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5월 18일 금요일 오전 10시 44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13)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중국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은 둘레가 700리나 되는 산이다. 두 산 사이에 있는 북산(北山)에 90세 가까운 우공(愚公)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이 두 산에 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심한 불편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불편을 덜려고 자식들과 의논하여 산을 옮기기로 작정했다. 흙을 발해만(渤海灣)까지 운반하는 데 한 번 왕복에만 1년이 걸렸다. 이를 본 친구가 웃으며 만류했다. 그러자 우공이 정색하고 말했다. “나는 늙었지만 내겐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대가 끝없이 이어지겠지. 하지만 산이야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나. 그런즉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고 말거야!”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이 단어는 긍정적 자세를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된다. 산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인들 해내지 못하겠느냐는 그런 담대함과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긍정적으로 사고하라는 요구는 대충 다음과 같은 주장들로 정리된다.

-어느 한 사람에게 가능한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여겨야 한다. -사람의 인성, 능력에 대해 판단할 때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을 봐야 한다. -과감히 시도해야 성공이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큰일을 벌일 때는 불확실, 불안정한 요소보다 확실한 안정적 요소에 착안해야 한다. -불운보다 행운이 따를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태행산(太行山)

▲태행산(太行山) (출처: 《위키피디아》)

얼핏 보면 이런 긍정적 사고, 태도의 세부 목록은 별로 나무랄 데 없는 것 같다. 아니, 누구든지 명심해야 할 일종의 행동강령으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긍정적 사고는 진정 권장할 만한 것일까? 우선 ‘우공이산’의 주인공인 우공이 난관에 대응하는 모습을 한번 꼼꼼히 따져 보자. 우공의 담대하고 웅대한(?) 꿈은 자자손손 순전히 인력을 동원하여 삼태기로 흙을 퍼 날라서 몇 백, 몇 천 년이 걸리든 산을 평평하게 만들고 말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사고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칭찬할 수 있을까? 산을 평평하게 만들지언정 산 사이를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는 우공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그가 마련한 대책과 실천은 멍청하기 짝이 없다. 그의 자손들은 평생 산을 평지로 만든답시고 흙이나 퍼 나르다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고안해낸 문제 해결 방법이 어리석기 그지없다. 합리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공의 비장한 결단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는 미국 링컨 대통령이 “내게 나무하라고 6시간을 준다면 그 중 4시간을 좋은 도끼를 고르는 데 쓰겠다.”고 한 말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을 평가, 판단할 때는 긍정적 측면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부정적 측면만 보고 성급히 판단하면 그 사람의 참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게 뻔하다. 그러나 긍정적 측면만 봐서는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부정적 요소를 그냥 덮어버림은 안일, 무책임과 다르지 않다.

큰일(개인적이든 국가적이든)을 계획, 추진할 때는 확실한 사항과 안정적인 요소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불확실한 면, 불안정한 요소에만 신경 쓰다가는 아무 일도 못하니까. 하지만, 분명한 불확실성이나 위험 요인을 짐짓 외면함은 엄청난 화근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어떤 일이든지 술술 잘 풀리기를, 불운보다 행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부정적 요소를 애써 외면하면서 잘 되기만을 바라지 말고 심사숙고하여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이렇게 보면, ‘긍정적 사고’는 세심하게 따져봐야 할 점이 많음을 깨닫는다. 긍정적 사고가, 근거 없는 낙관, 턱없는 무모함, 무사안일주의와 동의어처럼 쓰이는 일이 숱하게 발견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정부 조직이든 간에, 막연한 행운에만 기대면서 여러 잠재적 위험 요소에 대비하지 않고, 일의 진행이나 사태의 변화와 관련된 요인들은 검토조차 해보지 않는 행태가 빈번히 목격된다.

엄연히 존재하는 부정적 요소들을 일부러 외면함은 바람직한 사고, 진정한 의미에서 긍정적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비합리적인 사고다. ‘합리적(rational)’이란 어떠한 문제나 사물에 대해서든지 이치에 합당하게 파악하고 그런 이치에 입각하여 대응하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방식, 행동방식을 말한다.

결국 긍정적 사고가 본래의 긍정적 의미를 되찾으려면 거기에 ‘합리적’ 측면이 착실히 반영돼야 한다. 무모함과 사행심, 무사고(無思考), 무사안일주의와 같은, 변질된 의미의 긍정적 사고는 이미 제대로 된 긍정적 사고라고 볼 수 없다. 긍정적 사고의 본래적 의미를 회복시키자. 더 거칠게 단순화하면, 지금은 긍정적 사고보다 합리적 사고가 더 필요하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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