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오전 11시 25분

정문섭의 중국 이야기⑪ 중화민족주의로 진화하고 있는 중화사상(中華思想)

 

–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나 최근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국제적인 위상이 커지면서 근대(1840년 아편전쟁 이후) 이후 발생한 중화민족주의가 결합된 새로운 모습의 중화사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근대 이후 중국에 근대 민족주의가 전파․확산됨에 따라, 근대 민족주의와 중화사상 간에도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됩니다. 이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입을 겪으면서 대내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과거의 중화사상이 동아시아 세계의 종주국으로서 자기 스스로에게 반해버린 모습이었다면, 현재의 중화사상은 ‘하나의 중화민족’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자국 통합의 중요한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중화사상은 티베트와 위구르 등의 소수민족의 통치를 합리화하는 이념적 이데올로기로서도 작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중화사상은 19세기 이전의 것과 일정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최근 중국이 東北工程(동북공정; 중국 동북쪽인 만주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을 중국의 역사로 만들려고 2002년부터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과 西南工程(서남공정; 중국의 소수 민족인 티베트를 중국의 역사화하려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 공정연구) 등과 같은 중국역사의 재편작업을 통해 티베트, 위구르, 몽고, 만주 등 여러 역사적인 공동체가 ‘원래 중국의 한 갈래였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전체인구 13억 5천만명 중 한족이 92%를 차지하고 있지만 8%에 불과한 변방의 55개 소수민족을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아우르면서 새로운 모습인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거군요.” 

  “그게 바로 소수민족 우대정책이고 이러한 정책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평소 친하게 지낸 우리 동포인 조선족과 함께 베이징에서 ‘한·중축구경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경기 내내 중국을 응원하면서 ’맨 날 조그마한 나라인 한국한테 지고 있다.‘며 화를 내고 씩씩대는 것을 보고 제가 얼마나 실망하고 정나미가 떨어져 나갔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옌벤(延邊, 지린성의 연변자치주)의 다른 조선족에게도 물으니 한결같은 대답이 ’조선족은 중화민족의 하나로 다 같이 뭉쳐 나가야 한다. 당연히 중국을 응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지도11

  “미국과 서유럽은 최근 중국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나온 중국의 외교적 행태를 놓고 ‘중화패권주의의 부활’ 이라며 비판하던데요.”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국제사회를 향해 패권주의적 정서와 행위를 종종 여과 없이 표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내적으로 티베트나 위구르 자치구를 필두로 하여 소수민족과 한족 간에 민족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중국은 ‘중화민족’을 내세우며 자국 내 단결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족이 92%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전쟁 등을 통해 여러 이민족과 교류와 통혼이 많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이민족들이 강제적이던 자발적이든 한족에 흡수되어 왔기 때문에 92% 모두가 한족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나요?”

  “아, 제가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 것인데요. 실제로 같은 한족이지만 남방인(南方人)과 북방인(北方人)은 기질이 서로 다르고 심지어 골격을 비롯하여 생김새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2010년에 한 연구기관이 중국 전역에서 스스로 한족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표본을 골라 DNA 조사를 했더니 뚜렷하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없더라는 연구결과입니다. 이렇듯 한족 전체를 동일한 민족으로 볼만한 근거가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2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중국인들은 중화라는 이름하에 동일한 역사의식을 공유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현대에 이르러 중화민족주의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나요?”

  “마오쩌둥은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사회를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하고 민족해방론을 주창합니다. 이 주창은 중국공산당에게 계승되어 하나의 민족주의를 가능하게 했고, 1949년 중국 건립 이후냉전이라는 국제적인 상황 속에서도 사회주의 건설의 에너지로 여전히 이를 이용하고 고취시켰습니다. 그 후 중국은 개혁개방정책으로 인해 전혀 새로운 시스템에 진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족주의는 유효하게 지속적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최근 중국에서의 중화주의의 부활은 대중조작의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는 보도를 본 것 같은데 좀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군요.”

  그렇습니다. 개혁개방(1978년)이후 경제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지역․계층 간 부의 불균형 문제, 실업문제, 부정부패와 범죄의 증가, 국가 전체의 도덕성의 추락 등 심각한 문제로 인해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인민들의 욕구불만과 파괴적인 충동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국정부는 민족적인 자긍심과 애국심을 고취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전략이 용이하게 대중 속에 파고들도록 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한 것이죠. 예를 들면 서구사회 일각의 ‘중국 위협론’을 역으로 이용하여 ‘서구사회가 중국의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을 부추김으로써 중국을 분열시키려 하고 있으며 인권문제를 빌미로 내정간섭을 하고 각종 규제를 하고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화패권주의의 부활이라…, 주변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좀 껄끄럽군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수 천 년 이어 내려온 중화사상을 고려하면, 근대 이후의 굴욕적인 역사는 중국인들에게 일종의 채권의식을 지니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인들은 강한 중국의 부활과 패권의 회복을 강하게 희망하기 때문에 최근 중국 정부는 중화민족의 오랜 역사와 문화전통에 대한 교육을 끊임없이 진행하면서 중화민족의 우수성을 대내외적으로 고취시키는데 주력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청조 말 신문화운동 이후 줄곧 청산되어야 할 봉건잔재로 취급받던 중국의 전통사상이 재조명받고 새로운 탄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만, 이것이 대외적으로 중화패권주의의 부활을 정당화시켜 민족주의의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이 확대된다거나, 대외적으로 경제성장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현실 문제를 덮어두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앞선 것이라면 주변국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하고 껄끄러운 것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만큼 중국의 민족주의도 한층 더 부드럽고 성숙해져야 그리고 주변국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세계인들로부터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화사상 끝

 

 

필자 정문섭 배너(최종)_201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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