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6월 26일 화요일 오전 9시 26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15) 제대로 비판한다는 것

 

남을 공격하는 데는 비판과 비난이 있다. 둘 다 잘못했다, 옳지 않다, 틀렸다는 꼬집음이나 책망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일상에서는 구분하지 않고 거의 동의어처럼 쓴다.

비판(criticism)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일이다. 비난에 비하여 매우 이성적인 작업이다. 비판에 설령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더라도, 당초 표적은 상대방의 인격이 아니라 상대방의 특정 주장이나 이론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비판, 비판다운 비판은 당연히 주장이나 이론의 근거와 이유를 향한다. 상대방을 공격하더라도 정연한 논리와 광범위한 설득력으로 무장돼 있다. 그래서 올바른 비판을 받은 상대방은 자신의 주장이나 이론의 허술함을 돌아보게 되고 심지어 비판하는 측에 대해 내심 존경심마저 품게 된다. “그래, 올바른 지적이야! 비판자가 공박하는 점을 나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어.”라고 중얼거리면서.

‘비판’을 보다 엄격히 정의(definition)하면서 비판의 철학적 개념이 탄생했다. 국어사전의 정의만 봐도, 비판의 철학적 개념은 “사물을 분석하여 각각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고, 전체 의미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며, 그 존재의 논리적 기초를 밝히는 일”이다. 참으로 심오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비판의 정의이다. 이런 정의를 염두에 두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하는 비판은 제대로 된 비판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본래적 비판은 상당히 건설적, 긍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되니까.

칸트

▲‘비판 철학’을 완성한 철학자 I. 칸트 (1724-1804)

비난(blame)은 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주로 상대방의 행동이나 태도, 성격 등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부정적 반응을 통해 표현한다. 비난은 상대방의 인격에 대한 흠집 내기, 즉 인신공격인 경우가 많다. 약점을 파서 물고 늘어지는 것인데,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타당한 근거나 설득력 있는 이유가 별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체로 감정적으로 접근한다. 이렇다 보니 비난을 받으면 불쾌하고 심하면 적대감, 원한까지 갖게 되는 게 당연하다. 비난은 처음부터 파괴적, 부정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비난은 결국 인신공격(人身攻擊)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방에 대해 그의 주장이나 이론이 아니라 그의 신상에 관한 일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비난이나 인신공격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비판과 판이한 것인지는 ‘인신공격의 오류’를 보면 명료해진다. 어떠한 주장이 옳지 않다, 틀렸다고 말하려면 그 주장의 내용에 주목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주장 내용은 제쳐 놓고 주장하는 사람의 신상 문제를 트집 잡아 그의 주장을 공격하는 게 바로 ‘인신공격의 오류’이다. 흔히 상대방의 인품이나, 직업, 과거의 행동을 들먹이며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요즘 인터넷상의 댓글에서 그야말로 차고도 넘치게 범해지는 오류다. 가령 “과학자 S의 이론(Ts)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술과 담배에 절어 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라고 할 때 범하는 오류다. 언뜻 타당한 공격인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학자 S의 이론에 대한 판단은 마땅히 그가 제시한 이론(Ts)의 문제점이나 잘못을 지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생뚱맞게 S의 생활 태도를 들먹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인신공격의 오류와 다른 듯하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성질의 오류가 또 있다. 이에 대한 공식 명칭이 없다. 조금 어색하지만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선한 동기와 진리를 동일시하는 오류’라고나 할까.

현 정부의 몇몇 주요 정책이 수립, 시행되는 과정에 이런 오류가 적지 않아 보인다. 적절한 한 예로서 정부가 현재 강력하고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탈원전 정책’이 있다. 전문성을 갖춘 최고 전문가들이 대단히 심도 있는 다면적 검토와 논의를 거쳐 수립, 시행해야 할 엄중한 사안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이 정책 추진의 강력한 원동력은 오로지 ‘선한 동기’뿐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정책 추진 동기로 친환경, 안전성 등 진정 좋은 의도가 들어있을 뿐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탈원전 정책이 동기만 좋으면 그만이지 더 물어 볼 게 뭐 있느냐고 할 만큼 간단한 문제인가? 서둘러 시행해보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때그때 땜질하면 될 정도로 무겁지 않은 일인가? 말 그대로 중차대한 문제가 너무나 가볍게(!) 처리되는 모습을 언론 보도로 접하면서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낀다면 비정상적으로 과민한 반응인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비판과 비난, 인신공격의 개념을 짚어 보았다. 결국 진정한 비판, 본래적 의미에서의 비판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고 개인과 사회의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임을 깨닫는다. 이와 달리 비난이나 인신공격에는 이런 건설적, 긍정적 요소가 별로 없음이 분명해진다. 건전한 열린사회와 불건전한 닫힌 사회의 구분도 비판과 비난의 대비를 통해 가능해 보인다. 전자에서는 비판이 활발하고 다채롭게 전개되는 한편 비난이나 인신공격은 적게 이루어지지만, 후자에서는 비판과 비난이 오히려 그 반대로 전개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비판과 비난이 분별되고 제대로 된 비판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며 비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문화가 대통령부터 일반 국민에게까지 조성, 확산될 때 우리나라는 바람직한 사회를 향해 크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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