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7월 11일 수요일 오전 9시 43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16) 계영배와 피타고라스의 컵

 

술잔 중에 계영배(戒盈杯)가 있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다.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하는데, 과음을 절제하기 위한다는 데서 붙인 이름이다. 잔의 70퍼센트를 넘게 술을 채우면 술이 모두 밑으로 흘러서 새어나가도록 만들어졌다.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공자(孔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항상 곁에 두고 보면서 자신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 이 의기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도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만 부으면 전혀 새지 않지만 약 7할 이상 채우면 바닥 구멍으로 모두 새어나가게 되어 있었다. 환공은 이 의기를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는 뜻에서 ‘유좌지기(宥坐之器)’라고 부르기도 했다. 공자도 이를 본받아 늘 이를 옆에 두고 과욕이나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전해진다.

계영배와 단면도

▲계영배와 단면도 (출처: 진주박물관 ‘계영배’전)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에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던 계영배에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계영기원 여이동사, 戒盈祈願 與爾同死)”라고 새겨진 것으로 소개된다.

서양에도 계영배와 같은 잔이 있다. ‘피타고라스의 컵(Pythagorean Cup)’이 그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탐욕의 컵(Greedy Cup)’ 또는 ‘공정의 컵(Fairness Cup)’, ‘탄탈로스의 컵(Tantalus Cup)’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여러 별칭은 탐욕을 경계하고 공정성을 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탄탈로스’의 경우는 물이나 액체가 부풀어 오르다가 어느 한계에 도달하면 모두 쏟아져 버리는 화학실험기구 ‘탄탈로스의 접시’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공자가 계영배에 붙인 의미와 비슷하게 피타고라스 역시 그의 컵에 탐욕을 경계하고 공평무사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상징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컵

▲피타고라스의 컵 (출처: 위키피디아)

계영배나 탐욕의 컵에는 사이펀(siphon)의 원리가 들어 있다. 사이펀이란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하여 액체를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연통형의 관을 말하는데, 계영배의 내부 구조는 바로 이런 원리로 되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잔을 기울이지 않고도 구부러진 관을 이용하여 액체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세식 변기에도 배설물을 흘려보내는 데 계영배와 똑같은 사이펀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계영배나 탐욕의 컵과 관련된 이런 이야기들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평생 성찰적 삶을 산 위대한 인물들이, 주변의 사소한 일상 용품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런 것들을 자기 삶의 자세를 되돌아보는 스승으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이다.

공자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인류의 스승이다. 피타고라스 역시 인류사에 ‘철학(philosophy)’이란 단어를 탄생시키고 심오한 사상을 남긴 불세출의 철인이다. 그런데 드높은 경지에 도달한 그런 위인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사고방식과 언행, 판단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인간은 별스럽지 않은 성취에도 우쭐해지기 쉬운 존재다. 권력이나 돈, 명성, 이런 것 중 어느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남보다 더 지니면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본성이 잠재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탐욕을 끊었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권력이나 돈, 명성 따위에 초연해졌다고 말한다. 세속적 욕심이나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욕심 내려놓기, 마음 비우기, 초연함, 자유로움, 해탈은 생각처럼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생 계영배와 탐욕의 컵을 곁에 두고 스스로를 돌아보았던 공자나 피타고라스야말로 인간의 잠재적 위험성을 꿰뚫어 본 게 아닐까. 수시로 돌보지 않으면 금방 잡초 투성이로 변하고 마는 밭처럼 경계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금세 한심한 지경이 돼버리는 위험한 존재로 인간을 올바로 인식했으니까.

또한, 그들은 진정으로 겸허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주변의 잡다한 사물과 여러 일상적 사건에서도 항상 뭔가를 배우려고 했으니 일생을 ‘평생 학습자’의 자세로 살았다. 어떻게 그 이상 겸허하고 그 이상 진지할 수 있겠는가. 위대함이란 가장 겸허하고 가장 진지한 삶의 자세를 일컫는 다른 이름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계영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탐욕이나 과욕을 경계하라는 교훈만이 아니다. 일상적 경험과 사물을 뭔가를 깨닫고 스스로를 성장케 하는 자원과 계기로 삼는 자세다. 이런 자세야말로 흔한 표현으로 ‘인격 수양’이고 ‘자아 혁신’이 아니겠는가.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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