. 왕이 화가 나 이목을 불러 들이고 다른 장군을 보냈다. 그러나 이로부터 흉노가 오면 나가 싸움을 벌였는데 늘 패하였다. 일년 남짓한 동안에 싸울 때마다 잃는 것이 많았고 변방의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도 양을 기를 수도 없었다. 왕이 할 수 없이 이목을 다시 불렀으나 병을 핑계 대며 완강히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왕이 강제로 나오게 하므로 이목을 한 조건을 걸었다.

“저는 제가 했던 앞서의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명에 따르겠습니다.”

사마상여와 탁문군(卓文君)이 눈이 맞아 혼인을 하려하자, 탁문군의 아버지 탁왕손은 사마가 부족한 자라며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결국 둘이 타지로 도망하여 선술집을 열고 술장사를 하였다. 탁문군이 큰 화로에 술을 데워 술을 팔고, 상여는 머슴들과 허드렛일을 하며 술잔을 닦았다. 이 소문을 들은 탁왕손이 부끄러워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도 두문불출의 일화가 나온다.

고려 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후 정권을 잡고 왕이 되자 고려의 신하들이 조정을 떠났다. 그 중 개성의 두문동(杜門洞)에 72명의 신하들이 숨어들어 아무리 설득해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이성계가 두문동에 불을 내어 신하들을 나오게 하려 했지만, 모두 나오지 않아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중국에서 전해진 여러 일화에 이어 조선 초 두문동 사건이 더해져 사람들은 어느 곳에 한번 들어갔다가 영영 소식이 없는 경우에 이 성어로 말을 하게 되었다.

우리 정치사회를 보면, 낙천이나 낙선한 사람들이 잠시 산촌 또는 외국에 나가거나, 유명인사가 며칠을 안 나타나고 침묵을 지킬 경우 ‘두문불출’하였다고 말한다. 실상 이 성어는 본인이 부끄러워서 문을 닫거나 또 지조를 지키려는 충심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오지 않는 등 적어도 몇 년 아니 영원히 표시도 안 내고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인연을 끊고 산골에 은거한다고 요란을 떨어놓고 실상은 TV와 라디오를 켜 놓고 신문과 핸드폰을 쳐다보고 또 찾아오는 사람을 반가이 맞는다. 이게 무슨 두문불출이겠는가? ‘일시적이고 비겁한 도피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사람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정문섭 박사 프로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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