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8월 02일 목요일 오전 10시 44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30 – 성공신퇴(成功身退)

출세하면 물러날 준비를

성공신퇴(成功身退, chéng gōng shēn tuì)

이룰 성, 공 공, 몸, 물러갈 퇴

《사기》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에 나온다.

공을 이룬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 자리에 얽매이지 말고 시기를 택해 물러나야 평온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시진핑, 아버지의 후광과 원로들의 추천으로 중국주석에 오른 그의 취임 일성(一聲)은 중화민족의 부흥 즉, 중국의 꿈(中國夢)이었다. 덩샤오핑의 개혁을 지지하고, 관료의 부패에 대해서는 엄격하여 부패인물을 대거 몰아내는 한편, 정치와 경제에서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또한 서민의 곁에 다가서는 행동을 자주 보임으로서 일반대중의 지지를 많이 받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인 것은 지난 해 2017년 11월 당 대회에서 새로운 후계구도를 만들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 주석의 임기 ‘5년 2회’ 제한규정을 철폐하는 안을 전격적으로 제시하였다. 물론 일부 소수의 양심이 있는 학자와 교수들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내었겠지만, 차기 후계가 유력한 사람들이 앞 다투어 찬성하는 발언을 내놓고 충성을 맹세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가니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시진핑 장기집권’의 발판이 만들어져 버렸다. 이제 그가 사양하지 않으면 그의 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제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살게 된 중국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도 일부 지식인들과 20-30대의 젊은이들은 좀 우스운 일이며 국제적으로도 좀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시진핑이 아무리 정치를 잘한다 하드래도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국민 소득이 더 높아지면 사람들의 의식수준도 높게 되어 여기저기에서 독재에 반대하며 반(反)시진핑의 기운이 싹 트고 본격화될 수도 있다.

때문에 필자는 시진핑이 5년 2회를 집권한 뒤 주위에서 한 번 더 하라하면 마지못해 한 번 더 하고, 좀 서운하여 한 번만 더하고 싶으면 미리 후계구도를 정한 후 임기를 채우고 끝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진의 범수처럼 과감하게 흔쾌히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면, 명예롭게 국가최대 원로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리 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할 일이긴 하지만·…. 과연 스스로 팽(烹)할까?

중국 전국시대 말 위(魏) 출신 유세가인 범수가 위의 고관인 수가(須賈)의 가신으로 있을 때, 제에 사신으로 갔다가 기밀누설죄로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했다. 당시 정안평(鄭安平)과 진의 알자(謁者, 왕의 공문 전달)인 왕계(王稽)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장록(張祿)으로 이름을 바꾸어 진으로 도망쳤다. 진 소왕이 마침내 범수의 계책을 받아들이며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범수는 자신을 도와준 왕계가 승진을 청탁하므로 하동태수로 임명되도록 하고, 정안평을 장군으로 임명하게 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안평이 조와 싸우다가 포위되어 2만의 군사와 같이 항복해 버렸다. 그 2년 뒤 왕계가 다른 제후와 내통하여 법에 따라 주살되었다. 이에 따라 범수의 처지가 난처하게 되었다. 물론 소왕이 적극 두둔하고 옹호하여 처벌은 받지 않고 있었지만 내심 불안하였다.

이때 채택이 조에서 쫓겨 한과 위로 도피하던 중 범수의 처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로 진으로 가 범수를 격분시키는 소문을 퍼뜨렸다.

“연나라 사람 채택은 천하에 준수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지혜가 있다. 그가 진왕을 알현하게 되면 틀림없이 응후(범수)를 괴롭히고 재상의 지위를 빼앗을 것이다.”

응후가 즉시 그를 불러 크게 꾸짖었으나 채택이 거만한 자세로 예를 갖추지도 않고 말을 꺼냈다.

“공은 어찌 그것을 모르시오. 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공로를 이룬 사람도 차례로 교체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진의 상군(商君)과 백기(白起), 초(楚)의 오기(吳起), 월(越)의 대부 문종(文種)은 모두 군주에 충성하고 큰 공로를 세운 사람들이지만 제때에 물러나지 않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응후께서도 이 점을 잘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고심하던 범수가 한참이 지난 후에 대답하였다.

“아, 그대의 말이 옳소. 나도 욕심을 부리며 그칠 줄 모르면 그 욕심 부린 것을 잃고,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르면 그 가진 것도 잃는다는 것을 들은 바 있소.”

마침내 응후가 물러나 병을 핑계로 초야에 묻혀 편안한 노후를 보냈다. 과감하게 무대에서 물러난 그의 지혜로움은 긴 중국 역사 속에서 많이 회자되어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한편, 채택은 범수의 추천으로 재상에 올랐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자기를 모략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자기가 범수에게 권했듯이 곧 병을 핑계로 자리를 내놓고 평안히 여생을 보내면서 가끔 사신으로 외국에 나가곤 하였다.

이 성어는 이처럼 채택이 범수에게 말한 ‘사시지서 성공자거(四時之序 成功者去)’ 즉 네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공로를 이룬 사람은 차례로 교체되는 법이라고 역설한 데서 유래되었다. 성공자거(成功者去). 성공자퇴(成功者退)로 쓰이기도 한다.

사실 공을 세우고 적당한 시기에 물러나는 일은 정말 실천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평생을 열심히 일하다 ‘성공자퇴’하시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만 하다. 그가 《노자(老子)》에서 말하여진 ‘공을 이루고 이름을 이루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를 따른 것 같아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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