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8월 16일 목요일 오전 9시 10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18) 실질적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

 

개인의 인성을 말할 때든 국가 정책을 논할 때든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다. 합리성(rationality)이 그만큼 중요함을 잘 말해준다.

합리성의 사전적 개념은 싱거울 정도로 간단명료하다. ‘이론이나 이치에 합당한 성질’이다, 당연히, 어떤 것이 이론이나 이치에 어긋난다면 불합리한 것, 합리성을 결여한 것이 된다. 무슨 주장이나 아이디어를 내놓을 땐 이론이나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사회과학에서는 합리성이란 단어 앞에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여서 보다 상세히 탐구해왔다. 절차적 합리성, 기능적 합리성, 형식적 합리성, 실질적 합리성처럼.

대체로 사회과학에서는 합리성을 과연 어떤 행위가 궁극적 목표 달성에 가장 적합한 수단이 되는가를 판정하는 기준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즉, 궁극적 목표 달성에 최적(最適)인 수단이 되는 행위는 합리성을 지닌 것, 합리적인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불합리한 것이 된다. 

사이먼(Herbert Simon)은 합리성의 개념을 절차적 합리성(procedural rationality)과 실질적 합리성(substantive rationality)으로 구분했다. 이 중에서 절차적 합리성은 어떠한 의사결정 과정이 이성적 사유에 따라 이루어졌을 때 갖추어지며, 실질적 합리성은 설정된 목표에 비추어 그에 적합한 행동이 채택되었을 때 갖추어진다.

▲허버트 사이먼(1916-2001)

▲허버트 사이먼(1916-2001)

개인적 문제 해법이든 국가적 정책 결정이든 간에 합리성이란 잣대는 똑같이 들이댈 수 있다.
 
어느 경우에든지 일차적인 필수 요소는 형식적(외형적) 합리성이다. 제정된 의사결정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관련 기관의 의사결정권을 갖춘 인원 일정 수 이상에게서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주장이나 대책은 합리성 근처에도 못 간 것이다. 국회에 상정된 법안이 의결 정족수를 채워 통과되어야 비로소 의결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어떤 주장이나 정책이 외형적 합리성을 갖췄다고 하여 합리성을 온전히 구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과연 그것이 내용상으로 실질적 합리성을 구비했는지 검토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박수 속에 통과된 사안이더라도 목표 자체가 타당성이 결여되거나 추진 전략이 비현실적이거나 실효성이 미흡하거나 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결국 어떤 발상이나 정책이 진정으로 합리성을 지녔다고 평가받으려면 형식적 합리성 은 물론이고 실질적 합리성을 지녀야 한다. 어떠한 경우든지 본질은 그것이 얼마나 실질(實質)을 지녔느냐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실질적 합리성이야말로 합리성의 핵심, 생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영어 단어에 ‘complete’와 ‘perfect’가 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완전한’이라고 해석된다. 하지만 이 두 단어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예컨대 어떤 학생을 ‘complete student’라고 하면 그는 형식상 완전한 학생이란 뜻이다. 등록금 냈고 낙제하지 않았으며 학적이 분명히 있는, 학생으로서의 형식적 요건을 모두 갖춘 학생이란 뜻이다.

어떤 학생이 ‘perfect student’가 되려면 이런 요소만으로는 안 된다. 늘 진지한 자세로 열심히 공부하며 자기의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 진정 학생다운 학생이 될 때 비로소 ‘perfect student’가 된다.
  
형식적 합리성과 실질적 합리성의 차이는 영어의 이 두 단어를 비교해 봄으로써 쉽게 파악된다. ‘complete’는 형식적 합리성을, ‘perfect’는 실질적 합리성을 갖춘 것이라고 단순화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어떤 일을 추진하는 데 형식적 합리성을 갖추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실질적 합리성을 구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의 사고력, 판단력 자체가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인지력이나 이성이 별로 신통치 못하고 독선에 곧잘 빠지며 감정에 쉽사리 휘둘리는 경향을 지녔다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적 국가적 과제 중에 말 그대로 ‘백년대계’ ‘중차대한 난제’ 아닌 것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의제들은 단편적 상식이나 일반 시민(아마추어)의 평면적 접근방식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아니, 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꼬이게 만들어 놓기 쉽다. 설령 문제를 잘 풀어보려는 선한 의도와 동기에서 출발했더라도 그렇다.

어떻게 하면 현실에서 주요 사안의 해결책이나 의사결정에서 이런 실질적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우선,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토론 분위기가 제대로 조성돼야 한다.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들은 이런 토론장을 다채로운 의견을 파악하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을 마지못해 거치는 절차쯤으로 간주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하루아침에 고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각 분야 전문가의 활용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문가는 특정 분야에 관해 식견과 경험, 통찰력이 깊고 풍부한 사람들이다, 물론 전문가라고 하여 전능한 것도 아니고 완벽할 수도 없다. 그들도 오류나 시행착오를 범한다. 그러나 그런 오류나 시행착오는 문외한의 경우와 비교할 때 그 성격과 크기에서 판이하다. 국가적 사안에 최적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할 때 우리가 기댈 언덕도 이들밖에 없는 게 명백한 현실이기도 하다.
 
최근 중요한 국가 정책이나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 합리성은 고사하고 형식적 합리성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례가 빈번하다. 그 근본 원인은 제대로 된 토론 과정을 건성건성 밟으려는 자세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 수렴하려는 진정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 있다.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고위직에 있지 않더라도 중요한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우리 모두 성찰해야 할 사항이다. 실질적 합리성은 적극 추구해야 할 만큼 크나큰 가치를 지닌 게 너무나 분명하니까.

고정식배저5


<저작권자Ⓒ 시사리포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