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5월 04일 금요일 오전 9시 33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12) 냉철한 태도가 절실하다

 

인간을 다른 여러 종과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말하든 학문적으로 논하든 간에 대체로 ‘이성(reason, 理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성은, 국어사전에도,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본질적 특성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성이 약해지거나 마비되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도 내놓아야 한다는 말도 성립한다.

이성은 어떠한 사물이나 사태를 제대로 판단하고 참과 거짓,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美醜)을 식별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인간다운 삶은 곧 이성을 갈고 닦으며 이성적으로 사고, 행동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성적 태도의 첫째 요소는 ‘합리적 의심’이다.

의심을 품는 것, 또는 믿지 않는 것이 항상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만일 의심이나 불신을 미덕시하고 실천한다면 그런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는 하루도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울 것이다. 작게는 가족 구성원 간에, 그리고 크게는 통치자와 국민 사이 등등 무한히 다양한 관계에서 신뢰가 있어야 사회가 성립, 지탱된다.

그러나 이런 이치를 무조건 확대하여 모든 경우 아무런 의심도 갖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된다. 요즘 ‘합리적 의심(reasonable suspicion)’이란 용어가 가끔 쓰이는 걸 본다. 원래 이 말은 미국 형사소송법상의 한 기준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막연한 느낌이나 모호한 의심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에 기초한 의심을 말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권총을 들고 건물에서 급히 뛰어 나오고 직전에 총성과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면 총을 든 사람이 범인이 아닐까 의심해보는 것이다.

프란시스코 고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생겨난다

프란시스코 고야,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생겨난다>, 1797년 작품.

일상생활에서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필요할 경우 합리적 의심을 품어보는 태도를 말한다. 약장사가 어떤 약품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외치면서 팔 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전혀 이성적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사기꾼이 아닐까 하고 의심해보는  게 합리적 태도다. 섬세하고 복잡한 경제학 이론의 핵심은 세상에 공짜(점심)는 없다는 명제로 요약된다고 한다. 모든 효용에 대해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성적 태도의 둘째 요소는 객관적 자세를 지니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타인이나 사물, 상황을 편향적이고 고착된 시각으로 채색하여 관찰하면서도 마치 그게 객관적 사실인 양 간주하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사실과 실제에 기초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희망하는 대로 사고하고 판단한다. 객관적 인식과는 턱없이 먼 수준이다. 결국, 객관적으로 알기 위한 의식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사실과 동떨어지게 파악하게 되므로 사뭇 조심해야 한다.   

이성적 태도의 마지막 요소는 경험과 실질(practicality)을 중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A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예측하는 경우를 추측해 보자. 순전한 논리적 가능성으로 말하면, A가 과거에 백 번 속였더라도 미래의 백한 번째에는 속이지 않을 수 있고, 과거에 백 번 속이지 않았더라도 미래의 백한 번째에는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논리적 가능성만으로 해보는 소리다. 실제 우리가 미래와 관련하여 예측, 판단할 때 과거 백 번의 경험 이상으로 신뢰할 만한 근거가 어디에 있겠는가. 

며칠 전에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하여 넉넉잡아 오는 6월 중순까지는 우리나라 역사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는 드라마의 윤곽이 잡힌다. 현 시점은 42킬로미터가 넘는 마라톤에 비유하면 출발선에서 겨우 2백 미터쯤 달린 셈이다.   

이 회담은 엄청난 중대성을 지니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 역사에 미칠 후과나 영향력 역시 막강할 것이다. 국내 모든 언론이 연일 이 주제는 물론이고 관련된 사소한 삽화거리조차 활발하게 보도, 논의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가는 곳마다 이 회담과 관련하여 열띤 토론과 갖가지 추측, 기대에 찬 전망이 마치 파도를 이루는 듯하다.
 
그런데 대체로 분위기가 지나치게 들떠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달릴 거리와 시간이 길고 노면 또한 험난한 마라톤의 출발점을 갓 지났을 뿐인데, 마치 ‘고지가 바로 저기 보인다’는 식의 성급함이 느껴진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적 태도를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보다 냉철해져야 한다.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차분한 자세로 이 역사의 큰 흐름을 예의(銳意) 주시해야 할 것이다.

잠시도 합리적 의심의 끈을 놓치지 말자. 이성적인 자세가 부지불식간에 느슨해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자. 이전의 경험이 착실히 반영되고 있는지, 실질적 성과 달성에 소홀함이 없는지도 세심히 살펴보자. 이 세 측면을 국민 모두가, 특히 대통령과 외교 담당자들이 성찰하고 견지해야 한다. ‘냄비 근성’에 빠져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해야 한다.    

소박하면서도 울림이 큰 속담 두 편으로 이 글을 마친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라.”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

고정식배저5


<저작권자Ⓒ 시사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