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8월 30일 목요일 오전 10시 42분

고정식 박사, 인문학으로 세상을 보다 (119) 망해가는 나라를 보면서

 

멀쩡한 지폐가 뭉치채로 쓰레기통에 나뒹군다. 금년에만 4만 6,300퍼센트가 넘는 초(超)인플레이션 탓에 고액권 지폐조차 종이 공예품 만드는 데 쓸 정도로 돈 가치가 떨어져서 사실상 돈이 쓰레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영양실조로 앙상한 아이들이 먹을 걸 찾는다고 쓰레기통을 뒤진다. 굶어 죽을지도 모를 아이들만 해도 대강 30만 명이다. 식량, 식수, 전기, 약품 등 생활필수품들이 거의 동이 난 상태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해외로 떠나는 국민이 여기저기 끝없는 행렬을 이루고 있다. 국경을 탈출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4만3천 명쯤 된다.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오늘의 베네수엘라의 모습에 대한 보도 중 일부를 옮긴 것이다. 스위스의 일간신문 《NZZ》는 베네수엘라의 이런 모습을 ‘지상의 지옥’ ‘저주받은 땅’이라고 표현했다.

▲ 베네수엘라 난민 시설을 공격하는 브라질 주민들

▲ 베네수엘라 난민 시설을 공격하는 브라질 주민들. (《연합뉴스》사진)

베네수엘라가 애초에 그처럼 지옥 같은 나라였을까? 아니면, 언제부터 그런 생지옥에 가까운 나라가 돼버렸을까? 베네수엘라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꽤 괜찮은 나라였다. 다음 두 가지만 소개한다.

2006년 KBS는 당시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를 미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으로서 극찬하며 ‘신자유주의를 넘어―차베스의 도전’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방송 내용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나 차베스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모범으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다.

또 하나. 2007년 3월 《한겨레 21》에는 ‘젊은 진보 논객’ 3명의 좌담이 실렸다. 제목은 ‘베네수엘라 국민에 길을 묻다’. 좌담 내용은 우리가 여러 면에서 베네수엘라와 차베스를 본받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아쉽다는 말로 요약된다. ‘노무현에 실망하고 차베스에 열광하다’는 소제목이 좌담의 요지를 잘 말해준다.

십여 년 전에 있었던 평가다. 결국 베네수엘라는 십여 년의 기간에 부러워하는 나라에서 망해가는 나라가 된 것이다.

침몰하는 베네수엘라를 보면서 선한 동기나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평범한 상식 한 가지를 재확인하게 된다. 차베스나 그 뒤를 이은 마두로 대통령, 그리고 국정의 고위 책임자도 대부분 조국과 국민을 위한다는 동기에서 정치를 하고 정책을 추진했을 것이다. 그들의 동기나 의도는 선했는지 몰라도 그 성과는 10년 남짓의 단기간에 그야말로 ‘나라를 말아먹은’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차베스를 비롯한 정치인만 탓할 수도 없다. 대다수의 일반 국민에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지속 불가능한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선심성 정책을 펼 때조차 맞장구치고 환호함으로써 국가 침몰을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결국 베네수엘라를 살 만한 나라, 좋은 나라가 될 잠재력을 지닌 나라에서 망해가는 나라, ‘지상의 지옥’으로 만든 책임은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와 국민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책임의 경중에서 대통령과 평범한 국민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베네수엘라의 국가 통치자에서 평범한 국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신을 좀먹도록 한 것, 혼을 온통 빼놓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 요소를 열거할 수 있겠지만, ‘포퓰리즘(populism)’이야말로 결정적 요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대중영합주의다. 포퓰리즘이 왜 위험한가? 그것이 민주주의, 특히 직접민주주의로 위장되어 그럴듯한 외양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기도 쉽지 않다. 포퓰리즘의 어원을 따져보면 국민이나 대중을 뜻하는 ‘피플(people)’에 가 닿는다. 민주주의(democracy) 역시 어원적 의미는 ‘국민의 통치’다. 그러니까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형제나 마찬가지다.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있다. 국민 대다수가 좋다, 옳다고 여기는 게 실제로도 좋은 것,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국민의 생각을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민으로서는 듣기에 달콤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지닌 허구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국가 비전이나 정책, 제도, 국민 대표에 관해 판단할 때, 국민은 그리 냉철하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거시적 관점에서 심사숙고하지도 않는다. 아니, 오히려 대단히 감정적. 비이성적, 근시안적 측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러니, 국민 대중을 치켜세우면서 영합하는 포퓰리즘이 위험하지 않을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나라를 발전, 융성케 하고 평화와 번영을 지속적으로 누리게 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로마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국가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 발상과 실질적 대안이 원활하고 꾸준히 반영, 실천되는 토양에서만 서서히 그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망국의 길은 쉽다. 오랜 세월 공들여 쌓은 탑일지라도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단기간에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 것과 같다.

망해가는 베네수엘라를 보면서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자.  역사는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그저 먼 나라 남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례로 차고 넘치지 않는가.

 

고정식배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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