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3월 21일 수요일 오전 10시 48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09) 혹시 미친 게 아닐까

 

잔다르크(Jeanne d’Arc, 1412~1431)는 약 6백년 전 프랑스의 애국 소녀다. 백년전쟁 당시에 16세 어린 나이로 출전하여 영국군의 포위를 뚫고 진두에 서서 오를레앙 성을 탈환함으로써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다. 그리고 그 후 각지에서 영국군과 싸워 이긴다. 그러나 1430년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 군사에게 사로잡혀 영국군에게 넘겨지고 만다. 이듬해 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이단(異端) 선고를 받고 루앙에서 화형당해 생을 마감한다. 나중에 샤를 7세는 이전의 유죄판결을 파기하여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켰고, 가톨릭교회는 그로부터 5백년 가까이 흐른 1920년에 그녀를 성녀(聖女)로 시성(諡聖)하였다.

이처럼 잔다르크는 ‘애국 소녀’ ‘성녀’로 불리지만 심각한 정신 질환에 시달렸다는 게 오늘날 정신의학자들의 결론이다. 그녀가 게슈빈트 증후군(Geschwind syndrome, 측두엽 간질)에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잔다르크는 이 질병 환자들의 특징 몇 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한다. 즉, ‘늘 감정이 고양돼 있고 행복감에 차 있다/ 항상 강한 사명감이나 지나치게 깊은 신앙심으로 가득 차 있다/ 늘 초조해하고 공격적 성향을 띨 때가 많다/ 느닷없이 의기소침해지고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안절부절 못하기도 한다/ 유머 감각이 결여돼 있고 성적인 문제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등 그녀의 행태는 전형적인 게슈빈트 증후군 환자의 것이라는 말이다.

거친 일상적 표현을 쓴다면 잔다르크는 ‘미친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미친 방향이 그리 고약하지 않고 좋은 쪽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불멸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인물들도 그 정신이 비정상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쳇말로 미쳤거나 돌아버리거나 제 정신 아닌 경우가 많았다. 끼친 업적이 워낙 탁월하다 보니 어두운 면모가 가려지거나 적당히 미화됐을 뿐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샤를 7세 대관식에서의 잔다르크》 (1854년 작품)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샤를 7세 대관식에서의 잔다르크》 (1854년 작품)

최근 ‘미투(#Me Too) 물결’에 의해 우리나라 유명 예술인들과 지도자급 인사들의 영혼의 민낯이 드러났다―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그들의 행태는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아니, 일반 시민에게는 충격을 넘어 허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인간은, 본래 피와 살, 뼈로 이루어진 이상,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흔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말하지만, 그건 실현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 하지만 요즘 드러나는 이런저런 행태는 아무리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대도 수긍하기 어렵다.

흔히 ‘갑질’로 표현되는 이런 가증스런 추태가 주로 예술가들에 의해, 그것도 상습적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들이야말로 사람의 감성과 정신에 대해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탕과 지성을 지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각한 정신병적 상태다.

건강하다는 건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무런 탈이 없고 튼튼한 상태를 말한다. ‘정상(正常)’이란 말도 쓰는데, 간단히 말해 ‘제대로인 상태’를 이른다. 건강이나 정상(상태)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외형상 멀쩡해 보이는데도 정밀 검사를 해보면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런 자각증세도 없었는데 치유 불가능한 병에 걸려 있는 수도 있다. 그러니 신체 건강을 유지하려면 꼬박꼬박 정기 검사에 응해야 한다. 건강을 해치는 나쁜 습관을 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정신 건강도 신체 건강과 다르지 않다. 아니, 신체적인 면보다 더욱 조심하고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육체와 비교하면, 정신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큰 상처가 생기거나 웬만한 문제가 발생해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초상집에서 희죽거리거나 춤추는 식의 행동만 하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여긴다.

남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고 공감하고 배려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이 된다. 자신의 정신상태, 보다 포괄적으로 말하면 자기 영혼의 현주소를 냉철히 진지하게 살펴보는 데 게으르다 보면, 서서히 한 마리의 야수로 변해버릴 수 있다. 자기 자신과 타인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기는커녕 오로지 본능의 명령에 따라 이리저리 날뛰는 그런 짐승으로.

나나 우리의 정신이 정말 건전한지, 정말 인간다운 이성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반성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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