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8년 10월 12일 금요일 오전 10시 21분

[정문섭 박사]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35 – 육단부형(肉袒負荊)

제발 날 용서해 주시게

육단부형(肉袒負荊, ròu tàn fù jīng)

고기 육, 웃통 벗을 단, 질 부, 가시나무 형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온다. 윗옷 한쪽을 벗고 등에 형장을 지고 간다는 뜻으로, 이 매를 맞고 사죄하겠다는 뜻을 이르는 말이다.

얼마 전, 한 모임의 공식회의에서 후배 K를 만났다. 회의 주제는 임원선출문제였다. 차를 마시던 중 ‘K가 다른 말을 할 것 같다.’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회의 전에 나는 그에게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말로 ‘대세가 그런 것 같던데….’라고 말했다. 그가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

“선배님. 저한테 똑같은 얘기를 두 번째 하시는군요. 25년 전 제가 인사 상 불이익에 처해 하소연하였을 때, ‘대세가 그런 것 같으니 받아들이는 게 편할 것 같다.’고 하시기에 선배님 말씀이니 어련하시겠냐 하면서 따랐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전 선배님의 그 말에 따른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였습니다. 근데 오늘 또 비슷한 말씀을 하시네요.”

난 순간 두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때 그를 손해 보게 하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는 게 나의 기억이다. 이런 말을 들은 순간 부아가 났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강박으로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그 후 K를 떠올리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비록 내 의도가 그게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가 그리 보지 않는다면 결국 나의 잘못인 셈이다. 결론은 그의 생각에 맞춰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인데, 선뜻 그런 용기가 나오지 않는다. 내 잘못이 아니었을 거라는 느낌이 아직도 조금 남아 있는데다가, 어떻게 후배한테… 하는 여러 감정이 겹쳐 꼬여 있기 때문이리라.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계속 가지고 지내야 하는지…, 참 난감하다.

인상여는 조 혜문왕 때 진왕이 ‘진의 15개 성(城)과 조의 화씨벽(和氏璧)을 바꾸자.’는 제안을 받고 자청하여 이 화씨벽을 갖고 진에 갔다가 용기와 지혜로서 대처하여 마침내 조로 다시 가져오는 쾌거를 올려 상대부(上大夫)가 되었다.

그 후 세력이 강한 진왕이 조왕을 초청하여 민지에서 회합(澠池會盟)을 가지자 했을 때, 인상여가 이를 찬성하고 왕을 수행하였다. 당초에 조왕을 욕보이고 기선을 잡아보려고 벌인 주연이었지만 인상여가 배짱과 기지로 버티고 맞받아치는 바람에 진왕은 시종 조왕을 위압하지 못했다. 이 공로로 인상여는 마침내 상경(上卿)에 오르게 되었다. 환자령(宦者令) 무현(繆賢)의 사인(舍人)에 불과했던 그가 몇 년 사이에 염파보다 높은 직위에 오른 것이다.

한편, 염파는 조의 장수로 제를 대파하고 양진(陽晉)을 취함으로 상경(上卿)이 되어 제후들 사이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맹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상여의 지위가 자기보다 높아진 것을 두고 불만을 터뜨렸다.

“나는 조의 장수로서 국가를 위해 여러 성을 공략하고 야전에서 이긴 공로가 있었건만, 인상여는 단지 세치의 혀를 놀린 노고로 나보다 윗자리에 앉았다. 그는 본디 천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어찌 부끄러워 차마 그 아래에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그에게 욕을 보이리라.”

인상여가 이 말을 듣고는 될 수 있으면 염파와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했고, 입조해야 할 일이 있어도 칭병하며 나가지 않았다. 염파와 서열을 다투고 싶지 않은 그는 외출하였다가도 염파의 일행이 보이면 수레를 돌리고 숨어 있곤 했다. 그러자 그의 사인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저희들이 상공을 섬기는 것은 상공의 높은 뜻과 지혜를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염공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욕이 두려워 숨고 피하는 것은 정도가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이런 일은 범인(凡人)들도 부끄러워하는 일인데 하물며 장군이나 재상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저희들은 이만 물러갈까합니다.”

“그래요? 그대들에게 한 가지 묻겠소. 염파장군과 진왕 중 누가 더 위고 두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당연히 염파장군이 진왕만 못하지요.”

“보시오. 그 대단한 진왕의 위세 앞에서 나 상여는 어떠했소? 진왕 앞에서 호통을 쳤으며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욕보였소이다. 그러던 이 상여가 아무리 못나도 염 장군을 겁내겠소? 우리보다 강한 진이 지금 우리 조를 쳐 들어오지 못 하는 것은 왜일까요? 이 인상여와 명장 염파가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이 두 호랑이가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면 저 승냥이 같은 진이 우리 조를 어떻게 생각하겠소? 내가 이리 숨고 피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한과 감정은 다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바로 웃통을 벗고 가시나무를 등에 지고(육단부형),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엎드려 사죄를 청했다.

“이 비천한 염파는 상공께서 이처럼 너그러우신 줄 몰랐소이다.”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하게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그런 사이(문경지교, 刎頸之交)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의 화합으로 한 동안 조는 진의 야욕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고사에서 두 개의 성어가 나온다. 문경지교, 대신 목 베임 당하는 것도 아깝지 않은 사귐이다. 생사를 같이 하는 벗이나 사귐을 뜻한다.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한다는 ‘육단부형’, 사실 매우 실천하기 어렵다. 누구나 잘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어찌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겠는가? 사과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이 잘못하고 모자라다는 점을 진정으로 인정해야 비로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진정한 사과를 하려면 죽음까지도 내놓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최근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정말 극심하다. 최근 한 존경받을 만한 한 정치인이 그만 다른 길을 선택하였다. 만약 그가 살아 있을 때, 육단부형의 자세로 자기의 잘못을 엎드려 사죄하였다하더라도, 아마도 일부 국민들은 진정성이 없다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완전히 정치를 떠나 외유를 하거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거를 해도 말이다. 후안무치하고 변명만을 일삼는 일부 정치인들과는 달리 특히 솔직하고 마음이 여렸던 그였기에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그제서야∼ 뭇 사람들도 줄을 지어 애도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그렇다고 그의 죄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문섭 박사 프로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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