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4월 05일 목요일 오전 10시 03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10) 문제의 뿌리는 주먹구구식 사고다

  

삶은 다양한 문제로 엮어진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해결이 어려운 문제 또한 있다. 문제를 올바로 풀면 성장과 발전의 계기가 되지만 부적절하게 대처하면 더욱 큰 문제로 꼬여버리고 심지어 해결의 주체가 망가져버리기도 한다.

문제에 대한 인간의 접근 방식을 논할 때 전문가들은 흔히 ‘휴리스틱(heuristics)’ 개념을 말한다. 시간이나 정보가 불충분하여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거나, 굳이 엄격한 체계적 합리적 판단이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신속하게 ‘어림짐작’이란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휴리스틱은, 일상적인 표현을 쓴다면 ‘주먹구구’ 정도가 될 듯하다. 다소 거칠게 단순화한다면, 대체로 사람들은 어떠한 사태에 처하면 상식이나 통념, 고정관념을 동원하여 즉흥적으로 판단, 대응한다는 것이다. 신경을 곤두세워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대충대충 때려 맞춰 생각하고 결정한다.
   
휴리스틱을 동원하는 게 꼭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음식점에서 주문할 걸 고를 때, 일상용품을 사면서 어느 회사 제품을 살지 결정할 때, 또는 우연히 만난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만일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종합하여 판단하려 한다면, 우선 정보를 그처럼 모으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인지적인 면에서도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 심각한 의사결정으로 둔갑하고 말 것이다. 결국, 사소한 일상적 문제는 휴리스틱으로, 어림짐작,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휴리스틱은 큰 공 들이지 않고도 대체로 만족할 만한 정답을 재빨리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 )

▲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 ). 인간은 흔히 추측하듯이 합리적으로 사고하거나 의사결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문제는 휴리스틱을 동원해도 무방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냉철히 구분하지 않는 데 있다. 그 구조와 예상 결과를 다각도로 따져 봐야 하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심사숙고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의 양극화 개선, 청년 실업 대책, 북한의 비핵화, 헌법 개정과 같은 국가적 의제나 국가 백년대계가 있다. 다차원적이고 구조적으로 복잡하므로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야 해결의 실마리나마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고급 정보와 전문 지식 그리고 유사한 역사적 경험이 광범위하게 동원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문제에 어림짐작, 주먹구구식으로 대응한다면 어불성설이 된다. 열린사회, 명실상부한 선진국일수록 문제 해결에 적합한 지혜와 전문적 식견이 자연스럽게 결집되는 정교한 시스템과 유연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분위기로 시선을 돌려 보자. 요즈음 중차대한 국가적 문제에 조악한 주먹구구식 처방이 급조, 제시되는 일이 너무도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이런 행태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 제시가 주먹구구식 속단에 의해 배척당하는 일 역시 수시로  일어난다. 흑백논리나 성급한 이분법적 이념의 잣대, 편 가르기 또한 밥 먹듯이 동원된다는 말이다.
 
논증에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fallacy of straw-man)’라는 게 있다. 비판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주장을 공박하기 편하게 왜곡시켜 놓고서 비판할 때 범해지는 오류이다. 예컨대, 어느 대학 총장이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할 경우, “저 주장은 대학이 무슨 부정을 저질러도 정부가 방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받아칠 때 저지르는 오류이다. 허수아비는 아무리 두들겨 패도 방어하지 못한다는 데서, 상대방의 충분히 일리 있는 주장을 마치 허수아비처럼 만들어(왜곡시켜) 놓았다는 데서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잘못이다.

많은 문제를 주먹구구식으로 사고하는 것, 즉 편 가르기, 흑백논리, 고정관념, 거친 단순화를 섣불리 동원하는 것은 위험하다. 사실 확인이나 해법의 모색과 멂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떠한 주장이 지닐 수 있는 나름의 가치, 이른바 ‘일리(一理)’를 건지는 일조차 원천 봉쇄당함으로써 큰 사회적 손실도 초래된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여러 갈등과 문제는 그 뿌리가 주먹구구식 접근 방식에 닿아 있는 경우가 많음을 확인하게 된다. 씁쓸하고 걱정스러운 결론이다. 참으로, 우리 모두 거듭 성찰하고 새삼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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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원철말하길

    멂음 멀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